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부장이 단독막사에서 김동규를 만나고 있던 그 시간, 소장은 자기 사무실 안에서 문을 잠그고 있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반대쪽을 향해 움직였다. 사무실 안에 숨겨진 작은 비밀방인 혁명화학습실로 들어갔다.
내부는 컴컴했다. 전등 대신 낮은 촛불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벽과 천장에서 그림자가 기어 다녔다. 빛이 닿는 곳에는 오히려 어둠이 더 짙어졌다. 좁은 식탁 위에는 하얀 이밥 한 공기, 마른 명태 조각, 반쯤 비워진 통조림 그리고 소주병이 놓여 있었다.
그 곁에는 속옷 차림으로 다소곳이 서 있는 서련화가 있었다. 하얀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은 그녀는 마치 잘 닦아놓은 인형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23세의 서련화는 '기쁨조'라는 단어보다 훨씬 더 복잡한 세계에서 다듬어진 여자였다.
북한 당조직지도부 5과. 그 이름 하나로도 그 안에서의 육체는 단순한 신체가 아니라 신비의 도구였다. 그 세계에서 '선발'이란 미모의 틀이 만들어지는 나이, 열셋 즈음부터 시작되었다. 생리가 시작되며 얼굴 윤곽과 미모의 균형이 잡히기 시작한 그 나이부터 당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6개월마다 반복되는 검진. 질병, 치아, 성장, 그리고 처녀막까지 그녀의 몸은 언제나 심사 대상이었다. 학교는 관찰소 같았고 보호라는 명분으로 선별했다. 그렇게 전국의 여자 중학교에서 수많은 소녀들이 걸러지고, 몇몇만이 살아남았다. 그 '미모 생존'의 아이들은 '5과 강습생'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강습소는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궁전이었다. 우유로 씻고, 기름기 없는 음식으로 미모를 유지했으며, 발레와 마사지를 통해 몸을 단련했다. 음악, 문학, 세계사를 배웠고, 그 모든 것 위에는 '음양오행'이라는 이름의 은밀한 철학이 수혈됐다.
그녀는 배웠다. 여자는 음이고, 남자는 양이라는 것을. 움직이지 않고 끌어당기는 힘. 입을 열지 않고 무장해제시키는 기술. 그 힘을 완성한 여자만이 김정일의 초대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7년. 그녀는 웃는 법과, 침묵하는 법, 그리고 사라지는 법까지 배웠다. 기쁨조는 23살에 사회로 배출됐다. 결혼을 원하면 당에서 직접 신랑감을 골라주는 '배려'도 있었다. 본인이 간부가 되길 바라면 당에서 재교육을 실시해 기관에 배치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입이 먼저 나가면, 그런 여자의 생명은 자취없이 사라졌다. 다행히 서련화는 존재했다. 대신 끌려왔다. 가벼운 말실수 하나로 그녀는 여자독신자세대 수용자가 됐다.
소장은 찬찬히 뜯어보다 못해 몸이 서서히 서련화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녀의 얼굴은 누군가 심혈을 기울여 깎아낸 조각상 같았다. 코는 매끄럽게 곧았다. 욕망도 두려움도 알지 못하는 고요한 선처럼 입술은 가볍게 다물려 있었다. 말보다 숨결이 더 어울렸다. 두 볼은 희미하게 긴장되어 있어 오히려 더 매혹적이었다.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수함이 잔잔하게 배어 있었다.
소장은 서련화의 그 모든 것 중에서도 유독 두 눈을 뚫어지게 살폈다. 눈빛이 깊었다. 촛불 따위에는 흔들리지도, 반짝거리지도 않았다. 그 작은 빛마저 나누지 않고 오히려 삼켜버렸다. 굳이 쳐다보지 않아도 모든 움직임을 압도하는 눈이었다.
"쯔쯔쯔."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이던 소장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고운 것들은 꼭 고운 대가를 치른다니까. 아무튼, 너 식당 근무로 돌리고, 빨리 나가도록 힘도 써보겠으니... 아무튼, 옆으로 와 앉아."
서련화는 처음이 아닌 듯 다가왔다. 무릎을 곱게 모으고 소장 옆에 살포시 앉았다. 한 줌도 흐트러짐이 없는 동작이었다. 숨결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곁에 가까이 앉혀 주셔서, 선생님."
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초면의 수줍음이나 자신을 낮추는 경계도 전혀 없었다. 소장은 손사래를 치며 툴툴거렸다.
"야야, 선생은 무슨... 밖에서 모셨던 그대로 해. 똑같이. 뭔지 알지?"
서련화는 조심스럽게 소장의 술잔을 채웠다. 그리고 촉촉하지만 끝내 다가서지 않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속에는 결코 범접할 수 없는 황홀함의 권위가 버티고 서 있었다.
"정말, 밖에서 모셨던 그대로 말입니까?"
서련화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 웃음 속에는 '너를? 내가?' 하는 냉정한 거리감이 서려 있었다. 소장은 얼결에 대답했다.
"그래, 그래.”"
그러면서도 "정말 이 여자가 죄수인가? 아니, 죄수가 맞긴 한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스쳤다.
소장은 이미 취한 사람처럼 손을 허공에 내저었다. 벗으라는 한마디면 될 텐데 그 말 한 줄이 이토록 힘든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술잔을 들이키는 소장의 손길은 서툴렀다. 눈은 벌써 서련화에게 흠뻑 취해 있었다.
