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 양시양비(兩是兩非)론..."양극화의 인과-선후관계 따지라"중도 운운과의 이념투쟁, "피 터지게 한판 붙어야"
  • ▲ 지난해 10월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자유통일당 주최 집회(오른쪽)와 서울시의회 앞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 주최 '공공노동자 총력 결의대회'가 각각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해 10월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자유통일당 주최 집회(오른쪽)와 서울시의회 앞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 주최 '공공노동자 총력 결의대회'가 각각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양극화'란 주제, 어떻게 봐야 할까?

    한국과 한국인들이 이념적·정치적으로 너무 원수처럼 좍 갈라져 있다는 우려가 들린다.
    충분히 떠오를 만한 주제이긴 하다. 
    [편집자 주]
    최근 <조선일보>는 [하나의 나라, 두쪽 난 국민]이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양극화'란 아젠다를 들고 나왔다.
    주요 기사 제목을 훑어 보면 이렇다.

    국민 40%가 "정치성향 다르면 밥도 먹기 싫다"
    -일상까지 파고든 정치 양극화

    '청담동 술자리 거짓 판명났지만...민주 지지층 70% "사실이다"
    -팩트 인정 않는 진영논리, 가짜뉴스까지 확산시켜

    국민 절반 "정치 유튜브, 매일 한편 이상 본다"
    -의혹 짜깁기하고 가짜뉴스 전파...극단 유튜버가 정치 양극화 키워

    문희상 "김어준-가세연 출연 정치인들 한심, 국가경영 자격 없어"
    -문희상 전 국회의장 '정치양극화'에 쓴 소리

    * 자신의 아들 지역구 세습을 위해,
    국회의장으로 21대 국회의원 총선 직전
    선거법 개정을 여야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통과시킨 장본인이 바로 문희상.
    이런 분이 뜬금 없이 '정치양극화'를 준엄하게 꾸짖는 인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 양극화(兩極化)가 왜 빚어졌는지,
    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지를 자칫 잘못 짚으면,
    그건 더 큰 착오을 일으킬 수 있다. 


    양극화의 책임은 누구에 있나?

    양극화는 왜 생겼나?
    프랑스 혁명을 두고 말하면 양극화는,
    로베스피에르·마라·당통의 자코뱅당이 극도의 공포정치를 폈기 때문에 생긴 악(惡)이었다.

    ”부르봉왕조의 극단적인 전제정치가 있었기에,
    자코뱅당의 극단적인 공포정치가 있었던 것 아닌가?”라고 반론할지 모른다. 

    지금 논하려는 주제는 그러나,
    “부르봉왕조의 극단적인 압제에 반대해서 일으켰다는 그 민주혁명은,
    또 왜 극단적인 반(反)민주적 독재로 흘렀는가?”
    하는 것이다. 

    러시아 혁명에서도 마찬가지다.
    로마노프 왕조의 가혹한 전제(專制)가 있었기에,
    1905년의 1치 혁명(입헌 군주제 혁명)과 1917년 2월의 2차 혁명(온건파 공화 혁명)까지 온 것은 좋았다고 하자.

    그러나 문제는,
    그 2차 온건 공화정 혁명이 “왜 자유·민주·인권·법치의 민주정치로 가지 않고,
    그 해 10월의 과격파 혁명, 즉 흑백 양극화로 흘렀는가?”
    하는 것이다. 

    결론은 프랑스 혁명의 경우와 같다.
    레닌 스탈린의 볼셰비키가 극단적인 공포정치를 한 탓이다. 

    그렇다면,
    당시 볼셰비키에 대한 온건한 대안은 없었던가?
    있었다.
    일종의 '민주사회주의' 파라 할 멘셰비키가 있었다.
    민주 공화제에서 점진적으로 사회주의 정책을 펴나가자는 주장이었다. 

    소련과 동유럽에서는,
    ‘민주사회주의’가 먹히지 않았다.
    그들은 공산당에게 모조리 숙청당했다.
    그러나 서유럽과 북유럽에서는,
    사회민주당이 100여 년 동안 ‘의회주의적 진보’로서 성공적인 복지사회를 이룩했다.

