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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독신자세대 인원들만 교체당한 것이 아니었다. 가족세대도 어느 집이나 초상집이었다. 박해순과 민유정은 서로 붙어 안고 울었다. 독신자세대가 전원 교체됐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박해순은 도련님에게 남은 미운 정으로, 민유정은 주둥이와 눈이 마주칠 때 떨렸던 정으로, 둘은 소리 내며 흐느꼈다. 밖에선 아우성이 고성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 앞엔 장찌엔이 호미를 들고 서 있었다.
"이 개간나들이 어따 대고 쌍년이야?! 감시반? 누가 오자마자 감시하래?"
장찌엔은 호미를 들고 새롭게 등장한 감시반과 혼자서 맞서고 있었다. 붉은 완장을 찬 그녀들은 대숙리에서도 유명했다. 무력부의 한 개 부서가 통째로 들어오면서 사회에서나 수용소에서나 든든한 한패거리가 되었다. 소문에는 담당 보위원도 그 결속력 앞에선 작아진다고 했다.
2분조 여자들이 먼저 달려 나왔다. 이어 남은 구읍리 여자들도 몰려들었다. 감시반장이 장찌엔의 호미 앞에 머리를 내밀었다.
"쳐 봐. 이년아. 우리가 누군지 몰라?"
감시반장이 머리로 장찌엔의 가슴을 툭툭 쳤다. 장찌엔은 그녀를 확 밀쳐냈다.
"15호에서 내 이름 못 들었어? 나 장찌엔이야, 중국 여걸!"
"여걸 같은 소리 허네. 이년 옷 벗겨. 빤쯔까지. 정신 버쩍 들게."
그러자 장찌엔은 제 손으로 상의를 마구 벗었다. 땀과 먼지가 뒤섞인 속살이 드러났다. 장찌엔은 두 손으로 제 가슴을 쥐고 흔들어댔다.
"날 벗겼지? 젖탱이도 봤지? 오호라 내가 네년 남편 놈들. 싹 다 룡평 보내줄게. 애들아. 그거 설명해줘라."
장찌엔이 2분조를 돌아보며 소리치자 민유정, 박해순, 김상미까지 소리쳤다.
"그 여자 그런 거 전문이예요."
"큰변났다. 남편들 룡평 다 가겠다."
"그 이모. 그럴려고 안 나가는 거예요."
마지막 김상미의 말에 장찌엔이 고개 돌리며 버럭 소리쳤다.
"야. 이년아. 그건 아니지!"
쳐들었던 감시반의 손들이 하나둘 내려졌다. 앞에 섰던 반장이 당황해서 옷을 주워주자. 장찌엔이 구읍리 여자들에게 소리 질렀다.
"야 이년들아. 나만 벗어? 구읍리 여자들 본때를 보여주자!"
박해순이 먼저 달려 나왔다. 뒤따라 구읍리 여자들도 소리 지르며 감시반을 에워쌌다. 머리채가 휘날리고, 손톱이 얼굴을 긁고, 신발이 벗겨졌다. 피인지 땀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튀었어도 누구 하나 멈추지 않았다. 장찌엔은 그 뒤에서 옷을 입으며 고함쳤다.
"저년들 홀딱 벗겨! 내 젖통보다 작아만 봐라."
독신자세대에서 유명인은 주둥이라면 가족세대에선 장찌엔이었다. 그날도 비록 옷을 벗었으나 자존은 벗지 않은 여자였다. 억압에 침묵하지 않는 여자였다. 항상 먼저 시원하게 사람들의 속을 긁어주는 여자였다. 누구보다도 시끄럽고, 거칠고, 위험해 보였지만 그만큼 누구보다도 인간적이었다.
밖에 나간 호위국조는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몰래 나갔다 들어온 도성진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도련님이 큰 소리로 기지개를 켜는 소리를 내며 누웠다. 모여앉았던 9분조는 저마다 뒤로 물러났다.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렸다. 호위국조가 들어올 때와 똑같은 기세였다. 이번엔 무력부조였다. 얼굴만 달랐지 완장도, 표정도, 걸음도, 숫자도 똑같았다.
