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싯누런 전구 하나가 천장에 매달려 힘겹게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흐린 불빛 아래 도성진은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 그는 어젯밤 내내 기합을 받았다. 아버지 사진을 달랬다가 소원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것이었다. 정신을 놓은 그를 분조장 검은손이 둘러메고 왔다. 시체처럼 내던져진 그의 입엔 수건이 칭칭 감겨 있었다.

    막사는 길게 뻗은 구조였다. 벽체는 흰색이었으나 지금은 말라붙은 얼룩들만 잔뜩 있을 뿐이었다. 양철 지붕에서 흘러내린 녹물이 벽을 타고 줄줄이 흘렀다. 그 자국들은 과거의 비명이 굳어 붙은 핏줄처럼 엉겨 있었다.

    이곳은 쉬는 곳이 아니었다. 상처와 기억이 눌러앉아 이를 악물고 버틴 앙금의 자리였다. 안쪽에는 2단 침대들이 하모니카처럼 숨 막히게 이어져 있었다. 그 틈마다 발이 하나씩 삐죽 튀어나왔다. 냄새를 쫓아줄 창문 하나 없었다. 사회와 똑같은 바람도, 하늘도, 시간조차도 이곳에선 불법 같았다. 바닥은 땀과 피, 흙먼지와 기합이 눌러 다져놓은 검정 흙이었다.

    "땡- 땡- 땡-"

    금속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어둠을 찢고 운동장 너머 막사 안까지 그 존재를 과시했다. 종소리였다면 그나마 추억이라도 되겠건만 그건 냉혹한 금속의 명령이었다. 정확하게 하루에 두 번씩 울리는 종소리에 이곳 사람들의 삶이 궤적을 이루었다. 밤 11시 취침종과 새벽 6시의 기상종이었다. 그 외에도 전체집합이나 처벌, 또는 처형 같은 ‘즉시성’을 재촉하는 신호종으로 쓰였다. 그래서 수용자들에겐 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싶은 소리였다.

    그 금속음이 울리자, 수용자들은 마치 출발선에 줄지어 있던 사람들처럼 일제히 몸을 튕겨 일으켰다. 육체가 깨어난 게 아니었다. 이곳에선 잠든 적이 없었다. 잠든 건 오직 눈뿐이고,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도 단 한 순간도 풀어진 적 없이 단단히 감기고 있었다. 여긴 시간도 흐르는 게 아니라 갇히는 곳이었다.

    "기상! 기상!"

    막사 안쪽 깊은 곳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외쳤다. 수용자들은 마치 전장(戰場)에서 출격 명령을 받은 병사들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담요를 재빨리 걷어내고 어떤 이들은 벌써 자기 침대 앞에 서서 옷매무새와 머리 손질까지 끝냈다. 유독 도성진만이 입에 재갈이 물려 있어, 죄수 가운데 진짜 죄수 같았다. 바로 옆에서 20세의 김영민이 고참마냥 그의 등을 발로 툭건드렸다. 별명이 '월왕령'인 그도 한 달 전 '이웃마을'에서 여기로 왔다.

    일반 주민들은 요덕에 위치한 정치범수용소를 15호 관리소, 수용자들을 죄수라고 불렀다. 이곳에는 2급과 3급으로 나눠진 두 개의 관리소가 있었다. 동쪽의 룡평리와 평전리는 2급 관리소로 한 번 들어가면 죽어야만 나올 수 있었다. 모두 무기수로서 석방이 없었다. 그래서 '완전통제구역'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서쪽의 립석리, 대숙리, 구읍리는 3급 관리소였다. 여기선 사회 복귀가 가능해서 '혁명화구역'이라고 했다.

    월왕령은 아버지의 죄로 이웃 관리소인 2급 룡평에 있다가 한 달 전에 이곳으로 이감해온 것이었다. 9분조의 조장인 검은손이 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월왕령이 신경질적으로 성진의 엉덩이를 세차게 걷어찼다. 몸을 뒤채며 천천히 눈을 뜨던 성진은 죄다 일어난 걸 보고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 담요를 갠 후 남들처럼 침대 앞에 반듯이 설 때까지도 그는 자기 입의 수건을 인식하지 못했다. 감각이 없었던 것이다.

    월왕령은 수건에 대한 아무 설명 없이 성진의 입에서 거칠게 벗겨냈다. 그제야 그는 밤새 입을 막고 있던 수건의 존재를 알고 "너였지?"하는 날 선 눈으로 월왕령을 노려보았다. 막사 안쪽 끝에서 분조별로 수번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2작업반 4분조 6번! 7번! 8번! 9번! 끝!"

    월왕령이 슬쩍 성진의 가슴께 숫자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속삭였다.

    "네 번호 외치고 '끝'. 이렇게 해. 7번. '끝'. 이렇게."

    곧이어, 문 쪽에서 서늘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보위원 최종배가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좌표를 찍듯 도성진 쪽에 시선을 고정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수용자들의 외침이 성진을 구석으로 몰아넣는 것 같았다.

