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방향-일정 공개 뒤에야 집단대응 움직임'의견수렴' 없는 사실상 '통보' … 대화 채널 '깜깜'연구개발 축소, 일자리 감소, 국민건강 저해 '뻔한 볼모'두 달 남은 시점, 신약개발 근간 뒤흔든 '졸속 행정' 뒤집어야
  • ▲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 기자회견. 251222 ⓒ제약바이오협회
    ▲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 기자회견. 251222 ⓒ제약바이오협회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22일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을 두고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발언 수위는 높았다. 비대위는 1999년 실거래가 제도 도입 이후 10여차례 단행된 약가인하로 2023년까지 24년간 약 63조원의 약가가 인하됐고, 그 결과 상위 100대 제약사의 영업이익률이 4.8%대로 쪼그라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 안대로 내년부터 제네릭의 약가산정률을 현행 오리지널 대비 53.5%에서 40%대로 낮추게 되면 "국내 제약산업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간 최대 3조6000억원에 달하는 손실로 연구개발과 품질혁신 투자가 위축돼 '제약바이오 5대 강국' 목표는커녕 일선 회원사의 일자리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더 나아가 산업 붕괴는 결국 국민건강을 위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대응 시점이다.

    정부는 11월28일 약가제도 개편안을 공식 발표했다. 제네릭 약가인하를 골자로 한 이번 방안은 내년 2월28일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정책의 방향과 일정은 이미 공개됐다.

    그런데도 업계의 공식적인 집단대응은 발표 후 약 3주가 지나서야 기자회견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정책 형성 초기라기보다는 사실상 결론을 앞둔 시점에 비로소 움직인 셈이다.

    때문에 이번 기자회견은 정책을 조정하기 위한 선제 압박이라기보다 결정 과정 말미에 제기된 문제 제기 수준으로 읽힌다.

    게다가 약가제도 개편안이 산업계에 미칠 파장과 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비대위 참여단체 회원사 CEO 대상 '긴급' 설문조사조차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정부를 설득할만한 실효성 있는 자료가 마련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다만 사정이 단순하지만은 않다.

    노연홍 비대위 공동위원장(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에 따르면 정부가 올해 1분기부터 이번 약가 인하안을 준비해왔다는 점은 업계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간의 소통은 사후관리 차원의 미시적 제도개선 논의에 국한됐고, 산업 전반의 수익구조를 뒤흔드는 대폭적인 약가인하에 대한 총괄적 협의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업계가 구체적인 내용을 공유받은 시점은 지난달 기자단 설명회 직전이었다. 업계에서는 이를 '의견수렴'이라기보다 사실상 '통보'에 가깝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정부는 2월28일까지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전례를 고려할 때 형식적인 절차에 그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정부가 업계와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다는 점과 별개로, 왜 업계는, 사실상 대관 업무를 맡고 있는 협회는 어째서 총괄적 논의를 요구하는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했는가다.

    약가인하는 갑자기 튀어나온 이슈가 아니다. 그런데도 산업 전반의 이해를 관철할 공식 협의 채널은 이번에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기자회견장에 정부 부처 관계자가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장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정부의 무관심이나 외면이라기보다 사전 조율과 전략 부재의 결과로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업계 스스로 정책 파트너로서의 존재감을 확보하지 못했음을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또 하나 짚어볼 대목은 업계가 내세운 논리다. 연구개발 위축, 일자리 감소, 국민건강 위협은 약가인하 논쟁 때마다 반복된 주장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논리가 정책 설계 단계가 아니라 마무리 국면에 다시 등장하면서 경고라기보다는 국민건강과 일자리를 볼모로 내세우고 있는 모습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정책 대응에서 중요한 것은 주장 그 자체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제기되느냐다. 통보에 가까운 절차가 문제였다면 그 구조 자체를 먼저 흔들었어야 했다.

    이번 기자회견이 남긴 것은 정부를 흔들 "구체적인 숫자"라기보다 업계 대응방식의 한계다. 약가인하 논쟁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제약업계가 여전히 말할 타이밍과 방식에서 한발 늦는 구조에 놓여 있다는 점이 다시 확인됐다.

    노연홍 위원장은 "전면 재검토가 받아들여진다면 정부와 협력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 절박함은 이해된다. 다만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는 이제 충분하다.

    정부는 이번 이슈에서 책임이 무겁다. 이번 약가 인하안은 사전 영향 평가조사 없이 추진됐다. 국가 신약개발 역량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을 졸속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앞으로 두 달.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 이 판을 다시 설계하기에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