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복지회 사건으로 공화당 떠날 때 '목수론' 등 명언도 담겨
  • 김종필 전 국무총리(JP)의 일대기를 그린 '불꽃'이 지난달 27일 발간됐다.

    지난해 1월, 김종필 전 총리는 이한동 전 총리 등과의 식사 자리에서 "앞으로 회고록이나 자서전 등을 일절 쓰지 않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김종필 전 총리의 이러한 폭탄 선언(?)에 아쉬움을 느낀 관계자들이 "청소년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업적을 기록하자"고 건의했고, 김종필 전 총리도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종필 전 총리의 구순(九旬)을 맞이해 출간하기로 하고, 직접 구술을 듣고 희귀한 자료 등도 받아 지난해 10월 초고가 완성됐다. 이후 김종필 전 총리의 직접 감수를 거쳐 지적받은 사항을 수정하고, 1월 26일 출간기념회가 계획됐다가 3월 18일로 한 차례 연기, 다시 재차 연기를 거쳐 지난달 27일 출간기념회를 가졌다.

  • ▲ 노태우 대통령과 박태준 최고위원의 민정당, 김영삼 최고위원의 민주당, 김종필 최고위원의 신민주공화당이 3당 합당해 이뤄진 민자당 창당축하연에서의 김종필 전 국무총리(JP)의 모습. ⓒ연합뉴스
    ▲ 노태우 대통령과 박태준 최고위원의 민정당, 김영삼 최고위원의 민주당, 김종필 최고위원의 신민주공화당이 3당 합당해 이뤄진 민자당 창당축하연에서의 김종필 전 국무총리(JP)의 모습. ⓒ연합뉴스

    ◆"김종필 업적, 한 권으로 담아낼 수 없어" 한목소리

    한만청 국민경제과학만화운동본부 이사장은 "김종필 총리가 이뤄낸 치적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했다"며 "그 모든 내용을 담아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고, 최소한의 에피소드만으로 꾸려나가야 하는 고충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도 축사를 통해 "사실 (김종필) 총리의 인생 역정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낼 수가 없다"며 "총리 자체가 이미 역사이기에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항상 새롭게 조명될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건배사를 통해 "최근 중앙일보에 (김종필 전 총리의 일대기가) 연재되면서 과연 JP란 어떠한 인물인지 많은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중앙일보 보도를 통해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는 어르신들이 있는데, 하물며 '불꽃'이 젊은 세대들에게 줄 보람 있는 충격은 엄청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의 말대로, 김종필 전 총리의 일대기를 한 권의 만화책으로 담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박정희·최규하·노태우·김영삼·김대중 등 5명의 대통령 창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김종필 전 총리의 정치 역정에 접근하기에는 최적의 입문서라는 평이다.

  • ▲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자신이 매국노라는 돌을 맞겠다는 각오로 한일 국교 정상화 협상에 임했다고 밝혔다. ⓒ김종필 일대기 불꽃 중
    ▲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자신이 매국노라는 돌을 맞겠다는 각오로 한일 국교 정상화 협상에 임했다고 밝혔다. ⓒ김종필 일대기 불꽃 중

    ◆한일 수교 50주년, 제2의 김종필은 없는가

    5·16 혁명의 혁명주체로 정치권에 등장해 민주공화당 창당·중앙정보부 창설 등을 주도한 김종필 전 총리의 초기 업적이 잘 나타나 있지만, 현 상황과 관련해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한일 국교 정상화 협상에 나선 부분이다.

    경제 재건의 마중물 역할을 할 자금이 절실한 상황에서 김종필 전 총리는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총리대신·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외무대신 등을 잇달아 접견하고 1965년 한일 양국 간의 국교를 정상화하는 협정을 타결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일본의 외화보유액이 총 14억 달러인 상황에서 그 중 절반이 넘는 8억 달러를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얻어내게 돼, 이후 포항제철·소양강댐 건설 등에 사용됨으로써 경제 도약의 중대한 전기가 마련됐다.