막사는 다시 얼어붙었다. 완장보다 더 섬뜩한 것이 보였다. 그들의 손에 들린 곤봉이었다. 예전부터 썼던 것인지 군데군데 핏물이 말라붙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부하 두 놈은 얼굴 대신 곤봉을 내세우듯 어깨 위에 비스듬히 둘렀다.
그 두목은 문턱에 발을 딛고 서는 것부터 대놓고 공갈이었다. 최종배보다 더 사나운 눈으로 막사 안을 쓱 훑었다. 움찔하는 놈이 하나라도 있으면 때려눕히고 들어오겠다는 몸짓이었다. 막사 안은 숨을 죽였다. 호위국조 때보다 더 긴장했다.
그런데 밖에서 눈치 없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미꾸라지였다. 소장 명단에 올라 트럭에 실렸다가 조직부장 눈에 띄어 내려진 그였다. 그 극적인 탈출 과정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중이었다. 자기 권한처럼 포장하며 웃음소리까지 덧붙였다.
내부는 트집 잡을 군살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두목이 미꾸라지를 가리키며 짧게 말했다.
"끌고 들어와."
미꾸라지는 그새 '세상'이 어떻게 달라진 줄도 모르고 소리치며 들어왔다.
"야. 손 안 치워? 조직부장 선생님께서 금방 내게..."
두목은 말로 하지 않았다. 한 주먹에 미꾸라지 몸이 튕겨 나갔다. 수용자들의 시선은 맞은 놈보다 그가 흘린 이삿짐에 먼저 꽂혔다. 말린 명태 꼬리 3개, 쭈그러진 플라스틱병 1개, 훔친 건지 짝이 다른 양말 한 쌍에 팬츠 몇 장, 키가 다른 낡은 수용자복 두 벌도 있었다.
"호위국조 놈들, 지금 뭐 해?"
두목의 단단한 말에 붉은땅크가 옆에서 거수했다.
"현재 밖에서 우리 배후를 칠 작전회의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놈들 오기 전에 우리 침대 다 새것으로 갈아놔!"
두목의 명령에 붉은땅크와 장갑차가 동시에 외쳤다.
"알았습니다! 두목 동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놈들은 수용자들의 잠자리를 훑기 시작했다. 담요를 들추어 짚더미를 걷어내더니 누군가의 머리맡까지 발끝으로 밀어냈다. 그 소란 속에서 도성진이 작게 중얼거렸다.
"아까는 두령이고, 지금은 두목인가봐요."
검은손은 이마에만 머물던 근심이 눈빛에도 스며들었다. 주둥이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했다.
"저런 무식한 것들이 무슨 생각 있어서 정치범이지...?"
누구보다 도련님의 한숨이 길었다.
"형. 장찌엔 분조도 갔을까?"
"가더라도 15호 안인데 뭐. 너 힘 좀 써 봐. 장찌엔 분조 간 리에 우리 가자."
"미쳤어? 그 한 번 힘은 박해순을 위해 써야지."
가수가 소란스러운 주변을 둘러보며 신음했다.
"우린 이젠 죽었어. 서로 우두머리라는데... 우리는 그 이상 높은 분도 없으니."
"부주석 아들 있잖아."
주둥이 말에 9분조는 도련님을 쳐다봤다. 그는 그 시선을 다 받아 김성근에게 돌렸다. 그러자 그를 따라 9분조의 시선도 옮겨졌다. 김성근은 등을 곧게 펴고 있었다. 턱을 들지 않고도 정면을 바라보는 자세. 말없이 앉아 있는 그 자체로 하나의 막사 기둥 같았다.
"저거 괜찮다. 저거 뜯어!"
장갑차와 붉은탱크가 9분조 옆 침대를 손으로 가리킬 때였다.
미꾸라지가 번쩍 손을 들었다.
"두목 동지! 제 침대 널빤지는 쓸 만합니다!"
붉은땅크가 미꾸라지에게 달려갔다. 침대를 두어 번 쾅쾅 두드리더니 장갑차에게 소리쳤다.
"야, 이리로 와. 이놈 건 전부 새것이야."
