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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지휘부에 자리 잡은 김일성 동지 혁명역사연구실 안은 분위기가 심각했다. 조직부장은 단정한 책상 앞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 앞으론 관객처럼 소장, 정치부장, 선전부장, 간부부장을 비롯한 부장급 이상 고위 간부들이 줄지어 자리 잡고 있었다. 책상 위 조명은 중앙만 밝게 비추었다. 마치 무대와 객석이 아니라 권한의 빛과 복종의 그늘 같았다. 조직부장이 엄숙하게 말했다.
"최덕철 동무. 일어나십시오."
정치부장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깨의 대좌 계급장은 여전히 선명했지만, 그의 자세는 어딘가 굳어져 있었다. 그보다 별이 하나 적은 상좌 조직부장은 의자 등받이에 허리를 기대고 있었다.
"정치부장 아래 직급인 이 조직부장이 간부세포 당위원회의 세포비서직을 왜 맡고 있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정치부장이 숨을 고르는데 조직부장이 다그쳤다.
"우리당 세포조직생활의 원칙을 말해보란 말입니다."
정치부장은 정답처럼 암기한 말투로 대답했다.
"당과 수령 앞에서는 모두가 평당원입니다. 그 어떤 직책이나 권한도 수령의 유일지도체제 앞에서는..."
조직부장이 말을 끊었다.
"그걸 안다는 양반이 말이야... 엉? 최덕철 동무!"
소장은 정치부장의 어깨에 붙은 별을 넌지시 쳐다보았다. 자기와 같은 견장이라서 시선을 거둘 땐 눈을 감았다. 정치부장은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마엔 이미 식은땀이 흘렀다. 입술은 반쯤 벌어져 굳어 있었다. 지금 자신을 둘러싼 시선들은 검열보다 더 가혹했다. 조직부장은 두툼한 서류를 책상 위에 툭 던졌다. 그 안에는 정치부장이 개별담화했던 수용자들의 진술서가 들어있었다. 담배가 몇 개비인지, 빵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도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그 서류를 조직부장이 낭독한 뒤 비판들이 쏟아졌다. 먼저 후방부장이 일어나 목소리를 높였다.
"김동규인지 뭔지 그놈 때도 강냉이를 주라고 지시하지 않았습니까? 그놈이 일반 죄수였습니까?"
대열부장에 이어 선전부장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담화를 빌미로 식량을 주다니요, 정치부장 동지. 이건 월권 아닙니까. 아니 이건 반역 동조 아닙니까?"
"잡종 놈... 담화를 한 그 수용자 말입니다. 어찌 자기 죽을 줄 알고 탈출을 감행했겠습니까? 그 또한 설명하셔야 합니다."
최덕철은 대답하지 못했다. 말해도 통하지 않을 자리였다. 정작 무너진 것은 말이 아니라 그가 믿어왔던 이 체계의 내면이었다.
같은 시간에 독신자 막사의 운동장에서도 수용자들의 생활총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수용자들은 분조 줄로 정렬해 앉았다. 연단에 앉은 최종배는 길게 하품을 했다. 눈을 부릅뜨고 일어서는 미꾸라지가 보위원보다 더 극성이었다. 그의 팔에는 감시반 반장 완장이 보이지 않았다. 일반 수용자로 강등됐어도 목소리나 길게 뻗친 손에 묻은 열정은 변함이 없었다.
"야, 방철갑이!"
갑작스러운 외침과 손의 방향에 수용자들의 시선이 거기로 몰려갔다. 그 자리엔 전직 해군사령관 방철갑이 있었다. 미꾸라지는 눈에 불을 켜고 그를 쏘아보았다.
"뭐? 지가 조선 바다를 지키는 철갑? 성부터 이름까지 타고났어? 그래서 해군사령관이야? 그렇게 딱 맞춰 태어났으면! 여기 왜 들어왔어?"
수용자들이 술렁이자 미꾸라지는 감시반장인 양 명령했다.
"안 일어나?"
일어선 방철갑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건 제 말이 아닙니다."
그 대꾸는 들려야 할 만큼의 크기였고 무너지지 않을 만큼의 두께였다. 미꾸라지는 더욱 발끈했다.
"그럼 누구야! 어느 무식한 새끼가 그딴 소릴 했는지 나와! 네 쫄따구들은 다 구류장 갔고, 그럼 누구야? 어느 개새끼야?"
그때였다. 무리 속에서 한 사람이 벌떡 일어섰다.
"야, 이 개새끼야! 그건 우리 수령님께서 저 사람을 해군사령관으로 임명하실 때 직접 하신 교시야."
그 말에 주변이 술렁였다. 미꾸라지는 입술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교시받은 분이 왜… 왜 여기까지 들어와서 나한테 피해를 주냐고…"
멀찍이 또 다른 수용자가 미꾸라지를 향해 일어섰다.
"이 미친놈아. 우리 무력부 혁명연구실에도 그 교시 걸려 있어. 감히 교시인데 저 개새끼가 어디서?"
미꾸라지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입술이 덜덜 떨렸고 손가락도 바들거렸다. 이때라고 생각했는지 수용자들이 저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목소리를 깃발처럼 높이 추켜세웠다. 수령님의 교시를 등에 업고 반동들이 들고 일어났다.
"저 개새끼 반동새끼."
"감시반장도 아닌 새끼가 아직도 날뛰어."