    다만 이 과정에서 김종필 전 총리의 개인적인 상처는 상당했다. 이른바 6·3 세대로부터 '제2의 이완용'으로 매도되고 외유에 내몰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은 각오한 바라고 해도, 딸이 학교에서 '매국노의 딸'로 놀림받고 등교를 거부하는 상황을 겪으며 정치인이기 이전에 한 명의 아버지로서 느낀 아픔이 절절히 나타나 있다는 평이다.

    올해는 김종필 전 총리의 아픔으로 타결된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로부터 50년이 되는 '한일 수교 50주년의 해'이다. 하지만 한일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냉각돼 있다는 지적이다. 그 자신을 내던져 한일 관계를 회복하고 한미일 삼각 공조를 제대로 된 궤도에 올려놓을 '제2의 김종필'은 없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 국민복지회 사건으로 공화당을 탈당하게 된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자신이 창당한 공화당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목수론으로 답했다. ⓒ김종필 일대기 불꽃 중
    ▲ 국민복지회 사건으로 공화당을 탈당하게 된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자신이 창당한 공화당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목수론으로 답했다. ⓒ김종필 일대기 불꽃 중

    ◆공화당 탈당한 JP "목수가 집을 짓는다고…"

    '불꽃'에는 곳곳마다 김종필 전 총리의 주옥 같은 명언들이 소개돼 있어 관심을 끈다.

    1968년 이른바 국민복지회 사건으로 오른팔인 김용태(金龍泰) 전 의원을 제명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김종필 전 총리는 그 자신도 곧 뒤따라 당의장직과 당적, 국회의원직까지 내던지고 정계 은퇴를 선언한다.

    당의장직에 머물러 있으면 당시 은밀히 이뤄지고 있던 3선 개헌에 앞장설 수밖에 없음을 내다본 탁견이었지만, 세간에는 그 자세한 속사정이 알려지지 않은 채 공화당 창당의 주역이었던 김종필 전 총리가 당적까지 던진 것에 의아해하고 있었다. 이 때 나온 "목수가 집을 짓는다고 자신이 살려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목수론' 또한 '불꽃'에 그 전후 사정과 함께 비중 있게 소개됐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왜, 임자가 (대통령)하고 싶어서 그래"라는 한마디에 꼼짝 못하고 의중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김종필 전 총리의 고뇌도 내용 중에 담겨 있다.

  • ▲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5·16 혁명 정신을 퇴색시킬 수 있는 3선 개헌과 10월 유신에 반대했지만, 그 때마다 [왜? 임자가 (대통령)하고 싶어서 그래?]라고 묻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 마디가 올가미와 같았다고 회고했다. ⓒ김종필 일대기 불꽃 중
    ▲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5·16 혁명 정신을 퇴색시킬 수 있는 3선 개헌과 10월 유신에 반대했지만, 그 때마다 [왜? 임자가 (대통령)하고 싶어서 그래?]라고 묻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 마디가 올가미와 같았다고 회고했다. ⓒ김종필 일대기 불꽃 중

    ◆정운찬 "JP의 정치는 막말과 독설의 정치 아냐"

    시간이 흘러 3당 합당 이후 공화계의 수장으로 민주계의 수장인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손을 들어 결국 청와대로 이끈 김종필 전 총리였지만, 정치권의 생리는 냉혹했다.

    1995년 연초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당시 대표최고위원이던 김종필 전 총리를 흔드는 당내 움직임이 심화되자, 토사구팽(兎死狗煮)을 직감한 김종필 전 총리는 최고권력자의 의중을 확인하기 위해 김영삼 전 대통령과 독대했다.

    이 자리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2선 용퇴'를 거론하자, 물러나온 김종필 전 총리는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랠프 왈도 에머슨의 "인생이란 최소한의 예의도 지킬 수 없을 만큼 짧은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인용했다. 우회적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판한 뒤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해 이 해 치러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선전한 일화가 흥미진진하게 서술됐다.

