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츠치카가 나간 뒤 9분조는 본심을 드러냈다. 함부로 물건을 만지기도 하고 연장들을 구경했다. 지어 풍구질도 해보았다. 김성근은 한자리에 서 있었다. 사실 말해 그가 아니었다면 9분조는 이미 내쫓겼을 것이다.

    이세봉의 시선은 짜증으로 둘러보다가도 자꾸 김성근에게서 걸렸다. 그는 끝없이 이세봉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야장간에 남게 해달라는 어린애의 애원처럼 느껴졌다. 뚱뚱한데도 어쩐지 애잔했다. 살이 많은 게 아니라 마음이 물러 보였다.

    이세봉은 인내심을 폭발하듯 징을 쾅! 울렸다. 엄포도 함께 터졌다. 그제야 9분조는 서둘러 벽에 한 줄로 길게 섰다. 하지만 '바로 선' 놈은 하나도 없었다. 허리를 돌리고, 삐딱하고, 대놓고 벽에 기대고 있었다. 도련님은 아예 두 팔을 높이 들어 기지개를 켰다. 배꼽이 보일 정도로 어디 매달려 있는 자세였다.

    이세봉이 위엄 있게 말할 때도 9분조는 그저 건성 건성이었다. 야장간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버티고 있는 건 여전히 망치와 모루뿐이었다. 이세봉은 곧게 서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입을 열었다.

    "여기는… 15호 다섯 개 리 중에서도 가장 크고, 가장 발전된 주조 기술, 그리고 최고 전문성을 가진—"

    그는 한 박자 멈췄다.

    "카츠치카 도공님이 운영하는, 대숙리 야장간이다."

    그 순간, 뒤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주둥이가 팔꿈치로 도련님을 쿡 찔렀다.

    "카츠, 뭐래?"

    도성진이 작게 웃으며 속삭였다.

    "무슨 별명이 일본말 같아요. 히히."

    이세봉의 눈빛이 정색으로, 날카롭게 꽂혔다.

    "조용! 도공님은 일본어밖에 모르신다."

    주둥이가 무슨 자신감인지 한 발 내밀었다.

    "에이... 그러면 우리랑 같이 일을 할 수 있겠어요?"

    그 말에 이세봉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희들과 대화할 일도 없다. 물어볼 게 있으면 나한테 해."

    도련님이 여전히 불량한 자세로 따지고 들었다.

    "여기 같은 15호 죄수들 맞죠? 조선말 모르긴 뭘 몰라. 우릴 뭘로 보고."

    주둥이가 선심 쓰듯 한마디 더 얹었다.

    "눈도 마주치고 인사도 해야… 그래야 정도 들고."

    "우리 도공님은, 너희들과 정들 일이 없다."

    우르르— 마치 공사장에서 잘못 쏟아놓은 자갈처럼, 9분조원들이 마당으로 한꺼번에 밀려 나왔다. 누가 먼저 나간 건지도 모를 만큼 엉켜 있었다.

    주둥이 신발이 벗겨지고 도련님 팔꿈치는 누구에게 밟혔다. 이세봉은 뒤따라 나오며 손을 툭툭 털었다. 문 앞에 남은 김성근도 밀어보려고 했지만 움쩍하지 않았다. 그의 뒤로 문이 쾅 닫혔다. 

    도련님이 기지개를 길게 켰다. 등뼈가 으드득 소리를 냈다.

    "쫓겨났으니, 하루종일 노는 게… 우리 탓은 아니지."

    그 옆에서 주둥이도 똑같이 기지개를 켰다. 팔을 하늘로 쭉 뻗으며 입을 벌려 하품처럼 말을 흘렸다.

    "뛰라는 놈도 없고, 감시도 없…"

    둘은 거의 동시에 자기 말에 놀라며 굳어졌다. 그게 늘 소원이었는데 지금, 임시로 현실이 된 것이었다. 기지개도, 하품도 제멋대로인 서로의 팔끝을 잠시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직 내리지 않은 자신의 팔도 올려다봤다. 조금 더 길게 뻗어봤다. 그게 됐다. 몰래 하는 것이 아니라 몰라도 되는 기지개였다. 곁에서 그걸 본 가수도 초조한 얼굴로 검은손에게 물었다.

