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방위비 인상, 우크라전 종전 협상 나선 이유 중 하나美, 방위비 인상 지속 요구…관세 전쟁에는 EU가 보복 대응EU 염두에 둔 협상…우크라이나 '패싱' 및 '더티 딜' 우려 목소리김정은과 '직접 거래' 무기로 韓, 방위비 및 FTA 재협상 나설 수도
  • ▲ 미국 대표단과 러시아 대표단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논의했다. AFP=연합뉴스. ⓒ연합뉴스
    ▲ 미국 대표단과 러시아 대표단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논의했다. AFP=연합뉴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첫 한달간 성과 중 하나는 개전 3년(2022년 2월24일) 차에 접어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협상 테이블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노벨평화상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한 중국 압박 △우크라이나의 희토류 확보 △그린란드 흡수를 위한 러시아와의 물밑 작업 등이 종전 협상에 나선 이유로 꼽힌다.

    그러나 무엇보다 유럽연합(EU)을 겨냥한 관세에 더해 방위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전통적인 서방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를 상대로 방위비 인상을 압박 중이다.

    마이클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일(현지시각) 미국 주도의 외교·안보동맹체인 나토 회원국 가운데 국내총생산(GDP)의 2%를 방위비로 지출하지 않는 회원국에 대해 6월 나토 정상회의 전까지 이를 이행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10년 전, 말 그대로 10년 전 최소한 GDP의 2%를 방위비로 내기로 한 약속을 나토 회원국 중 3분의 1이 이행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누군가는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우리(미국)는 다른 국내 우선순위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분명히 밝혔고, (다른 회원국들은) 최소한을 충족해야 한다"며 "우리는 6월에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까지 100%(모든 회원국이 GDP의 최소 2%를 방위비로 지출하는 것)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수십년간 미국과 미국 납세자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비용뿐만 아니라 유럽의 방위비용까지 계속 부담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왔다"며 "우리는 나토 회원국들을 전적으로 지지하지만, 이제는 유럽의 동맹국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연합(EU)에 대한 관세부과를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 자료를 보면 미국은 지난해 EU로부터 약 2000억유로(약 302조원)의 상품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2023년 미국의 대EU 적자액인 1566억유로(약 236조원) 대비 25% 이상 증가한 것으로, 2021년에 세웠던 최대 적자 기록인 1669억유로(약 252조원)를 넘어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백악관에서 상호관세 부과 결정이 담긴 '대통령 각서'에 서명하면서 "우리 모두 유럽을 좋아하지만, 무역에 있어서 EU는 정말 악랄(Brutal)하다"면서 "EU는 아주 고약하며 우리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EU는 19일 수입 농식품에 대한 규제 강화를 예고하면서 응전했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발표한 농업·농식품 정책 로드맵에서 "수입제품에 적용되는 생산기준의 보다 강력한 조정(Alignment)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EU의 생산업자가 지켜야 하는 엄격한 생산기준 수준을 수입산에도 적용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EU 집행위는 이와 함께 향후 무역 거래에 더 높은 동물복지 기준도 적용할 예정이다. EU는 소, 닭 사육공간 및 위생시설 등의 규정이 있다.
  • ▲ 기자들과 문답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 기자들과 문답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EU가 오랫동안 동맹이자 경제나 안보 측면에서 최대 기여국인 미국을 이용하기만 했지,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다.

    안보 측면에서만 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 불안에 시달리는 것은 EU지, 유럽 대륙과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있는 미국은 불안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EU 안보를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는 취지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서방 동맹인 EU에 우크라이나에 유리한 쪽에 서 있기보다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및 완전한 영토 수복 등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면서 오히려 러시아 편을 들고 있지 않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나렌드라 인도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를 오래전부터 강력히 반대해왔음에도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 움직임을 보인 것이 전쟁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EU 회원국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먼저 통화해 종전 협상 착수에 합의하면서 우크라이나 및 유럽에 대한 '패싱' 논란이 일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뮌헨안보회의에서 "우리의 등 뒤에서 합의되거나 참여 없이 이뤄진 평화협정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러 밀실 협상을 경계했다.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우크라이나와 EU가 참여하지 않는 협상은 신뢰할 수도, 성공적일 수도 없다"며 "협상에 조건을 둔다면 이는 오로지 우크라이나만 결정할 수 있다. 협상 전 양보를 전제로 하는 것은 엄청난 실수"라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도로 러시아에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일방적으로 양보를 강요당하는 '더티 딜(Dirty Deal)'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카야 갈라스 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왜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들(러시아)에 모든 것을 내주는 것이냐"며 "어떠한 미봉책도 '더티 딜'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 ▲ 한·미 FTA. ⓒ연합뉴스
    ▲ 한·미 FTA. ⓒ연합뉴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인상 압박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이 어느 정도 해결되면 EU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옮겨오고, 이는 한국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중론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러브레터'를 거론하는 등 꾸준히 '브로맨스'를 과시해 온 만큼 직접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작지 않은 데다 미·러 고위급 회담에서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가 참여하지 못한 것처럼 한국이 배제된 채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캐슬린 스티븐슨 전 주한미국대사는 19일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빅터 차 한국 석좌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출연해 "유럽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의 참여 없이 미국과 러시아가 협상 또는 첫 번째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충격에 빠졌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인들이 이를 보면 한국을 협상에서 배제하고 (북한과) 대화할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고 궁금해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들이 그에 대해 불안해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태평양 지역 정책에 집중할 것이며 그가 북한과 직접 대화를 시도할 경우 한국에서 '한국 패싱' 우려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군다나 7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방위비를 2027년까지 트럼프 집권 1기 때보다 두 배로 늘리기로 약속하면서 한국으로서는 더욱 부담될 전망이다.

    한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 막판인 지난해 10월 초 미국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주한미군 주둔비용 중 한국 분담액) 협상을 마무리했다. 이에 따라 2026년 분담금을 전년대비 8.3% 오른 1조5192억원으로 정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은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이 지나치게 적다고 불평해온 만큼 분담금 인상을 다시 요구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시선이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선거 기간인 지난해 10월 한국을 '현금인출기(Money Machine)'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한국이 연간 100억달러를 (분담금으로) 지출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연간 100억달러는 한국이 2026년 이후 지출할 분담금의 9배 가까운 액수다.

    뿐만 아니라 '관세 전쟁'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미국과 FTA를 체결해 관세를 대부분 철폐한 한국에도 비관세 장벽 등을 이유로 상호관세를 부과하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은 자신들의 무역파트너 중 무역적자액 '톱 10'에 포함돼 있다. 중국, 멕시코, 베트남, 아일랜드, 독일, 대만, 일본 등에 이어 무역흑자 8위에 자리해 있으며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액은 567억달러(약 81조원)에 달한다.

    실제 한 미국 고위 당국자는 사전 브리핑에서 "중국 공산당 같은 전략적 경쟁자이든, EU나 일본·한국과 같은 동맹이든 상관없이 모든 나라가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이용하고 있다"면서 한국을 특정해 언급했고, 검토 과정에서 (미국의) 무역적자가 많고 문제가 심각한 국가들을 먼저 들여다볼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