    특히 고비마다 터져나오는 김종필 전 총리의 주옥 같은 명언과 운치 있는 비유는, 막말과 독설이 횡행하는 현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정운찬 전 총리도 출간기념회에서 "(김종필) 총리의 정치는 지금처럼 상대를 무시하고 막말과 독설을 내뿜는 삭막한 정치가 아니라, 포용과 깊이, 재치와 풍류가 넘치는 정치였다"고 회고했다.

  • ▲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자신을 흔드는 민주계의 움직임 뒤에 YS의 의중이 있음을 확인한 뒤,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손의 말을 인용해 멋지게 반격했다. ⓒ김종필 일대기 불꽃 중
    ▲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자신을 흔드는 민주계의 움직임 뒤에 YS의 의중이 있음을 확인한 뒤,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손의 말을 인용해 멋지게 반격했다. ⓒ김종필 일대기 불꽃 중

    ◆JP, 노태우에게 2인자로서의 처세술 전수해

    김종필 전 총리가 박정희·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권 창출 과정에 기여한 바는 세간에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혁명 동지의 관계였다. 또, DJP 연합을 통해 자력으로는 대통령이 되기 힘들었던 인물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청와대로 이끈 바 있다.

    '불꽃'에서는 이외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집권 과정에 김종필 전 총리가 기여한 바가 서술돼 있어 눈길을 끈다. 이른바 '1노 3김'으로 치러진 1987년 대선에서 김영삼~김대중 양김 씨의 분열이 노태우 전 대통령 당선의 결정적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그 이전에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슬 퍼렇던 전두환 정부에서 줄곧 2인자로서 견제와 질시를 뚫고 어떻게 살아남아 대선 후보가 됐느냐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1979년의 12·12와 이듬해의 5·17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김영삼·김대중·김종필의 3김을 혹독하게 다뤘고, 이는 군의 대선배인 김종필 전 총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종필 전 총리의 청구동 자택을 찾았을 때 대선배를 만난 후배의 자세로 깍듯하게 예의를 갖췄는데, 김종필 전 총리는 이 점을 높이 사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2인자로서의 처세술을 전수했다.

    그 자신이 박정희 정부에서 18년 동안이나 김재춘·김성곤·이후락·차지철 등 명멸하는 정적들의 견제와 시기를 겪으며 줄곧 2인자 노릇을 했으니 만큼 김종필 전 총리의 조언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있어서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교훈이었다는 평이다.

  • ▲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2인자로서의 처세술을 전수해, 노태우 전 대통령이 5공 시절을 무사히 보내고 대권을 움켜쥘 수 있도록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종필 일대기 불꽃 중
    ▲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2인자로서의 처세술을 전수해, 노태우 전 대통령이 5공 시절을 무사히 보내고 대권을 움켜쥘 수 있도록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종필 일대기 불꽃 중

    ◆건국 세력 바라보는 시각 교정되지 않은 점 아쉬워

    물론 '불꽃'의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가장 아쉬운 점은 5·16 혁명으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출간된 책에서, 이승만 정부를 바라보는 관점이 혁명 당시에 고정돼 있다는 점이다. 5·16 혁명을 4·19 정신의 연장선상이자 완성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군부는, 불가피하게 이승만 정부를 폄하하고 그 시행착오와 혼란을 과장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제 5·16 혁명의 공과(功過)가 혁명 자체의 성과를 통해 제대로 평가될 수 있는 시점이 됐다. 산업화 세력이 건국 세력을 바라보는 관점도 이제는 바로잡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다.

    민추협(민주화추진협의회)에 가담하기도 했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은 올해 첫날 국립현충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묘역을 제일 먼저 찾아 참배했다. 민주화 세력이 건국 세력을 올바르게 재평가하기 시작한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평이다.

    제도권에 좌경화 세력이 많이 침투해 있는 이 시점에, 건국 세력·산업화 세력·민주화 세력은 서로가 서로를 폄하하고 비판할 때가 아니라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으로서의 책임감을 공유하며 좌경화 세력에 맞서야 할 시점이라는 측면에서 '불꽃'의 전통적인 시각이 이참에 교정되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