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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 더 보내면 일주일이다.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합의 비준과 몸싸움 방지법 처리를 요구하면서 곡기를 끊기 시작한 게 지난 13일이다. 단식 엿새째를 맞은 18일 의원회관 한쪽에 마련된 단식농성장에서 그를 만났다. 정 의원은 한층 까매진 얼굴과 움푹 팬 눈으로 “(몸은) 괜찮다. 아직 (합의까지) 1/3도 안왔다”고 담담히 말했다.
정태근 의원은 한-미 FTA의 국회 비준에 대해 “아직도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다”며 막판 타협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이 이명박 대통령의 '선(先) 비준-후(後) 재협상' 제안을 거부한 이후 감도는 강행처리 전운(戰雲)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전날 한나라당의 7시간에 걸친 마라톤 의원총회 결과에 대해 “비교적 좋은,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한-미 FTA를 조속히 처리하되 비준 시기와 방법은 지도부에 일임하기로 한 당론에 대한 평가다.
당론이 여야 합의처리를 배제한 것이 아니고, 당내 쇄신파와 강경파 간의 의견 조율을 통해 도출된 결론이라는 점을 높이 샀다.
정 의원은 “내가 가장 먼저 발언하고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103명에도 포함된다. 강행처리로 의견을 모았다고 보도됐지만 실제론 빨리 처리해서 끝내자는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의총장에서 “민주당이 변하고 있으니 서둘러 시간을 정할 이유가 없고, 마지막까지 정상적 합의 비준을 위해 노력하자”고 했다. 단식으로 기력이 많이 떨어졌지만 국회 '체면'을 살려 보려는 의지는 높았다.
이두아 원내대변인이 전한 당시 의총 분위기가 정 의원의 말을 뒷받침 한다. “초반엔 조속히 표결처리하자는 게 다수였는데, 후반엔 지도부에 일임해 합리적 시점을 정하고 협상이든 뭐든 하도록 한 뒤 안 될 경우 표결처리하자는 의견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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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당 김성곤 의원이 14일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한미FTA 정상적 비준과 폭력 없는 국회를 촉구하며 단식 중인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 농성장을 방문 108배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단식 6일째인 이날, 정 의원의 단식농성장에는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이 와 있었다. 정 의원의 사심없는 뜻을 격려하기 위해 시간을 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정 의원과 같은 쇄신파 동료다.
김 의원은 이 자리에서 “조속히 처리한다고 했지 처리 시기를 못 박지 않았다. 시한을 두고 민주당과 대화한다는데 뜻이 모였다는 것은 조화로운 결정이었다. FTA가 기존정치의 쇄신과정의 일부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무작정 한-미 FTA를 찬성하느냐고 물은 뒤, 찬성한다고 하면 ‘당신 낙선’이라는 글이 많았는데 지난 15일 대통령이 국회를 다녀간 뒤 눈에 띠게 줄어들었다”고 했다.
대통령의 ‘선(先) 비준, 후(後) 재협상’이라는 새로운 제안에 대한 여야 논의가 무르익으면서 ‘반(反) FTA’ 여론도 일부 수그러들었다는 뜻이다. 김 의원은 정 의원이 외롭지 않도록 1시간 가량을 머물다 자리를 떴다.
다음은 정태근 의원과 단식농성장에서 가진 <일문 일답>이다.
단식이 내일이면 일주일째다.
“괜찮다. 1/3도 안왔다. 아직 멀었다. 당장 처리되기는 힘든 일 아니겠는가.”
옆에서 김성식 의원은 “(다 지켜보는) 이런 데서 단식하는 게 감방보다 두 배는 힘들다. 감방에 있을 때 생각하면 안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오늘 오전 건강을 체크했다던데.
“의무실에서 혈압 정도만 쟀다. 혈압이 정상수치로 돌아왔다. 120-70이다. 원래 고혈압이었는데 정상이 됐다. (웃음) 단식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게 혈압이다. 쓰러지는 것도 저혈압 때문에 그러는 거다. 아직은 괜찮다.”
자녀가 고3이라 들었다.
“수능을 망친 모양이다. 얼마전 문자메시지로 ‘아빠가 왜 단식하는지 모르겠지만 수시, 논술이 다 끝나고 하면 안되겠느냐’고 했다. 그러다 며칠 뒤엔 ‘아직도 아빠가 왜 단식하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다 잘했다고 하니까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밤에 잠자기 춥지 않느냐.
“어제는 날이 좀 따뜻해서 모기가 돌아다니더라. 그것 빼곤 괜찮다”
정 의원은 이날 낮에도 두툼한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다. 한기가 올라오는 걸 막기 위해 바닥에 스티로폼으로 자리를 깔았지만 급격한 체력저하와 싸우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강명순 의원이 단식에 동참했다.
“끝까지 만류했는데 안됐다. 함께 하시겠다고 했다. 김성곤 민주당 의원도 의원회관에서 주무시겠다고 했다.”
강명순 의원은 이날 오후에도 정 의원의 단식농성장을 찾아 한참을 머물다 갔다. 그는 젊은 의원이 혼자 단식하는데 매끼 식사 하는 게 부끄러웠다고 했다. 김성곤 의원은 매일 오전 9시 정 의원 옆에서 108배를 올리고 있다.
이들이 이뤄 내려는 '가치'와 다른 분위기도 여전하다. 전날 민주당 내 강경파 의원들 주도로 46명이 '한-미 FTA 반대'에 서명했다. 의총에서 시기와 방법을 위임받은 한나라당은 '국회법'대로 처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필요한 시기가 되면 박희태 의장에게 직권상정을 공식적으로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
박 의장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내가 더 중재 노력을 할 수 있는 수단도 없고 방법도 없다. 내가 가진 화살을 다 쐈다”고 말해 직권상정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지난 6일 간 단식농성장을 방문하는 의원들에게 “합의로 처리해야 한다”, “강행처리는 안된다”고 설득해왔다. 끝까지 합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으나 결과는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정 의원은 “마지막까지 노력하다가 민주당에서 물리력으로 저지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면 나는 비준안 처리에 동의할 것이고 거기에 따른 책임을 질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