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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었다. 하늘은 흐릿하게 맑았다. 관리소 지휘부 건물의 창문들은 무표정했다. 전봇대에 매달린 나팔 모양의 회색 스피커에서는 여자 선동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높고 낮은 음조로 훈련된 음성은 혼자 울고 웃으며 시를 낭송하듯 외쳐댔다.
"오늘은 민족 최대의 경사로운 명절, 2월 16일입니다! 수령님의 대를 이어 조선 혁명의 계승과 완성을 위해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서 탄생하신 오늘이야말로, 우리 조국과 민족의 영광스러운 역사 속에서…!"
목소리는 구름에 닿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땅 위에 있는 군인들의 구령 소리와 수용자들의 발소리도 묻히고 있었다.
반복되는 스피커의 선동은 독신자세대 식당 안으로도 흘러들어왔다. 수용자들은 각자 쟁반을 들고 식탁에 앉았다. 식판 위의 밥은 정말로 흰 쌀밥이었다. 게다가 불룩했다. 명절이라고 일어선 밥의 모양새는 평소보다 분명 낯설었다. 도성진은 그 밥을 내려다보다가 숟가락으로 꾹꾹 눌러댔다. 밥이 힘없이 무너져 내려앉았다.
"'뽈밥'이 아니라… '좆밥'이잖아."
낮게 뱉은 말인데도 묘하게 멀리까지 들렸다. 도성진은 숟가락을 국그릇 안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분명 동태 머리로 알았는데 흔적도 없었다. 시래기는 확실히 다른 날보다 조금 많았다.
"된장이라도 넣어주지."
그 말에 같은 식탁에 앉아 있던 9분조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꽂혔다. 정치범의 밥 타령, 그것도 명절날의 발언은 사소한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하지만 도성진은 기어이 한마디를 더 보탰다.
"명절인데 시뻘건 김치라도 주지."
그 식탁에는 9분조만 있지 않았다. 다른 분조의 수용자가 숟가락에 국물을 떠서 도성진의 얼굴에 던졌다. 국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흐르며 시래기 한 잎이 턱 아래에 붙었다.
감시반은 일찍 따로 먹었는지 먼저 일어서 몰려나왔다. 앞에 선 미꾸라지는 흡족한 표정으로 이를 쑤시고 있었다. 감시반장이 되고 나니 이빨 짬에도 음식이 남아돈다는 해맑은 만족이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수용자들은 줄을 맞춰 립석강 강가로 행진해 갔다. 오전 10시까지 도착하라는 독촉에 모두가 서둘렀다. 이제 그 장소에서 연중 관리소의 가장 큰 행사라는 '혁명화해제명단발표식'이 거행될 참이었다. 강가에는 싸늘한 겨울 아침 공기가 수면 위로 낮게 흘렀다. 잔잔한 물결은 그 체로 얼려 있었다.
사람들의 발밑에도 하얀 눈이 반들반들했다. 그들 어깨에 닿는 바람은 바늘처럼 찔렀다. 그런데도 그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살아있었다. 추위보다 더 강한 무언가가 지금 이곳을 끓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들 흥분된 감정을 억지로 누르고 있었다. 오늘은 2월 16일, '민족 최대의 경사'와 더불어 일부의 수용자들은 이름을 되찾게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또 한 번 이름을 잃어버리는 혁명화해제 발표일이기도 했다. 그들 뒤편으로는 바람에 흔들리는 현수막이 펼쳐져 있었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 탄생 45돐 경축!』
『민족 최대의 경사스런 명절 2월 16일을 뜻깊게 맞이하자!』
빨간 글씨는 추위에도 매끄러웠다. 거기 붙은 느낌표들은 마치 누군가의 가슴을 찍어 누르는 쇠말뚝 같았다. 그리고 그 앞에 단상처럼 조악하게 임시 발판도 설치됐다. 먼저 조직부장이 그 위로 올라섰다. 정치부장은 다른 리 해제명단 발표식에 참석해서 그가 대신 그 자리에 선 것이었다. 단정히 여민 군복과 마른 입술 사이로 큰 목청이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민족 최대의 명절인 2월 16일을 맞이하여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의 배려로, 어머니 당의 품에 다시 새롭게 안기게 된 15호 혁명화 해제 대상 동무들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그렇다. 오늘은 번호 대신 '이름'이 살아나고, 그 뒤에 '동무'가 붙는 날이었다. 호명되고 혁명화에서 해제되는 동무들은 사회인으로 돌아간다. 반면 명단에서 언급되지 못한 자들은 계속 '번호'로 수용소에 남게 된다. 군복 입은 자의 입에서 동무란 말이 나오자 수용자들은 술렁거렸다.