서련화는 손가락을 술잔 속에 살짝 담갔다. 그 젖은 손이 대단한 특혜라도 되는 듯 소장의 입술 앞으로 가져갔다. 소장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어린아이처럼 그 손가락을 덥석 물었다. 입안에서 조심스레 돌리며 사탕처럼 달콤하게 빨아들였다. 서련화는 그 반응을 뻔히 알면서도 아주 천천히 손가락을 빼냈다.
"매일 강한 것도 싫증 나지? 전부 네 아래 것들인데."
서련화의 거침없는 반말에 소장은 순간,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밖에서 하던 대로 하라며?"
그녀가 부드럽게 쏘아붙이자 소장은 본능처럼 고개를 심하게 끄덕였다. 그의 귓가에 살결처럼 부드러운 숨을 불어넣었다.
"오늘은 내 앞에서 한 번 약해봐. 다 내려놓고."
소장의 눈동자가 떨렸다. 자기도 모르게, 처음으로 권력자가 아닌, 한 남자로서의 나약함을 느꼈다. 그게 더 찌릿했다. 서련화가 귀를 부드럽게 깨물자 그 충동이 더 커졌다.
"아프지? 나, 강하지?"
서련화의 속삭임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소장은 자기도 모르게 속삭였다.
"오... 아파. 강해."
"봐봐."
서련화는 소장의 머리를 자기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네 목소리도 작아졌잖아. 내 앞에서 약해졌잖아. 그렇지?"
소장은 홀린 듯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정말 그렇구나..."
서련화는 흐릿하게 웃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
"착해. 착하니까 다 보여줄게. 216단계까지."
"216단계?"
소장은 잠시 얼어붙었다. 서련화는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북한에서 '216'은 김정일의 생일이자 절대권력의 의미였다. 김정일 최측근 차량 번호 앞자리도 216이다. 기쁨이 216개나 된다는 사실에 소장은 신기해했다.
"응. 오늘부터 하나씩. 지금 1단계부터 해볼까?"
그녀는 소장의 목을 감싸고 볼을 쓰다듬었다. 소장은 자기가 소장이라는 사실도, 서련화가 죄수라는 것도 모두 하얗게 잊어먹었다. 그저 그녀의 손길에 모든 걸 맡기고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리길 바랐다.
"1단계는 '방긋 두 입'이야."
"방긋 두 입?"
소장은 어리둥절했다. 자기가 그 얼굴인지도 모르고 되물었다.
서련화는 입술에 엷은 미소를 그렸다.
"여자는 입이 두 개야. 위, 아래."
그 단순한 비유에 소장은 멍청히 웃었다. 여자가 순진한 자기 표정을 알아봐 줬으면 했다.
"그 두 입이 방긋 웃으려면 어떻게?”"
서련화는 소장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먼저, 속부터 나눠야 해. 네 속, 내 속."
소장은 비밀처럼 물었다.
"그 속은... 어떻게 나누는 건데?"
서련화는 소장의 얼굴을 두 손 가득 끌어안고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네 속에만 꼿꼿하게 서 있던 것, 남들에게 강하게 보이려고 감추었던 외로움 같은 것, 그게 설사 아픈 거면 아프다고 말해. 내가 엄마처럼 이렇게 어루만져 줄게."
엄마처럼! 그 한마디가 소장의 심장을 가득 채웠다. 소장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서련화의 젖가슴 살이 그의 뺨을 부드럽게 만져주었다. 그 촉감은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진짜 다정함이었다. 잊어버린 평온, 아물지 못한 상처들까지 전부 감싸 안는 포근함이었다. 소장의 감은 눈에 무엇인가 채워졌다. 그 감각을 붙들고 정말로 울고 싶어졌다. 지금 이 순간 울지 않으면 다시는 울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먼저 술병을 통째로 들고 맹물처럼 꿀꺽꿀꺽 마셨다. 그러자 서련화도 다른 병을 집어 들고 똑같이 소리 내며 마셨다. 신비했다. 그 행동 하나였을 뿐인데도 전부를 다 받은 것 같았다. 어디까지 따라오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술병을 끝까지 기울였다. 역시나 서련화는 도중에 멈추지 않았다. 느리지만 기어이 해내겠다는 듯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눈에선 눈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순간, 소장의 가슴이 그 눈물에 젖었다. 마치도 자기가 서련화를 따라 어딘가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시키면 시킨 대로 오직 그녀 앞에서만, 진짜 외로움을 털어내고 싶어졌다. 술 때문에 취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녀 앞에서 약해졌다. 자기가 하는 말인데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됐다. 입과 귀가 따로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내가 이 자리까지 그냥 올라왔겠냐고. 내 시작은 남들에겐 끝이었어. 명령하면 복종하고, 죽이라면 죽어야 했고. 아무튼... 이젠 나도 잔인해져 버렸어. 자식새끼한테도 걸핏하면 손이 올라가고, 죽이겠다는 소리까지 나와. 그때마다. 아무튼... 해야 해. 그래야 내 증오가 멈추고 행동도 멈춰. 혼자 있으면... 이젠 자꾸 눈물이 나. 남들 소소하게 사는 거 보면 부럽고... 부러워서 화가 나고 화나서 또 울고..."
촛불은 희미하게 흔들렸다. 그 작은 불빛 아래 한 남자가 조금씩 조심스럽게 무너지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