"야. 내 물통 가져간 거 언제 줄 거야? 도둑놈아!"
"너 새끼 사회 나가서 보자."
"명태로 때려도 죽을 병신새끼야."
수용자들이 와와 떠드는 소리에는 정작 수령은 없었다. 시작만 수령이었지 전부 제 감정들이었다. 도성진도 아무 말이나 마구 쏟아냈다. 그의 부르짖음엔 월왕령 이름이 제일 많이 들렸다. 그 요란한 함성을 기회라고 생각한 한 사람이 있었다. 김성근이었다.
그는 하늘을 우러르며 큰소리로 외쳤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저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제 마음이 흔들려 천국을 잠깐 멀리 보았습니다.
가까운 제 발밑의 지옥을 먼저 보았습니다.
소리가 없는 이 세상에서 제 귀가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조용, 조용."
최종배 소리는 대중의 고함에 묻혔다. 두 팔을 흔들어도 보이지 않았다. 2작업반 반장도 연단에 뛰어올라 섰지만, 수용자들은 일부러 더 모른 척했다. 심지어 그 상황을 즐기다 못해 배를 잡고 웃는 자들도 있었다. 최종배가 권총을 빼들었다.
"탕. 탕. 탕."
순간 고함도, 땅을 치던 발소리도 일제히 잦아들었다. 그런데 그 정적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관현악 울림이 절정에서 멎으며 홀로 남은 한 줄기 솔로 음색처럼 김성근이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제는 멈추지 않고 계속 우는 것이었다. 최종배는 설마 하는 눈으로 자기 총구를 들여다보고 소리 질렀다.
"저 새끼 누가 때렸어? 저거 왜 울어?"
최종배가 다시 물었으나 매를 든 사람은 없었다. 더구나 왜 우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독신자 막사 운동장에선 비판했던 자가 오히려 대중의 심판을 받았지만, 김일성 동지 혁명역사연구실에선 보위원들의 과녁은 빗나가지 않았다. 벽시계 초침 소리조차 허락되지 않는 침묵이 흘렀다.
정치부장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심장을 꾹 눌러 겨우 진정시키려는 듯 자기 호흡을 귀로 듣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수척한 빛이 완연했다. 입가에선 말이 아닌 망설임이 말라붙은 채 떨리고 있었다. 조직부장이 천천히 일어섰다. 단정히 정돈된 군복의 깃이 각을 이루었다. 그는 먼저 기침으로 발언의 시작을 알렸다. 그 뒤로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
"안전부는 교화소라고 하는데 우리 보위부는 왜 관리소라고 하는지 압니까?"
그의 목소리는 벽을 때리고 바닥을 꿰뚫으며 또렷하게 울렸다.
"보위부는 교화시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냥 짐승들을 관리하는 곳입니다.
정치부장은 눈을 뜨고 있어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조직부장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
"여기서 나간 자들이 출세를 하든 말든 그건 당에서 할 일입니다. 우리의 혁명화는 두 발로 걸어 들어온 자들이 나갈 때는 네 발로 걷게 하는 겁니다."
소장은 한 두 번 짧고 묵직한 소리로 기침을 했다. 그리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조직부장의 말은 계속되었다.
"짐승들의 관리자 손엔 채찍만 있어야 하는데 최덕철 동무는 음식을 들었습니다."
조직부장은 마지막 말을 오히려 부드럽게 흘렸다.
"이젠 채찍과 빵의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정치부장의 눈동자가 허공을 맴돌았다. 초점을 잃으며 흔들렸다. 입술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무릎이 풀리며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다들 시체처럼 내려다보기만 할 때 소장이 버럭 소릴 질렀다.
"뭐 해, 이놈들아. 군의관 불러!"
재차 조직부장이 격식을 갖춰 말했다.
"오늘 세포총회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소장이 먼저 나갔다. 군관들이 그 뒤를 따랐다. 신발 소리는 규율처럼 일정했다. 그날 생활총화 현장에서 정치부장은 운전병이 들고 온 담요 속에 실려 나갔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는 끝내 자기 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망한 것도 구속된 것도 아니었다. 심각한 정신병 질환자로 곧장 49호 병원에 이송됐다.
그가 무너진 때는 하필이면 15호가 옹헤야 탈주 사건으로 당조직지도부의 검열을 받고 있던 때였다. 누군가의 책임이 꼭 필요했다. 조직부장은 주저 없이 '마녀사냥'을 했고 그 한 사람에게 모든 짐을 떠넘겼다. 그 의도로 사전에 준비된 자료로 진행된 집중비판이었다. 조직부장의 언사도 노골적이었다.
정치부장은 검열의 창끝이 자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정말 미친 것인지 아니면 미친 척 한 것인지는 본인만이 아는 일이었다.어쨌거나 그가 미친 덕에 그의 인생은 환자로 끝났다. 더불어 가족도 무사할 수 있었다. 정치부장이 가장 존경했던 사람은 김동규였다. 그는 떠나는 마지막 날 유언처럼 이런 말을 남겼다.
"자기가 시커먼 양심이 못 된다 싶으면 미친 척해서라도 맹물로 사오. 그게 오래 살아남는 방법이요."
그는 49호 병원에서도 하루 종일 손가락 하나를 들고 똑같은 소리만 반복했다.
"강냉이 하나만 줘요. 그거면 돼요. 강냉이 하나만 돼요..."※ 다음 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