미꾸라지는 언제 맞았는지 모르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한 발 나섰다.
"네. 제가... 여기 감시반 반장을 했습니다."
붉은땅크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미꾸라지는 같은 동료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땅크는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하하하. 쥐새끼처럼 생긴 이게 감시반장이래. 여기 구읍리 뭐야. 하하하하!"
그러다가 돌연 표정을 굳히더니 미꾸라지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눈을 부릅뜨고 손뼉을 쳤다.
"두목 동지! 두목 동지!"
붉은땅크의 선창에 미꾸라지도 재빨리 입 모양을 맞추며 손뼉을 쳤다.
"두목 동지! 두목 동지!"
미꾸라지는 시선을 수용자들에게 돌렸다. 붉은땅크도 돌아서 손뼉 치며 외쳤다.
"다들 따라 해! 두목 동지! 박수도 짝짝."
막사 안의 공기가 요란하게 뒤섞였다. 박수도 목소리도 점점 커지며 하나로 모였다. 검은손을 따라 9분조도 어쩔 수 없이 움직였다. 그들의 손과 입은 소리 없는 시늉에 가까웠지만, 막사는 실제로 진동했다. 발바닥 아래로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막사도, 사람들도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붉은땅크가 손을 휘저으며 소리 질렀다.
"조용! 조용해!"
미꾸라지가 그 말을 메아리처럼 옮겼다.
"조용하라잖아. 조용! 다들 뚝!"
그리고 그 뒤의 정적과 함께 시선은 모두 단 한 사람에게 향했다. 붉은땅크가 곤봉을 들고 김성근에게 다가갔기 때문이었다. 장갑차도 달려가던 속도로 멈추다가 한 발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와! 구읍리에 이런 것도 있었어?"
장갑차까지 가세했어도 김성근은 변함없이 그저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묵묵히 앉아 있었다. 붉은땅크가 곤봉을 매만지며 더 가까이 다가갔다.
"애는… 어디에 손을 대야 뼈에서 소리가 날까?"
목소리에 막사 안의 공기가 다시 팽팽해졌다. 그때였다. 철컥. 막사 문이 열렸다. 호위국조의 두령이었다.
"두목. 너희 두목 어디 있어?"
막사 안쪽에서 무력부조 두목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어이구, 새 진지 구축했으니 또 피 터져 봅시다."
호위국조 두령은 들어올 때부터 김성근에게 고정했던 시선을 그대로 유지했다.
"나가서 이야기 좀 하자."
두목은 김성근에게 돌아섰다.
"애야? 박수 안 친 놈이?"
그 말에 막사안이 다시 얼어붙었다. 숨죽인 공기가 한 번 더 눌렸다. 하지만 두령은 서둘렀다. 그의 손이 두목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중요한 결정이야. 여기서 이러지 말고…"
두목이 이끌려 나가자 붉은땅크도 그 뒤에 섰다. 막사 문턱 앞에서 그는 고개만 수용자들을 향해 돌렸다.
"나가서 침만 뱉고 들어올게. 꼼짝 말고들 기다려."
그런데 그때부터 무력부조도 들어올 기미가 없었다. 침만 뱉고 온다던 말이 그들의 행방을 더 묘연하게 했다. 밖에서 그들은 군인 출신들답게 심각했다. 회의는 길고 표정들은 딱딱했다.
"그러니까, 부주석이 하늘인 줄 알았는데 그 하늘 위에 태양이 있더라?"
거듭 물어보는 두목의 무식함에 두령은 한숨으로 대답했다.
"'여기 부주석보다 내 아버지가 더 높다'고 그렇게 목숨 걸고 사기 치는 정치범이 어딨어? 최고 존엄 훼손하면 즉결인데."
두목은 그건 잘 알아서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더 높다고 했어?"
"내 말이 아니라니까."
두령의 시선이 막사로 향하자 옆에서 핵구름이 손을 길게 뻗어 방향을 증명했다.
"그놈도. 아니 그분도 '부주석보다 내 아버지가 더 높다'고 했고 부주석 아들도 인정했다니까.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고 인사까지 하면서."
