• ▲ 김정균 보령 대표가 31일 보령 본사에서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조희연 기자
    ▲ 김정균 보령 대표가 31일 보령 본사에서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조희연 기자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우주 탐사 기업 스페이스X의 상장 추진 소식에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국내 우주항공 관련주도 일제히 상승세를 탔다. 투자자들은 이제 우주를 헛된 꿈이 아닌 이미 '현실의 투자처'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좀처럼 조명을 받지 못하는 기업이 있다. 바로 우주 헬스케어 기업으로의 도약을 선언한 '보령'이다.

    보령은 2022년부터 우주 사업에 공격적으로 베팅해 왔다. 미국 민간 우주정거장 기업 액시엄 스페이스에 두 차례에 걸쳐 총 6000만달러를 투자했고, 달 탐사 기업 인튜이티브 머신스에도 1000만달러를 보탰다. 2024년에는 액시엄 스페이스와 합작법인 브랙스 스페이스까지 출범시켰다. 제약사가 하기엔 파격적인 행보다.

    우주라는 거대한 테마에 주주들도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31일 본사에서 열린 주총에는 50명이 넘는 주주들이 참석했다. 웬만한 바이오기업 보다 높은 참여율이다.

    문제는 시장이 이 '담대한 베팅'을 좀처럼 성장 서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령 주가는 최근 3년간 1만원 안팎 박스권에 갇혀 있다. 우주 산업 기대감이 증시 전반으로 번지는 동안에도 보령은 별다른 프리미엄을 얻지 못했다. 우주를 향한 회사의 시선과, 냉랭한 시장의 시선 사이에 온도 차가 분명히 존재하는 셈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아직까지 투자자들이 체감할 만한 사업 성과가 보이지 않아서다.

    보령이 내세우는 우주 헬스케어 전략은 여전히 구상과 네트워크 구축 단계에 머물러 있다. MIT, 액시엄 스페이스와 함께하는 HIS(Humans In Space) 챌린지 등 의미 있는 시도는 이어지고 있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결과물은 이벤트성 프로젝트나 상징적 활동의 성격이 더 짙다. 냉정하게 말하면 아직은 사업이라기보다 연구 후원이나 사회공헌, 마케팅에 가깝다.

    물론 새로운 산업은 긴 호흡이 필요하다. 특히 우주처럼 인프라와 시간이 동시에 필요한 분야라면 더 그렇다. 문제는 그 긴 호흡을 버텨야 하는 쪽이 결국 주주들이라는 데 있다. 1000억원 넘는 자금이 투입된 신사업이라면 최소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언제쯤 돈을 벌 수 있을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보령이 본업을 못하는 회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혈압 신약 카나브는 여전히 안정적인 수익원이고, 항암제 사업도 탁소텔 인수 등으로 외형을 키우며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카나브 특허 만료 이슈와 차세대 신약 파이프라인의 부재는 보령이 풀어야 할 현실적인 과제다. 

    이런 상황에서 자회사 매각과 사옥 처분 등을 통해 확보한 실탄이 아직은 수익모델이 불투명한 우주 사업으로 향하고 있으니 시장이 선뜻 박수를 보내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보령의 오너 3세 김정균 대표는 분명 뚝심 있는 경영자다. 제약업계에서 누구도 쉽게 시도하지 않았던 길을 밀어붙이는 추진력은 인정할 만하다. 실제로 보령은 카나브를 지키고 항암제 사업을 키우며 본업도 놓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현실적 방어막 뒤에 자리한 김 대표의 머릿속이 결국 '우주'에 가 있다는 점, 그리고 시장은 그 꿈에 아직 전혀 열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지금의 보령을 더욱 아이러니하게 만든다.

    우주는 분명 인류의 마지막 블루오션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그곳에서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우주를 산업으로 만들고 있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거액의 입장료를 내고 가능성을 탐색하는 단계에 머문다. 지금의 보령은 후자에 더 가깝다.

    더 큰 문제는 자본시장이 꿈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주에는 무중력이 존재할지 몰라도 증시에는 냉정한 중력의 법칙이 작동한다. 성과라는 추진력이 없으면 어떤 비전도 결국 궤도에 오르지 못한다.

    보령이 우주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그리는 그림이 공허한 몽상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제 필요한 것은 더 화려한 비전이 아니다. 지상에 남아 있는 주주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로드맵이다.

    보령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계속해서 지구 밖만 바라보다간 정작 지구 위의 주주들은 보령의 '우주 꿈'보다 보령의 대표 위장약 '겔포스'부터 찾게 될지 모른다. 속이 너무 쓰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