    그런 곳에서는 우파와 좌파가 투표로 정권을 교대하는 가운데,
    양극화, 국민 분열, 국가 분열이 일어나지 않았다. 

    6.25는 양극화의 끝판왕

    한국의 경우는 어땠나?
    8.15 해방공간에서,
    남노당(공산당)은 처음부터 “공산주의 할래, 죽을래?“ 하는 식이었다.
    편가르기와 양극화를 드러내놓고 한 셈이다.
    그리곤 남북 노동당은 양극화의 끝판왕, 6.25 남침을 자행했다.

    1980년대가 되었다.
    공산당은 이제 더는 없으려니 했다.
    그러나 웬걸,
    주사파라는 괴물이 생겼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어버리겠다“고 공언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어버리면,
    그건 곧 ‘시베리아 수용소 세상’ ‘북한 정치범 수용소 체제’를 말한다.

    그러니,
    자유 없이는 못 산다는 사람들 처지에서는
    죽기 살기로 대들고 싸울 수밖에 더 있겠나?
    이래서 양극화가 생기는 것이다. 

    양극화가 우와 좌의 공동책임이라는 궤변

    다시 말해 한국사회의 양극화는,
    극좌 전체주의 일당독재 세력인 남노당-북노당-주사파가
    다른 정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 혁명을 일으키면서 생긴 결과였다.

    주의할 것은,
    일부 비(非) 좌파 논자들까지 이 논리적 인과(因果)와 선후(先後)를 따지지 않는 채,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마치 우(右)와 좌(左)의 '동시적 책임' '50%-50% 책임'인 양 간주하는 점이다.

    좌에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예컨대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의 경우, 극우 파시스트도 있었다.
    그런 곳에서는 극우가 선제적 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했다.

    지금의 한국에는,
    그런 종류의 극우 정치세력이란 없다. 
    지난 시대 권위주의는 그럼 뭐였느냐고 할 것이다.

    그 정권들은 그러나,
    헌법 상의 자유권을 '일시적으로 유보' 한다고 했다.
    영구히 폐지한다고는 하지 않았거나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성공시킨 경제발전의 무게에 눌려 사라졌다.

    그 이래 한국 정치지형에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버리자"는 우파란 없다.

    이런 현실임에도 일부 논자들은,
    한국 정치 지형에도 마치 나치(NAZI) 같은 우파가 있다는 양 설정하면서,
    그리고 자기들은 싹 빠지면서, 중간 어쩌고 하는 ‘중도 팔이’를 한다. 

    밀려오는 탱크 떼에 맞선 낙동강에 중간이 있나?


    중도란 과연 무엇인가?
    중도는 철학적으로 매우 고매한 것이다.
    중도는 그러나, 기계적 중간이 아니다.
    중도는 최적(最適, optimal)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최적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 자체다.
    전체주의와 자유 사이에서 중간이란 허구다,

    전체주의 주사파는 자유의 철학적 가치를 우리와 공유하는 진보가 아니다.
    6.25 남침 때 북의 밀려오는 탱크 떼를 사진에서 보았는가?
    주사파는 그 탱크 떼 편이다.
    그런 극좌 NL 운동권 앞에서 중간?

    역선택과 맞물고 맞물리는 '중간'을 부숴라

    윤석열 대통령,
    국민의 힘 안의 꼿꼿한 인사들,
    그리고 재야 자유 진영에 강조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주사파에 대한 투쟁 못지않게
    비(非) 좌파 안의 리무진 좌파·강남좌파의 '중도 팔이'에 대한 이념투쟁, 주도권 겨루기다. 

    이들은 탄핵 거짓 선동자, 식물 대통령 만들려는 개헌파, 기득권이다.
    이들이 국민의 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또 한번 권력투쟁에 나서고 있다. 

    3월 8일 있을 국민의 힘 전장대회에서,
    전투적 자유 레지스탕스들은 그들과 피 터지게 한 판 붙어야 한다.

    양극화는 유감스러운 현상 맞다.
    그러나 그 탓은 전적으로 전체주의 일당독재파, 주사파에 있다.
    그들은 조지 오웰이 말한 ‘1984’ 집단이다.
    이들의 역선택과 맞물고 맞물리는 '중간'은 중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