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식시간이 끝나기 직전 2작업반 반장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9분조로 달려왔다.

    그의 말은 단도직입적이었다.

    "4명만. 지금 가족세대 작업장에 보내. 거기 큰 돌들 들어내야 해."

    그러고는 주저 없이 손가락을 내밀어 검은손, 주둥이, 도련님, 가수를 지목했다. 가족세대란 말에 주둥이는 도련님에게 돌아섰다. 사실 자기가 더 좋으면서도 거꾸로 물었다.

    "좋지?"

    "아니 왜 하필 또 거기야. 망신스럽게."

    9분조의 분리 배치는 단순한 작업 지시가 아니었다. 최종배와 2작업반 반장이 짠 계략이었다. 9분조 선배들을 그쪽으로 유인한 뒤 신입인 도성진과 김성근만 떼어내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혼자 남은 도성진을 손보려는 계산된 술수였다.

    "작업시작!"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분조들이 마지못해 움직였다. 떨어져 나온 9분조 넷은 가족세대 작업장으로 갔다. 도착해서 현장을 둘러본 검은손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반장이 말하던 큰 돌 정도가 아니었다. 아주 큰 바위들이 박혀 있는 돌밭이었다. 여자들에게 이 지역을 맡긴 담당 보위원이 정말 무식하다며 혀를 찼다.

    그러나 가족세대 여자들은 주둥이를 알아보고 환호했다. 그 속에서도 장찌엔의 반응이 제일 호탕했다. 그녀는 호미로 도련님을 가리키며 고개를 젖히고 웃었다. 도련님은 기겁하다 못해 울상이 됐다.

    "뭐야. 벌써 중국까지 소문 난 거야?"

    민유정도 싫지 않은 눈으로 9분조를 바라봤다. 좋은 티를 다 감추고 뾰족하게 서 있었다. 윤진경은 수심 깊은 눈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김상미는 발뒤축까지 들어 올리며 웃었다. 그러다 도성진이 보이지 않자 돌변해 9분조 전부를 돌맹이 취급했다. 유독 박해순의 표정만 따가웠다. 화풀이하듯 호미질하며 눈은 도련님을 계속 쏘아보았다. 도련님이 사죄처럼 몇 번이나 억지로 웃음을 보내니 박해순은 끝내 버럭 소리 질렀다.

    "내 옆에 와서 일하라고!"

    "아 그런 뜻이었어요?"

    도련님은 자기도 모르게 존댓말로 변하며 얼른 그 옆으로 달려갔다. 도련님은 박해순 앞에 있는 흙에서 돌을 꺼내며 말했다.

    "잘못 아는 게… 내가 부주석 아들은 아니고…"

    "어이구나. 어떻게 뒤처리까지 쬐쬐하게..."

    도련님은 그 자리가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엄지손가락을 흔들어 응원하는 주둥이의 행동마저 조롱 같았다. 박해순은 윗주머니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부주석이고 10초고... 아니 10초도 안 되지. 어쨌거나, 소문은 안 내겠으니까. 조건이 있어요."

    "이번엔 무슨 조건…"

    "처음 같아선 정말 다 소문 퍼뜨리고 싶었는데… 난 약속 지킨다면 지키는 여자예요. 아버지가 현직 부주석이면… 빽은 튼튼하겠지요?"

    그 말에 도련님의 어깨가 저절로 펴졌다.

    "내가 소장이랑 맞담배 피우는 정도니…"

    "그 쪽지 내 삼촌 집 주소예요. 아버지를 여기다 집어넣은 책임비서 비리 자료 거기 다 있어요. 부주석한테 전달해서… 우리 아버지 억울한 죄 좀 풀어줘요."

    그리고는 호미를 땅에 푹- 박으며 그 힘이 들어간 눈으로 쳐다봤다.

    "할 수 있지요?"

    "해야지. 그래야지."

    도련님은 당장 해결할 것처럼 쪽지를 다시 들여다보고 윗주머니에 간직했다. 저만치서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속에 주둥이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가서 일해야 해서..."

    도련님은 그쪽으로 냅다 뛰어갔다. 역시나 가족세대 여자들이 주둥이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는 정대로 돌을 두드려대고 있었다.