손을 움켜쥐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어떤 이는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 이름을 계속 되뇌고 있었다. 아직 불리지 않았는데도 벌써 들은 것처럼 숨을 할딱거리는 얼굴도 있었다. 조직부장의 자리를 이어받은 소장은 먼저 아래를 쭉 굽어보았다. 서련화는 시선을 길게, 그러면서도 아래에 두고 있었다. 소장은 가슴을 쫙 폈다. 모자만 조금 삐뚤어져 있었다.
"지금부터 혁명화 해제명단을 발표하겠습니다. 먼저 독신자세대를 부르겠습니다."
소장은 운을 뗀 뒤 서류를 이내 내렸다. 립석강의 바람이 한 번 더 얼음 위를 흔들었다. 당과 수령님의 배려로 선물 같은 명단을 발표할 땐 장갑을 끼면 안 된다. 그래서 두 손을 바지에 집어넣고 일부러 뭘 찾는 척했다. 그러는 사이 서류는 다시 접혔다. 덩달아 사람들의 열망과 소원도 접혔다. 그래서 더 조용했다.
수용자들의 눈빛은 오로지 한 사람 소장에게 집중됐다. 숨소리도 삼가 그에게 바치고 있었다. 소장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케엑! 하고 기침을 한 번 크게 했다.
딱 그 순간이었다. 대열 전체에서 웅웅 하는 울림이 들렸다. 수천 갈래의 긴 호흡이 하나가 된 듯 박자까지 맞춰 진동했다. 도성진은 놀란 눈으로 그들을 둘러보았다. 이런 집단적인 감정, 이런 노골적인 '시위'를 사회는 물론, 수용소에서도 처음 봤기 때문이다. 손을 들어 입을 가리는 사람이 있었다. 주저앉아 뒷사람이 간신히 붙잡아 주기도 했다.
"조용히들 해!"
소장의 외침이 칼처럼 일어섰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바람도 가르지 못했다. 오히려 단상 밑의 한탄이 더 커지더니 주먹까지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라도 안타까움과 소원을 동시에 눈물로 호소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이러면 이따 오후에 한다."
이번엔 협박이었다. 그러자 더 큰 소리가 일어섰다.
"우—!!"
슬픔처럼, 울음처럼 소리 냈지만, 분명히 다른 소리였다. 돌을 들고 내리는 짧은 순간에도, 이 시간만 생각하며 버티었던 수용자들이었다. 딱 하루인 당의 배려 앞에서 읍소의 형식을 빌려 야유하고 반항하는 것이었다. 소장은 바지에 손을 넣은 채 눈을 치켜뜨고 한 명, 한 명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이 대열을 위협하자 마침내 군중은 조용해졌다. 소장이 다시 서류를 펼쳤다.
"김익현 동무."
이름이 나오는 순간, 와! 하는 소리와 함께 대열이 세차게 꿈틀거렸다.
"김익현이 여기 있습니다!"
그 부르짖음을 듣고 사람들은 더 크게 와! 했다. 김익현은 옷자락이 바람에 열린 것도, 신발이 벗겨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나갔다. 김익현은 연단에 나가 두 팔을 공중에 높이 쳐들었다.
"수령님 만세! 로동당 만세!"를 부르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목구멍에서 수년을 묵혀온 한이 물줄기처럼 터져 나왔다.
그는 본래 계급이 상장이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부 총참모부의 부총참모장까지 올랐던 자였다. 그러나 어느 날 술에 취해 내뱉은 말 한마디가 화근이 돼 요덕으로 끌려왔다. 사회에 나간 뒤 그는 체제의 충견으로 변해 1991년에는 대장으로까지 승진했다.
소장은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넣으며 얼굴에는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미소를 띠었다.
"양승룡 동무!"
군중 속에서 또 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그는 우느라 대답도 못한 채 달려나갔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자 그때야 외쳤다.
"양승룡 여기 있습니다. 금방 나갑니다! 양승룡. 양승룡, 금방 나갑니다. 넘어진 겁니다."