다른 부하가 일어서 도련님이 했던 것보다 더 깊이 허리를 숙였다. 두령은 처음으로 무력부조 두목을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안에 근심으로 앉아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 죽는 상상도 모자라는 곳인데, 그것도 심려라잖아."
말이 끝나고 잠시, 공기가 멎었다. 북한에서 '심려'는 일반 사람들이 쓰는 말이 아니었다. 수령이 정말로 걱정하면 나라 전체가 불행해 보일 일이었다. 그래서 '심려'는 당에서 순화시킨 1호 용어 중 하나였다.
걱정은 인민이 하고, 심려는 수령이 하는 것으로, 말조차 하늘땅처럼 갈라져 있었다. 그 위에서 수령은 통치하며 '심려'했고, 인민은 엎드려 살면서 '걱정'했다. 그래서였다. 15호에 말반동이 많았던 이유는 말 하나에 수령의 신격은 위로 솟고, 인민의 인격은 아래로 낮아지는 그런 '조국'이었기 때문이다.
"몸통도 봐. 저런 인민이 어디 있냐고."
두령의 그 말에 두목의 고개가 가장 분명하게 흔들렸다. 그건 사실, 그도 처음부터 느꼈던 것이었다. 막사에 처음 들어섰을 때 막사 내부보다 먼저 보였던 몸집이었다. 그는 일부러 못 본 척 그 시선을 건너뛰었었다.
가난한 북한에선 뚱뚱한 사람은 무조건 간부였다. 지위가 높아도 광대뼈가 나오면 현직처럼 안 보였다. 아무리 간부라도 우여곡절 있거나 환자라는 의심이 먼저였다. 간부들도 태평스럽게 살집을 늘리기는 어려웠다.
간부들은 의식주 공급을 인민보다 더 잘 받는다 싶어도 당 조직생활에 끌려다니다 보면 몸집이 늘 여유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무력부 두목을 더 놀라게 한 건 그다음 말들이었다. 호위국조 두령이 남자답게, 통 크게 비밀 보자기를 풀어놓아서였다.
"너희들 무력부 촌놈들은 잘 모를 거야, 나 호위국 어디 있었던 줄 알아? 김평일 감금했던 보초였어. 그분도 사과주며 나한테 굽신댔다니까."
김평일은 김정일의 의붓동생이었다. 1975년부터 2년간 자택에 감금한 뒤, 1978년 유고슬라비아 무관으로 임명해 쫓아냈다. 사실상 해외로의 추방이었다. 그 후 오랫동안 폴란드 대사를 지냈다.
두령의 발설에 기관총도 무릎을 세우고 고백했다.
"내가 1호 호위총국에 있었잖아. 김성애 오빠, 김광협. 동생 김성갑도 어떻게 된 줄 알아?"
그리고 말을 끊으니 그 뒤로 더 음산하게 들렸다.
"경호했던 내 친구들까지 다 룡평 끌려갔어. 김정일 동지, 피도 안 섞였다고 그냥 싹-. 외삼촌들까지 다 보냈는데... 저 홍길동 하나쯤이야 뭐."
김성애는 김일성의 후처였다. 김정일은 그녀와 그 혈족을 없애기 위해 '곁가지 청산' 원칙을 내놓았다. 김일성의 유일지도체제를 내세워 곧고 굵은 줄기만 빼면 나머지는 다 잘라내야 할 잔가지라는 설이었다.
김성애는 사망할 때까지 자택에서 사실상 감금 상태로 살았다. 오빠 김광협과 남동생 김성갑은 모두 수용소로 이송시켰다. 그것은 15호 수용자들 속에서도 은밀히 오가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깊이 몰아쉬는 두목의 숨이 살짝 떨렸다.
"여긴 15호가 아니라 1호구나. 1호."
그 말이 운동장을 떠돈 지 오래지 않아 취침 점검 시간이 다가왔다. 드디어 독신자 막사의 문이 열렸다.
