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한바퀴 돈 5,000km의 여정…여행 중 느낀 일들
  • 두 친구 부부와 우리 부부까지 총 6명이 지난달 말에 출발하여 3주간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번 여행은 차를 렌트하여 내가 선택한 곳을 찾아다니는 여정이어서 종래의 패키지여행보다는 좀 더 도전적이면서 색다른 경험을 주는 것이었다. 패키지여행이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책을 듣는 것이라면 자동차 여행은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을 빼서 읽는 것이랄까. 

    이번 자동차 여행을 계획하면서 구글 맵(Google map)의 덕을 많이 봤다. 150여 군데에 달하는 방문 대상지 좌표를 위도, 경도로 찾아서 엑셀 파일에 저장한 것을 차례로 웨이즈(Waze)라는 이스라엘 청년들이 만들었다는 내비게이션 프로그램에 복사(copy & paste)하면 내비게이터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장소에 10m도 안 틀리게 안내를 해 주는 것이었다. 

    국경을 지나 유럽 어디를 가거나 변함없이 잘 안내해 주는 이들 무료 프로그램을 쓰며 정보화 사회의 위력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파이 도시락이라는 물건을 여행 전에 신청하여 공항에서 받아 준비해 가면, 몇 명이 늘 집에서처럼 인터넷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된다. 머잖아 고속도로에서는 운전자도 돌아앉아 친구들과 담소하며 여행하는 날도 올 것이다. 

    존경하는 경영철학자 피터 드러커 생가를 찾다

    이번 여정은 체코 프라하에서 시작하여 독일 뮌헨, 노인슈바인스타인 성, 린다우 호수, 리히텐슈타인 공국, 스위스 루체른, 알프스 마터호른을 지척에서 볼 수 있는 고르너그라트 전망대, 천애의 그림젤 패스를 거쳐 다시 루체른, 다음 날 인터라켄을 거쳐 중세 시대의 튠 성, 제네바를 거쳐 남프랑스의 아를, 아비뇽 교황청, 세잔, 고흐, 피카소, 샤갈 등 예술가들의 그림과 발자취, 니스, 모나코를 거쳐 이탈리아의 제노바, 밀라노, 이탈리아 알프스 자락에 있는 절경의 돌로미티 산맥,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 잘츠부르크, 그 근교에 있는 볼프강 호수와 할슈타트, 수도 비엔나를 거쳐 다시 체코로 들어와서 중세 도시 체스키크룸로프, 그리고 다시 프라하로 돌아오는 총 5,000 km에 이르는 장도였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미 유럽사를 다시 읽고, 일정을 짜느라고 책상머리에서 여러 날 머리를 싸맸던 터라 실제 여정에서 나는 마치 한 번 와 봤던 곳인 양 제법 여행지와 역사에 대해 설명까지 할 수 있었다. 비엔나에서는 내가 멘토로 모시며 존경하는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의 생가도 가 보았다. 얼마 전에는 유명 건축가가 살았고, 그 후 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는 아담한 이층집이었다. 

    두 세대가 붙어 있는 아파트의 오른쪽 편이 피터 드러커의 생가라는 것을 피터 드러커 연구소에 문의해서 알아두었던 것인데, 가 보니 상상했던 아파트가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어서 감격스러웠다. 마침 지나던 동네 노 부부에게 이곳이 피터 드러커가 살던 곳이 맞느냐고 물었더니 피터 드러커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유명한 경영 철학자라고 했더니 “이곳의 문제는 이웃에 누가 사는지 서로 잘 모르는 것이다”라며 미안해 하기에, “이미 2005년에 작고한 분인데, 제가 존경하는 분이라 한 번 와 봤다”고 설명해 주었다. 하긴 우리도 이웃 세대에 누가 사는지 관심이나 있는가? 이웃에 관심도 없으면서 ‘우리 민족’이니 하며 왜 그리 호들갑인지 그것도 모순이라면 모순이다.
  • 마음속에 하느님을 지향하는 나침반을 갖고 있는 사람들