    "이 돌 내가 작년에 여기로 옮겨왔거든, 근데 올해는 또 다른데 옮기라잖아. 지금 이놈이 나한테 뭐라는 줄 알아? '한석아, 너 돌대가리니?'"

    여자들은 소리 내어 웃었다. 장찌엔이 손가락으로 다른 돌을 가리켰다.

    "그럼 저 돌은 뭐라고 해?"

    주둥이가 슬쩍 민유정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 돌만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어, 그건 여자 돌인데, 이 돌대가리 이름을 특별히 기억했나 봐."

    그리고 여자 목소리를 흉내 내며, "한석아. 나 깨지기 싫으니 차라리 날 안고 어디든 가!"

    민유정은 주둥이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빨개졌다. 도련님이 기분이 좀 풀렸는지 끼어들었다.

    "안았어? 안아야지."

    "안으려고 했지. 정말 안고 싶었는데…"

    주둥이는 진지한 표정을 만들더니 주위를 한 번 더 확인한 뒤 작게 말했다.

    "근데 이돌! 이돌! 너희들 여기 여자 보위원, 홍신영 돌이 나타난 거야!"

    "그년 못 들게 하겠는데! 세상 재수 없는 년인데..."

    장찌엔의 말에 여자들도 웃음이 사라졌다. 민유정은 긴장한 눈빛이었다. 주둥이가 등을 곧게 폈다.

    "내 이름이 뭐야. 한석. 한번 마음먹으면 돌처럼 굳어지는 한석이잖아. 그래서 냉큼 안고 둘이 함께 도망치니까…"

    정말로 줄행랑 치듯 제자리걸음으로 뛰었다.

    "뒤에서 홍신영 돌이 막 울면서 소리치는 거야."

    장찌엔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뭐라고? 어떻게?"

    다들 자기만 바라보는 여자들을 둘러본 뒤 주둥이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 힘껏 목소리를 뿜었다.

    "내가 이 안에서 진짜 돌대가리인데! 내가 제일 큰 돌대가리인데!"

    그 외침에 장찌엔은 목젖이 보이게 웃었다. 다른 여자들도 배를 잡고 웃었다. 민유정은 웃으면서도 주둥이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때 날카로운 소리 하나가 오래간만에 크게 웃던 사람들의 허파까지 쑥 찌르고 들어왔다.

    "누구야? 왜 웃어? 여기가 유치원이야?"

    "어머머 범이 제 소리하면 온다고."

    가족세대 여자담당 보위원 홍신영이었다. 표정과 목소리부터 사나웠다. 장찌엔이 투덜거렸다.

    "휴식 시간이 금방 끝났으니..."

    "야. 이 년아. 끝났으니까 일해야지."

    "어이구나 웃었지 반동짓 했나?"

    "이년아, 반동이 웃어? 감히? 감히 웃어?"

    장찌엔이 벌떡 몸을 솟구쳤다. 자기 분조 흙더미를 손가락질하며 사방을 휘둘러 보았다. 그러더니 보위원의 목대 열 개를 겹쳐도 절대 따라올 수 없는 괴성을 질러 댔다.

    "어느 년이야? 누구야? 우리 분조 흙 퍼갔어? 나와 쌍년아! 다신 여자인 척 못하게 젖통을 호미로 찍고 말까부다. 누구야?"

    "이년아 조용해!"

    보위원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발을 돌려 되돌아갈 때까지 장찌엔은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어떤 년이야? 눈깔 뽑아 씹어버릴까부다. 내가 여기 왔으면 인생 다 왔지. 갈 데가 더 어디 있어? 나와! 흙 퍼간 년 안 나와?"

    "이 미친년아. 아가리 닥쳐."

    "남의 혁명화 누가 도둑질했냐고! 혓바닥을 뽑아 버릴 거니까.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 열 받게 해? 내 오늘 그 쌍년 대갈통 박살 내고 죽을 거니까."

    누가 들어도 흙 도둑을 향한 저주가 아니었다. 제 분을 못이겨 화 난 본심을 그대로 드러낸 장찌엔이었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