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연합뉴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7일 국무회의에서 부동산 세제를 두고 "전쟁으로 치면 핵폭탄 같은 것"이라며 최후수단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금융을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꼽고 공급 대책도 주문했지만 필요하면 세금 카드까지 꺼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던진 것이다. 이후 대통령실은 보유세는 현 단계에서 검토 대상이 아니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은 이를 규제 강화 가능성과 정책 불확실성 확대 신호로 받아들였다.

    문제는 이런 강한 메시지가 시장 안정으로 이어지기보다 실수요자까지 더 깊은 관망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은 최대 6억원 한도로 묶여 있고 고가주택일수록 자금조달 문턱은 더 높아졌다. 정책은 투기를 겨냥했다고 하지만 시장이 먼저 체감한 것은 실수요자의 위축이다.

    현장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더 선명하다. 서울 마포구 인근 중개업소에서는 최근 호가보다 수억원 낮춘 급매가 나와도 매수 대기자들이 추가 하락을 기다리며 거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집을 사려는 수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대출 규제와 세제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지금 사도 되는지'를 두고 머뭇거리는 분위기가 짙어졌다는 것이다. 실수요가 매수로 이어지지 못하고 대기 수요로만 남아 있는 셈이다.

    중저가 실수요 지역도 사정이 밝지만은 않다. 최근 성북·동작·서대문 등에서는 아파트 매물이 빠르게 줄면서 원하는 가격대 매물을 찾기 어려워졌고 실수요자들의 체감 부담도 커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서울 아파트값은 0.05% 상승했지만 시장 분위기는 지역별로 갈렸다. 강남권이 주춤한 사이 성북구·중구(0.20%), 서대문구(0.19%), 노원구(0.14%) 등 중저가 지역이 상대적으로 더 올랐다. 집값 전반이 반등했다기보다 대출 부담이 덜한 곳으로 실수요가 몰린 영향이 크다는 해석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정책 메시지의 결이 시장에 일관되게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금융과 공급을 먼저 언급하면서도 세금을 최후수단으로 열어뒀고 대통령실은 곧바로 보유세 검토는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정부 입장에선 속도 조절일 수 있지만 시장에서는 '지금은 아니어도 언제든 더 센 카드가 나올 수 있다'는 불안으로 읽힌다. 

    특히 부동산처럼 거래 결정에 시간이 걸리는 시장에선 정책 강도만큼이나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로드맵보다 경고와 진화가 반복되면서 시장 참여자들만 더 복잡한 계산에 내몰리고 있다.

    그 결과 시장은 안정이라기보다 양극화와 정체가 동시에 심해지고 있다. 현금 여력이 있는 수요층은 규제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으며 선별 매수에 나설 수 있지만 대출이 필요한 무주택 실수요자는 집값이 조정돼도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거래가 줄었다고 해서 실수요자 부담까지 함께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전월세 부담은 여전한데 매물까지 줄면 체감 진입장벽은 오히려 더 높아진다. 투기를 억제하겠다며 던진 신호가 결과적으로 시장의 거래 기능을 약화시키고 그 부담이 가장 취약한 수요층에 먼저 전가되는 구조라면 정책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시장 참여자들이 정책을 믿고 정상 거래에 나서기보다 저마다 손해를 덜 보는 생존 전략을 찾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월 서울에서 부동산을 증여한 인원은 1773명으로 1월보다 늘었고 50~60대 비중이 확대되며 증여 시점도 앞당겨지는 흐름이 나타났다. 매도 대신 이전, 거래 대신 보유라는 선택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살 사람은 더 떨어질지 몰라 기다리고 팔 사람은 세 부담과 가격 조정을 저울질하며 버틴다. 일부는 증여로 방향을 틀고 일부는 비핵심 자산만 정리한 채 핵심 자산은 움켜쥔다. 시장이 이미 '각자도생' 국면으로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투기 수요를 억누르겠다는 정부 의지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금융 규제로 돈줄을 죄고 공급 확대를 예고하며 여기에 세제 카드까지 반복적으로 시사하는 방식이 과연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지금 시장에 필요한 것은 '핵폭탄' 같은 비유가 아니라 실수요자도 납득할 수 있는 일관된 정책과 예측 가능한 신호다. 신뢰 없는 정책은 거래를 멈춰 세울 수는 있어도 정상화시키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