    유럽 사람들은 고대, 중세, 근대 역사를 거치며 서로 전쟁도 많이 하고 국경도 수없이 변하면서 나라는 서로 다르지만 크게 보면 한 문화를 공유하는 유럽인으로 살고 있다. 우리가 외세의 침략으로 고생했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유럽 사람들이 중세, 근세를 거치며 치른 전쟁의 경험은 비교할 수 없이 횟수도 많고 참혹한 것이었다. 그런 속에서 자유의 역사를 일구어가는 유럽 사람들의 모습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거리에서 만나는 개성 있고 당당한 이곳 사람들의 모습과 집단주의 체제에서 옹기종기 모여 대규모 매스게임에 동원되는 인간의 모습은, 같은 인간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개인의 존엄성이 살아 있고 당당한 사회, 이것이 바로 자유 국가다. 개인이 존중을 받는다는 것은 내가 남의 영역에 침범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지켜지는 상태인데, 이는 유럽인들이 오랜 세월 봉건 사회, 근세를 거치면서 점차 개인의 자유를 찾아온 역사 속에서 단련된 규칙이다. 

    국가라는 기관이 개인의 자유, 좀 더 크게는 기업 하는 자유를 억압하려 든다면, 더욱이 사회 속의 개인들이 그런 권력의 위험성을 느끼지도 못하고 저항할 생각이 없는 사회는 자유 사회가 아니다. 또 주목할 점은 유럽인들의 깊은 곳에는 “하느님이 늘 보고 있다”는 신앙심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정말 우리가 따르기 어려운 핵심이 아닐까 싶다. 마음속에 하느님을 지향하는 나침반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결코 같은 수준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내가 말하는 신앙심이란 주일에 교회를 빠짐없이 가느냐는 형식상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 전반의 전통과 역사 배경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우리의 신앙적 깊이는 근세 초 기독교가 전파될 때의 순수함마저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 유료 화장실과 팁 문화

    여행 중 느낀, 소소하지만 생각해 볼 점을 조금 더 이야기해 보겠다. 하나는 화장실에 갈 때 돈을 받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프랑스는 안 받는데 체코, 스위스, 이탈리아는 돈을 받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화장실 출입구에 설치된 차단기에 동전을 넣으면 입장권처럼 티켓이 나오는데, 이 티켓에 적혀 있는 금액만큼은, 휴게소에서 물건을 살 때 낼 금액에서 그 금액만큼 할인받을 수 있었다. 이런 휴게실 화장실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일행들 대부분은 공짜 화장실을 만나면 “이 나라는 인심이 좋은 나라군”이라며 기분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화장실에서 돈을 받는 나라는 고속도로 휴게실 운영을 민간 자율에 맡긴 것이고, 돈을 안 받는 나라는 공무원을 고용하여 화장실을 관리하는 나라일 것인데, 돈을 안 받지만 관리가 엉망이라 불쾌감을 주는 화장실보다는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고 청결한 화장실을 유지하는 사회가 더 나은 것이지 않을까? 화장실 청소까지 국가가 고용한 사람을 써야 하는 나라라면 그 정부가 얼마나 비대하며 세금은 얼마나 크고 낭비가 심할 것인지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또 하나는 음식점 등에서 팁을 주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서구의 문화는 팁이 관행화되어 있어서 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주 수입원이 되어 있다. 이런 사정을 일행에게 조심스럽게 설명해 주고, 관행상의 팁 10여 퍼센트는 얹어서 주는 것이 좋겠다고 해도 참으로 안 고쳐지는 것이 팁에 대한 한국인의 인색함이다. 왜 남의 나라에 와서 그곳의 관습을 지켜주지 않고 한국식을 고집하는가 이해가 안 된다. 오랜 관습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므로 이를 지켜주는 것이 바로 보수주의의 정신인데, 그런 점에서 보자면 한국인은 본질적으로 외골수의 혁명가라 할 수 있다. 