그는 반복해서 마구 외쳐댔다. 그 소리는 대답이 늦고, 빨리 나가지 못하면 해제가 취소될 것 같아 공포로 손을 뻗치는 절규였다.
주위에 섰던 이들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무릎이 터져 바지가 진한 피로 물들었다. 두 사람이 얼른 그를 양쪽에서 부축했다. 그들도 양승룡처럼 그 앞자리에 서고 싶었다.
하지만 2월의 대중 앞에는 반동이 감히 설 수 없는 높이였다. '개조'된 인간만이 설 수 있는 특권의 성역이었다. 혁명화가 끝난 자만이 당의 이름으로 밟을 수 있는 땅이었다. 병사들이 총으로 가로막았다. 두 사람은 그 총구 앞에서 돌아서야 했다. 그리고 잠시나마 낮은 시야에서 군중을 바라보다가 그것만으로도 기적 같아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양승룡은 피 묻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첫 번째 해제자처럼 만세를 외쳤다. 그는 한때 리비아 주재 북한 대사였다. 외교 실책의 책임을 지고 끌려왔었다.
"김학수 동무!"
소장의 입에서 이름이 떨어질 때마다 립석강 강가가 탄성으로 흔들렸다. 호명된 자들의 힘찬 대답도 묻힐 정도였다. 수용자들은 추위조차 잊고서 부러움의 환호와 절망의 비명을 동시에 질러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반응은 약해졌다. 서류가 넘어갈수록 기회는 멀어지고 사람들은 다시 익숙한 혁명화의 감옥 속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장이 다가올수록 남는 건 자기들의 한숨과 비극뿐이었다.
소장의 입에서는 남자보다 여자독신자의 이름이 더 자주 흘러나왔다. 여자들은 대체로 가벼운 죄였다. 저들끼리 싸울 때도 남자를 유혹했다. 바람을 피웠다. 남자를 배신했다며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을 때가 많았다. 말실수도 불평 정도였지 체제를 비판하고 바꿔보겠다는 용기까지는 아니었다.
여성의 역할이 제한적인 북한에서 여성 정치범은 대부분 남자 때문에 얻은 죄였다. 보위부는 여성이란 사회적 약자를 이용해 '그 남자들의 사회'에 경고와 처벌을 가했다. 그래서 여성 독신자세대는 혁명화 연수나 해제도 빨랐다.
"권성철 동무!"
소장이 다시 남자 이름으로 넘어오니 수용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남자의 해제 숫자는 적었지만 일단 나가면 출세의 여지가 있어 더욱 눈이 갔다. 누가 살아서 어디까지 올라갈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이름이었다.
권성철은 외교부 참사실장을 했던 자였다. 자이레에 함께 출장갔던 사람이 한국 대사관으로 들어가자 그 연대책임으로 들어왔다.
"한상일 동무!"
그는 부룬디 아프리카 주재 주체사상 연구소 지부 농업 고문단 통역을 했던 자였다. 평양 음식점에서 디스코 춤을 공개적으로 췄다는 죄로 수정주의 전파 죄로 끌려 들어왔다.
"전동찬 동무!"
소장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9분조의 도련님 몸이 휘청거렸다. 둘은 절친 사이였다. 그도 도련님과 같은 소련 유학파였다. 귀국 후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전동찬은 중국 주재 북한 대사 전명수의 아들이었다. 계급도, 배경도, 교육도 그들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자란 사람들이었다. 앞으로 나간 그는 연단에 서서도 줄곧 9분조 쪽을 바라보았다. 눈길이 서로 닿았다. 그 시선은 머무는 듯하면서도 망설였다. 마지막 인사를 눈빛으로 대신하는 모습이었다.
도련님은 애써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얇고 금세 젖었다. 그 뒤로 흘러내린 한줄기 눈물은 깊어 울음이 목까지 차올랐다. 끝내 허탈한 떨림 속에서 한마디가 흘렀다.
"부주석? 꼭두각시."
허탈한 슬픔의 혼잣말이었다. 도련님의 그 감정까지 자기 몫처럼 짊어진 검은손의 등은 무거워 보였다.
주둥이는 도련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가수는 얼굴을 감싸 쥐고 혼자 우는 것 같았다.
옹헤야는 그 와중에도 사방을 노려보았다. 마치 그 이름들이 어디에서부터 연출된 것인지 끝까지 의심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도성진은 9분조원들의 모든 반응을 가만히 보았다.※ 다음 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