    "2번!", "3번!", "4번!", "5번!", "6번!"

    도성진에게 번호의 외침만 달려오는 게 아니었다. 모든 시선도 함께 실려 왔다. 그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7번!"

    최종배가 잘 걸렸다는 듯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막대기로 성진의 배를 쿡쿡 찔렀다. 그러다 갑자기 코를 움켜쥐었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코를 막으며 소리 질렀다.

    "이거 어느 놈 방귀 냄새야! 전체 뒤로 돌앗!"

    수용자들이 일제히 뒤로 돌아섰다.

    "야, 4번! 5분조 '미꾸라지'!"

    "예, 선생님!"

    미꾸라지는 크게 외치며 주먹을 공중으로 높이 들더니 앞으로 나왔다. 그는 사회에서 유엔DP 사무관을 지냈다. 월남한 직속 상관이 선물로 준 물건을 간직했다가 ‘반역동조죄’로 몰려 들어왔다. 막사 안팎 어디서든 급할 때면 최종배가 늘 불러대는 미꾸라지다. 그러면 한걸음에 달려왔다. 눌러도 미끄러지고 잡아도 미끄러지는 재주 하나는 타고난 2작업반 생존 제1인자였다. 최종배는 막대기로 도성진 주변을 가리켰다.

    "이쪽 어딘 거 같아. 무조건 찾아내."

    "네, 선생님."

    최종배는 한 번 더 강조했다.

    "이 안에서 처먹는 건 똑같은데! 이건 보통 냄새와 달라. 분명 훔쳐 먹은 냄새야. 꼭 잡아내!"

    미꾸라지가 허리를 숙여 맨 먼저 도성진 엉덩이에 코를 박았다. 이어 월왕령, 그리고 그 옆은 박한석이었다. 그는 한때 황해북도 예술단 소속의 인기 만담 배우였다. 그의 육성 만담 카세트는 북한 전역을 떠돌 정도로 유명했으나 그 인기 때문에 끌려왔다. 개인의 주둥이로 당의 선전선동 기조를 어겼다는 죄명. 그래서 이 안에서 그의 별명도 '주둥이'가 되었다.

    도성진은 조심스럽게 주둥이 옷자락에 붙은 숫자를 확인했다. 자기와 같은 9분조였다. 도성진은 망설이지 않았다. 손을 번쩍 들고 뒤로 돌아서며 외쳤다.

    "선생님! 제가 꼈습니다! 어제 예심초대소에서 먹은 음식 냄새입니다!"

    막사 안 공기가 일순 얼어붙었다. 주둥이는 고개를 비틀고 도성진을 바라봤다. 막사 안쪽 어둠 속에서 뛰어오던 2작업반 반장이 도성진을 보고 굳어졌다. 가차 없이 최종배의 손이 날아들더니 도성진의 뺨을 갈겼다. 하지만 성진은 고개를 빳빳이 든 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이 새끼만 아침 굶겨."

    "네, 선생님!"

    2작업반 반장이 힘차게 대답했다. 최종배는 내부를 휙 둘러보고는 밖으로 사라졌다. 막사 안에는 모든 점검이 끝나면 늘 그랬듯이 멈추었던 대화와 열린 숨통으로 흐트러졌다. 그 틈을 비집고 미꾸라지가 도성진 앞으로 미끄러지듯 달려왔다.

    "야, 이 새끼야! 진짜 니가 낀 거 맞아?"

    그때 주둥이가 능청스럽게 소리쳤다.

    "어이, 미꾸라지. 똥내 한 번 더 맡을래?"

    미꾸라지는 바닥에 침을 퉤 뱉고 달아났다.

    점검이 끝나면 곧바로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늘 배고픈 수용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주둥이는 도성진 앞을 지나가다 걸음을 멈췄다.

    "어, 사회방귀. 향기 아주 좋아. 이따 보자."

    그는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자리를 떴다. 뒤따르던 9분조 대원들도 하나둘 지나가며 도성진을 슬쩍 쳐다보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줄의 맨 끝에 선 고수머리 청년이 유난히 오래 성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엔 아침을 상실한 자에 대한 무언의 위로가 담겨 있었다. 그의 이름은 황명현. 이곳에선 '가수'로 통했다. 한때 북한이 자랑하던 만수대예술단의 테너였다. 소련 유학파 출신이었다. 아리랑 가사의 백두산을 '망명산'이라고 바꿔 불렀다가 이곳에 끌려왔다. 

    가수는 윗주머니를 더듬어 무엇인가를 꺼내 성진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는 막사 밖으로 나가면서 자기 가슴팍을 툭 치며 번호를 가리켰다.

    "내 별명은 가수야."

    "가수..."

    성진은 혼자 되뇌며 천천히 손을 펴보았다. 옥수수 다섯 알이 놓여 있었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