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방어·지수 부양 때마다 동원되는 국민연금코스닥 활성화 명분 아래 커지는 노후자금 리스크스튜어드십 코드 주주권 행사, 연금사회주의 우려연금 목적은 노후보장, 정권 사금고화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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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식품의약품안전처 업무보고에 참석했다.
요즘 정부의 경제 해법을 들여다보면 위험한 공통분모가 하나 발견된다. 경제적 난제가 생길 때마다 어김없이 '국민연금'을 소환한다는 점이다. 환율이 흔들리면 방어막으로, 증시가 침체되면 지수 부양의 연료로 국민연금을 활용한다. 여기에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칼까지 쥐여주더니, 이제는 도박장 같은 코스닥 시장에까지 연기금을 동원하려 한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질 최후의 보루가 정부의 정책 실패를 가리는 '전천후 해결사'로 전락한 모양새다.최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코스닥시장 신뢰·혁신 제고방안'은 이러한 우려에 불을 지폈다. 내년부터 국민·공무원연금 등 주요 연기금 자금을 코스닥으로 유인해 시장을 띄우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안정성이 최우선인 노후자금을 변동성이 극심한 코스닥에 투입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투자가 성공하면 정부의 성과가 되겠지만, 실패할 경우 그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정부는 소득공제 확대나 공모주 우선배정 같은 '당근'으로 개인 투자자들을 달래려 하지만, 장기 투자자인 연기금을 인위적으로 등판시켜 시장의 거품을 유지하려는 방식은 결코 미덥지 못하다.이러한 장면은 최근 한국은행과 국민연금이 650억달러(원화 약 97조원)외환스와프 연장을 통해 환율 방어에 나선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정부는 외환보유고에 달러가 많아 지난 1997년의 IMF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현재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을 위협하며 불확실성이 커지자, 국민연금을 동원해 달러를 시장에 풀어 환율을 낮추는 고육책을 쓰고 있다.환율은 국가의 경제 성장률과 정책 신뢰도가 응축된 결과물이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 없이 노후자금을 방패 삼아 인위적으로 환율을 억누르는 것은 '물타기'로 버티는 마진거래와 다를 바 없다. 시장이 이미 정부의 고갈된 정책 역량을 읽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인위적 방어'는 잠시의 안도 뒤에 더 큰 변동성의 청구서를 연금 가입자들에게 떠넘길 뿐이다.정부가 내세우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본래의 취지인 '수탁자 책임'을 넘어 '연금 사회주의' 성격의 개입 도구로 변질되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민연금공단이 주주권 개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는 어디까지나 수익률 제고라는 합리적 범주 내에서 정당성을 얻는다. 그러나 정책 목적을 앞세워 기업 경영에 개입하고 시장에 관여하는 것은 '중국식' 국가 자본주의적 발상이다. 당국은 '최소한의 개입'이라 강변하지만, 개입의 기준은 늘 정치권의 편의에 따라 흔들리기 마련이다.지배구조 개편에서 시작된 연기금 개입이 외환시장 방어와 주식시장 부양으로까지 가면 연기금은 더 이상 독립적인 '시장 참가자'가 아닌 정부의 '정책 수단'으로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연기금은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사금고가 아니다. 누군가의 '정권 연명'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피땀 어린 노후 자산이다. 확장 재정과 저성장의 굴레 속에서 발생한 정책적 실책을 노후연금으로 메우려는 유혹은 단호히 배격돼야 한다. 국민 노후자금을 볼모로 잡는 무책임한 행정은 결국 미래 세대에게 씻을 수 없는 짐을 지우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