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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만 되면 수십억원이라는 이른바 '로또 청약'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정치권이 다시 '채권입찰제'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2024년에 준공된 서초구 반포동의 한 재건축단지는 당첨되면 인근 시세 대비 약 20억원의 시세 차익이 기대된다는 소식에 1순위 청약에만 약 10만명 인파가 몰렸다.
분양가와 시세의 차액만큼 채권을 사게 해 개발 이익을 공공이 환수하겠다는 논리는 겉보기엔 투기 차단이라는 정책처럼 보이지만, 시장에서는 결국 자금 조달 능력에 따른 진입 장벽이 고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치권이 이 시점에 채권입찰제를 다시 소환한 배경에는 주택도시기금의 급격한 고갈이 자리 잡고 있다. 안태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분석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시세보다 현저히 낮게 분양된 민간주택 23곳에서 발생한 시세 차익 중 약 1조 5000억원을 채권입찰제로 환수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같은 수치는 현장의 현실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안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에 따르면 채권 상한액은 인근 시세의 100%에 미달하는 선까지 설정될 수 있다.
예컨대 시세 25억원인 아파트가 15억원에 분양된다면 수분양자는 최대 10억원의 채권 매입액을 써내야 당첨권에 다가갈 수 있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밀려나는 것은 실수요자다. 채권 매입액을 높게 써낼수록 유리한 구조에서는 자금 여력이 충분한 수요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대출 규제 속에서 자기자본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까지 감안하면 무주택 실수요자는 애초에 경쟁선에 서기도 어려워진다. 청약 제도가 '내 집 마련 사다리'가 아닌 현금 동원 능력 시험대로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과거 2006년 판교신도시 분양 당시의 실패도 뼈아픈 대목이다. 당시 도입된 채권입찰제는 더 많이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당첨되는 구조 탓에 현금 경쟁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2013년 사실상 폐지됐다.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분양가를 일정 수준 현실화해 과도한 시세차익 기대를 줄이고,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활성화해 공급을 늘리는 것이 더 직접적인 해법이라는 것이다.
가격과 공급이라는 축을 건드리지 않은 채 청약 방식만 바꾸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비켜간 대응에 가깝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13년 전에도 시장 왜곡만 초래했던 정책을 다시 꺼낸 것은 공급 부족이라는 근본 원인을 외면한 것"이라며 "부족해진 기금 곳간을 채우려는 미봉책"이라고 지적했다.
우려스러운 것은 정책이 시장에 주는 메시지다. 청약 제도를 손보는 방식이 기회를 넓히는 방향이 아닌 부담을 늘려 걸러내는 방식으로 읽힐 경우, 실수요자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미 대출 규제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추가 부담까지 고려해야 한다면 청약 자체를 포기하는 수요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로또 청약을 없애겠다는 정책이 또 다른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현금 여력이 있는 수요층은 여전히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실수요자는 시장 밖으로 밀려난다. 제도가 의도한 형평성 회복이 오히려 접근성 격차를 키우는 역설이다.
로또를 없애는 것과 기회를 없애는 것은 다른 문제다. 청약 제도의 목적이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돕는 데 있다면 기준은 '얼마를 더 낼 수 있느냐'가 아닌 '누가 더 필요한가'에 맞춰져야 한다. 채권입찰제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지 지금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