    "그럼… 우리 다시 작업장 가는 거예요?"

    분조장이 대답하려다 김성근 쪽을 먼저 돌아봤다. 그는 여전히 야장간 문턱 앞에 혼자 서 있었다. 그의 그림자가 문 안쪽으로 길게 드리워졌다. 그가 소리쳤다.

    "난 안 가겠수꾸마. 여기가 정들만 하꾸마."

    김성근의 그 한마디에 9분조원들의 마음도 극도로 불안해졌다. 서로가 마주 보는 것이 어려워 눈길을 내리거나 괜히 먼 데를 바라봤다. 그때 도성진이 팔을 사방에 쭉 휘저으며 소리쳤다.

    "봐요! 여기, 가족세대 구역 안이예요! 히야— 드디어 우리도… 사람 사는 데 왔어요!"

    정말 그랬다. 대열부장을 따라올 때는 고개를 숙이고 걷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마당 한쪽 끝으로 골목길이 나 있었다. 그 안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빨랫줄이 보였다. 또 다른 시야 너머엔 담장도 쭉 이어져 있었다. 도련님과 주둥이가 천천히 서로를 바라봤다.

    잠시 후 야장간 문이 다시 열렸다. 실은 김성근이 구걸하듯 열어달라고 소리쳤기 때문이었다. 다시 들어온 9분조는 전보다 확실하게 달라져 있었다. 일단 주눅 들어있었다. 그들의 다소곳한 표정에는 깊은 반성과 복종, 삐딱함과 못마땅함이 한데 버무려져 있었다.

    댕― 문턱에 매달린 징이 울렸다. 맑고 단단한 소리였다. 이세봉의 손끝에서 나오는 엄격한 울림이었다.

    "이렇게 한 번 치면 작업시작이다! 그러면 지금보다 더 정중하게. 차.렷. 자세로!"

    9분조는 차렷했다. 숨까지 끌어올린 군대식 자세는 아니었다. 그냥 몸을 하나로 정리한 태도였다.

    "이때는 다 같이 이렇게 외치고 일해야 한다. '작업시작!' 따라해 봐. 작업시작!"

    "작업시작…"

    이세봉의 한 목소리보다 6명의 목소리는 작고 훑어져 있었다.

    댕! 댕!

    "이 두 번은 작업휴식이다! 이때는 편하게 누워 있어도 상관없다."

    주둥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닥의 쇳조각 하나를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댕!

    그 순간, 이세봉이 징을 다시 쳤다. 9분조는 거의 반사적으로 습관처럼 심드렁한 목소리를 흘렸다.

    "작업시작!"

    저들도 자신들이 놀랐는지, 어! 하며 서로를 칭찬하는 감탄 소리가 더 컸다.

    "좋다."

    이세봉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너희들이 도공님께 할 수 있는 말은 딱 하나. 스.미.마.셍! 기억해라. 스미마셍!"

    그 말에 가수가 손을 들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려주는 게 예의 아닐까요?"

    "그래. 예의다. 미안하다. 죄송하다… 그런 뜻의 일본식 인사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도무지 어디에 맞춰야 할지 모르는 표정들만 떠돌았다. 그러다 주둥이가 툭, 쏘았다.

    "아니, 죄송한데… 왜 인사를 한다는 거요?"

    그 말에 도성진이 풉! 하고 터졌다. 김성근마저 어깨를 한 번 들썩였다. 이세봉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징을 댕! 댕! 댕! 세 번 두드렸다.

    "이 세 번은 하루 작업 끝났다는 뜻이다. 알겠는가?"

    9분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서로 마주 봤다. 그들의 얼굴에는 이미 '참을 수 없는 경련'이 퍼지고 있었다. 입꼬리를 깨물고 코끝을 비틀며 버티던 그 순간 결국, 도성진에게서 시작된 웃음이 도련님, 가수, 주둥이, 김성근을 타고 폭소로 터졌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