찌익— 수용자들은 흐트러졌던 자세를 고쳐 앉고 숨을 거두며 시선을 문으로 모았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호위국조의 두령이었다. 잠깐 망설인 것처럼 보였으나 뒤에서 밀쳤는지 몸이 기울어지며 몇 걸음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밖에서 훈련하고 들어온 사람들 같았다. 무력부조와 호위국조가 정확한 간격을 두고 한 줄로 들어섰다. 같은 각도로 바닥을 밟는 발과 동작 하나에도 흐트러짐 없이 막사 안을 관통했다.
맨 앞에 서 있는 건 두령이었다. 정면을 향한 그의 시선은 김성근 앞을 지날 때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단 한 순간, 아주 짧게 주춤하며 턱도 너무 높지 않게 살짝 내려갔다. 그러자 앞선 자가 인사했다고 판단했는지 뒤로 갈수록 고개는 점점 더 깊이 숙였다. 머리가 기울면서 어깨는 따라 접혔다. 어김없이 눈은 바닥을 향했다. 그렇게 맨 마지막의 무력부조 장갑차에 이르러서는 아예 허리까지 접혔다.
극단적으로 비만한 인물이 '수령의 아들'로 착각된 사건이 북한에서 두 번 있었다. 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대외보험총국 외화 사건'은 2002년, 평양에서 벌어졌다. 그자는 대낮에 거대한 체구를 내세워 김정일의 아들을 사칭했다.
간부들은 그의 살집과 권위적인 처세에 속아 외화를 바쳤다. 그러나 이 '요덕 자제분 사건'은 달랐다. 호위국 출신 수용자들이 자발적으로 판단하고 스스로 받들어 모신 충성경쟁의 산물이었다.
15호의 김성근은 남들보다 뚱뚱한 죄밖에 없었다. 그날도 그저 말없이 앉아 있었던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군 출신의 수용자들은 나갈 때와 들어올 때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 이유를 유일하게 아는 건 9분조뿐이었다. 그래서 주변에 부추기는 경직된 자세로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다른 수용자들은 감시반의 존재만으로 숨이 꺽 막혀 빚어놓은 모형처럼 꼿꼿이 앉아 있었다. 그 정적을 감시하듯 파리 한 마리가 앵—앵—거리며 막사 안을 유유히 돌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막사 안에서 유일하게 일어선 자는 미꾸라지였다. 그는 도무지 이런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속상한 얼굴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럴 만했다. 널빤지를 붉은땅크에게 아낌없이 내어준 탓에 침대 바닥은 뻥 뚫려 있었다. 자신만 서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벌 받는 기분이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주먹을 높이 쳐들었다.
"두목 동지! 아까 널빤지 기증했던 5분조 4번입니다. 담화 신청..."
칼로 싹둑 자르듯 돌아온 대답은 너무도 무책임했다.
"기증받은 적 없습니다. 조용히 합시다."
그 순간 파리의 날개짓 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렸다. 그 소리가 막사 안을 두 바퀴를 더 돌고 자기 앞을 스쳐 지나갈 즈음에 미꾸라지는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그럼… 전 오늘 어디서 자라는 건지—"
이번엔 곤봉처럼 목소리가 불쑥 일어섰다.
"조용하라고 했습니다. 집단생활에서 떠들면 되겠습니까."
그 말에 더는 누구도 숨조차 크게 쉬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이 무식한 그들만의 또 다른 폭력의 방식이라고 모두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말이 아니었다. 이번엔 노래였다. 그 선창을 뗀 자는 호위국조의 두령이었다.
가는 길 험난하다 해도 시련의 고비 넘으리.
그 음절 하나하나가 막사 천장을 타고 흘렀다. 그러자 두목이 뒤질세라 그 노래에 자기 목소리를 겹쳤다.
불바람 휘몰아쳐 와도 생사를 같이하리라.
수용자들의 표정은 일제히 괴로워졌다. 감시반도, 군 출신도 아닌 정신 나간 무리에 짓밟혔다는 허탈감 때문이었다. 더 놀라운 건 그 두 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력부조와 호위국조 전원이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합창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천금 주고 살 수 없는 동지의 한없는 사랑.
다진 맹세 변치 말자.
그 마지막 구절에서, 그들 모두의 눈동자가 한 사람을 향했다. 바로 김성근에게로...
한 별을 우러러 보네.※ 다음 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