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의 유력 일간 르 몽드가 24일 반군의 승리로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는 리비아 내전은 '사르코지의 전쟁'이었다고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르 몽드는 이날 3면 전면 기사에서 코소보 전쟁이 '매들린(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의 전쟁'이었다면 리비아 전쟁은 '사르코지의 전쟁'이었다면서 사르코지 대통령은 리비아 전쟁의 성공을 프랑스의 아랍세계 영향력 강화는 물론 자신의 정치력을 회복할 기회로 삼았다고 보도했다.

    르 몽드에 따르면, 사르코지 대통령은 보스니아 학살을 막지 못한 전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실패한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과는 달리 프랑스가 리비아와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성공하는 것을 보여주기를 원했다. 이는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것으로, 사르코지는 트리폴리의 함락을 2차대전 당시 파리의 해방에 견주기도 했다.

    이에 따라 사르코지는 리비아의 작은 마을 이름은 물론이고 트리폴리로 접근하는 도로명까지 외울 정도로 리비아 사정에 정통했으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개입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카타르의 도움을 받아 산악지역의 반군에게 무기를 전달하기까지 했다.

    베이비 붐 세대로 군사문화 스타일이 아닌 사르코지는 한때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와 같은 불량 지도자들을 관리할 수 있고 순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카다피가 2008년 파리를 방문했을 당시의 행동거지를 보고 '미쳤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위키리크스에 표현돼 있다.

    당시 카다피는 연설에서 프랑스 여성들이 '압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망발을 내뱉었고 대도시 교외의 청년들에게 '봉기'할 것을 선동했었다.

    이 때문에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번 전쟁을 카다피와의 개인적인 대결로 간주, "카다피가 땅바닥 먼지를 삼키도록 하겠다"거나 "무릎을 꿇도록 만들겠다"고 공언했다는 것이다.

    르 몽드는 프랑스군이 외국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대통령의 배타적 특권으로, 사르코지는 리비아를 통해 이 수단을 발견한 뒤 이 전쟁을 '공화국 대관식'으로 삼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