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둘러싼 의혹이 처음 보도됐을 때,
    먼저 그 가족이 떠올랐다.

    그 아내와 딸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채동욱 부부는 특히
    오랫동안 장애를 가진 딸을 키우다
    20대 초반에 하늘나라로 보냈다는 눈물겨운 사연으로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었다.



  • 그 딸을 낳아 키우다가 하늘로 보낸 아내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같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했다.

    아내에게 남편 채동욱은
    그 인생의 모든 수고를 채워준 자랑스런 남자였을 것이다. 
    20년 동안 고생고생 키우다가 하늘나라로 보낸 그 고난의 시간을
    아마도 [검찰총장]이란 직책으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조간신문의 1면 머릿기사로
    자랑스런 남편 이야기가 실렸다.

    그것도 자기 남편이 바람을 피워 낳은 아들에 관한 내용이다.

    순간,
    채동욱 아내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제자리에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
    실신하지는 않았을까?
    “여보, 이게 뭐야?” 라고 소리쳤을지도 모른다.
    울고불고 자신의 가슴을 때리며 악을 썼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너무나 큰 충격이어서 차마 물어보지 못하고
    혼자서 화장실에 들어가 흐느끼면서 별생각을 다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조간신문이
    채동욱 전 총장 집에 일으킨 그 짧은 시간의 소동은
    시청률 40% 안팎을 기록할 수 있는,
    그렇고 그런 멜로드라마의 하이라이트와 같았을 것이다.

    채동욱 집안에서 어떤 소동이 벌어졌을지는 모르지만,
    채동욱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 것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무조건 부인하고,
    <조선일보>가 음해한 것이라고,
    자신은 정치적인 배경을 가진 희생양이라고, 
    절대 그런 일 없으니
    절대 안심하라고
    다독였을 뿐 아니라,

    매우 확신에 찬 목소리와 과장된 제스처로
    평소 자신의 행동을 마뜩지 않게 생각하던
    모든 반대자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온갖 어설픈 반대논리를 대느라 허둥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채동욱은
    그 같은 자신의 발언에 맞게 행동했다.
    <조선일보>를 상대로 엄포를 놓았고 소송을 준비하겠다고 하고,
    유전자 검사를 받겠다고도 했다.





  • 법무부가 감찰을 하겠다고 발표한 지
    겨우 73분만에 사퇴를 하면서도
    채동욱은 끝까지 잡아뗐다.


    "저의 신상에 관한 모 언론의 보도는
    전혀 사실무근임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혀둡니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
    공직자의 양심적인 직무수행을 어렵게 하는 일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채동욱이 하는 행동을 보면,
    그가 뻔뻔하게 무엇을 감추려 한다기 보다,
    무엇을 애처롭게 지키려 했다는
    안타까운 모습이 보인다.

    채동욱은,
    아마 자기 아내를 지키려 했던 것 같다.

    금요일 저녁 아주 늦은 심야에,
    호텔방에서 낯선 여자와 함께 나오다가 들킨 남편이


    “우리 진짜 아무 일 없었거든?
    손 하나 까딱 안 했거든?
    형사소송건을 상담했거든?
    정말이야, 정말이라니까!”


    라고 호소하는 신파조를 생각나게 한다.

    여자는 그렇다.

    뻔히 사실관계가 어떤 지 자기도 알고,
    남편도 알고,
    그 여자도 알고,
    그리고 대한민국 온 국민이 안다고 해도,
    절대 아니라고,
    그런 일 없었다고,
    자기는 부당하게 음모에 희생되고 있다고
    그런 말을 듣기를 원하는 것이다.

    왜 그런지 이유를 따지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진실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어떻게 해야
    자기 목표를 지킬 수 있는지 하는 것 만이 중요할 뿐이다.

    아내가
    남편의 귀싸대기를 돌려 치고,
    그 여자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흔든다면
    몇 대 맞아주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뻔뻔한 거짓말을 해대는 것이,
    그래도 마음속으로 미안한 생각이 들었기에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그녀도 알지만,
    그 상황속에서는 어쩌면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다.

    채동욱 전 총장은
    온 국민을 상대로 너무나 이해되지 않는 말을 해댔다.
    아마 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게 크고 엄청난 쌔빨간 거짓말을 해 댔으니,
    가정을 지켜야겠다는 의지만큼은 확실히 5천만명에게 보여준 것 같다.





  • 그는 이제 겨우 50대 중반이다.
    [新중년]을 60~75세로 보는 사람도 있으니,
    이 기준으로 보면 그는 아직도 청년이다.
    앞으로 수명이 90세 가까이 산다고 보면,
    60%를 달려왔을 뿐이다.
    나머지 40%의 인생도 소중하다.

    [인간 채동욱]의 여정이 이제는 새로워지길 바란다.

    [검사 채동욱]이 아니라 [인간 채동욱]의 입장에서 본다면,
    <조선일보>에서 터트려준 사건은 그에게 [축복]이다.

    만약 그 사건이 불거지지 않고 계속 검찰총장의 직책을 수행한다면,
    사회적으로는 더욱 성공한 검사로 남을 지 모르지만,
    인간적으로 보면 더 큰 실패와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이 된다.

    어쩔수 없는 이중 생활을 수십년 더 끌고 다녔어야 했을 것이다.
    그의 양심이 일생 동안 그 심장을 찌르고 고소하고 비웃었을 것이다.
    너는 위선자라고, 사기꾼이었다고, 온 국민을 속였다고.

    무엇보다 20여년 장애아 딸 때문에 청춘을 다 바친
    아내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과
    그리고 [은밀한 죄악이 주는 치명적인 달콤함]
    그의 뼈를 갉아먹고,
    판단력에 좀이 슬게 하고,
    피를 마르게 했을 것이다.

    임모 여인과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든지 건강하게 바꾸지 않은 채
    검찰총장직을 수행하면서
    자랑스런 아빠요,
    성공한 남편이요 ,
    법과 질서를 다스린 유능한 관리였다는,
    평판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는 마음속의 허허로움과 가식과 위선을
    영원히 벗어버릴 기회마저 박탈당했을 것이다.

    자기 손으로 터트릴 수 없는 곪아 터진 인생의 한 부분이 드러나
    온갖 창피를 당하면서,
    손가락질을 받으며,
    인생의 정점에서 내려오는 것 같은
    그 쓰디쓰고 치욕적인 순간은
    인간 채동욱에게는 
    쌓이고 쌓인 고름이
    시원하게 분출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채동욱은 <조선일보>에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것이다.

    인생을 모두 정리하기 전에 그런 시간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