    팁이란 주는 사람이 알아서 하는 것이니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다는 것이 자신의 주장이겠지만, 그런 사람이 호텔에서 베개 밑에 놓는 일 불짜리 팁이나마 놓고 나왔을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다. 기왕 한국식 팁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자. 음식이 나오자마자 반찬을 더 갖다 달라며 주메뉴가 나오기도 전에 반찬을 거덜 내고, 종업원에게 ‘미리’ 팁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팁이 아니라 ‘뇌물’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형식은 그럴싸하지만, 내용이 허술한 경우가 많다. 
  • 서구 민주주의의 외형만 모방한 우리나라

    우리가 직면한 나라 안의 심각한 문제는, ‘근대 민주국가’라는 외형만을 수입하고 모방했지, 그 본질과 기본 원리, 그리고 그 배경에 있는 역사적 경험과 사회문화를 갖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 국가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으며, 그저 외형만을 모방하고 선거를 하니까 민주국가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이런 것을 역사를 거슬러 이제부터 똑같이 경험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그들의 역사와 사회문화의 발전 과정을 의사(擬似) 경험이라도 할 수밖에 없다. 

    바로 공교육이 이런 역할을 해야 하는데 한국의 공교육을 생각하면 정말 유감이다. 공교육을 통해 세계사의 이해와 오늘을 사는 근대인의 정신을 알고 세계 속의 우리 위치가 어떤 것인가 알게 해야 하는데, 오늘날의 공교육은 한국인을 외골수의 자폐증 환자로 만들고 있는 듯이 보인다. 나름대로 강점이 있고 역사가 있는 유럽의 여러 나라를 둘러 보며, 한국의 공교육을 생각하면 정말 한숨이 나온다. 

    우리의 2세들에게 “세계 4강에 둘러쌓여 있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보면서, 하루바삐 세계 4강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자”라는 말을 해야 하는 기성 세대가 어찌하여 “공부는 안 해도 다 대학가게 해 주겠다”라며 아이들을 속이는가? 그 결과 서서히 떨어지는 국가 경쟁력에 대학을 나와도 취직도 안 되는 나라를 물려주려는 것이 바로 한국의 공교육이다. 또 자유와는 거리가 먼 세계 최빈국 북한 전체주의 세습독재 체제를 감싸려는 듯한 한국사 교과서를 역사라고 가르치려는 국사 교과서 저자들은 도대체 한국의 젊은이들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인지 묻고 싶다. 

    국가는 언제든지 망할 수 있다

    유럽의 역사를 보면 국가라는 것은 언제든지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한국에 살면서 평화가 장기간 계속되다 보니 그 사실을 잊었을 뿐이다. 이번에 방문했던 나라 체코도 일차대전 후 신생독립국으로 독립했으나 영국 총리 체임벌린이 히틀러의 위장평화 공세에 속은 첫 희생타로 독일에 흡수되었다가 독일이 세계대전에 패망하면서 기사회생한 나라다. 이 나라가 국도변에 광고판처럼 국기를 간판으로 만들어 세워놓은 것은 국가를 수호하는 과업을 한시라도 잊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나의 아버지 세대는 평생에 걸쳐 국가가 여러 차례 바뀌는 경험을 했었다. 일제 때 태어나, 광복 후 미 군정, 1948년 대한민국 수립으로 드디어 한국인이 되었으나, 6·25 동란으로 정부가 부산으로 피난하여 인민공화국 인민으로 변했다가 미국 등 연합국의 도움으로 수복하는 등 네댓 번의 국체 변경이 있었다. 그러니 나라가 망하는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는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혹시 나라가 망하더라도 우리 후대 젊은이들을 잘 키워 놓았다면 나라를 다시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므로 공교육을 바로잡는 일이 근본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일 이년의 작은 변화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큰 흐름을 보아야 한다. 그러려면 공교육의 문제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후세를 자폐아로 키우지 말고 세계 속의 자유인으로 키우는 공교육으로 판을 다시 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