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 철수' 미끼로 15개 구조물 고착화'양식시설' 위장한 준군사기지 방치'중간선 원칙' 명백함에도 레버리지 포기中 124도선 실효지배 인정해 주는 셈124도 수용 땐 서해 70% '내해화''덕성호'식 北 우회 침투로 전락 우려해양경계회담 시작 전 구조물 철수해야
  • ▲ 중국을 국빈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 만찬을 마친 뒤 경주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선물 받은 샤오미폰으로 시 주석과 셀카를 찍는 모습. ⓒ뉴시스
    ▲ 중국을 국빈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 만찬을 마친 뒤 경주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선물 받은 샤오미폰으로 시 주석과 셀카를 찍는 모습. ⓒ뉴시스
    이재명 정부가 연내 개최를 추진 중인 '한중 차관급 해양경계획정 회담'이 시작도 전에 중국의 기정사실화 전술에 밀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회담이 출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은 서해 잠정조치수역(PMZ) 안팎에 무단으로 설치한 16개 구조물 중 관리시설 1개를 지난달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최근 이전했다.

    그러나 해양경계획정 회담 전에 최소한 나머지 2개의 대형 구조물을 선제적으로 이전시키지 못한다면 중국이 주장하는 '동경 124도선'이 양국의 해양경계로 기정사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나머지 15개 구조물을 문제삼지 않은 채 회담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중국의 준(準)군사시설이 적법한 양식시설이라는 억지 주장을 한국이 사실상 수용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해 해양경계가 단순한 경제적 이권을 넘어 북방한계선(NLL)과 직결된 안보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중국이 124도선까지 서해의 70%를 내해화(內海化)하고 반접근 지역거부(A2AD) 자산을 전진 배치하면 우리 군의 대북 작전과 한미연합전력의 기동 공간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례로 지난해 9월 북한 화물선 덕성호가 서해 NLL 월선 직후 오성홍기를 게양하며 중국 선박으로 위장한 사건은 서해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남중국해가 보여준 진실 … 전략적 '1보 후퇴'의 함정

    5일 외교가에 따르면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이른바 '모택동식 16자 전법'을 충실히 이행해 왔다. 대규모 국제 비판·동맹국 압박에 직면하면 일부 시설·군함을 일시 철수·이동(적진아퇴)하고, 상대국의 경계가 느슨해지면 재진입·확대(적퇴아추)하고 있다. 상대국이 조사·감시를 강화하면 해경·민병대를 동원해 지속적으로 압박·교란(적주아요)하고, 상대국이 국내외 여론에 지칠 때 본격적 확장·고착화(적피아타)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서해 PMZ에서 관리시설 1개를 이전한 조치도 이러한 전술적 계산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필리핀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사례는 중국의 표면적인 양보가 '전략적 1보 후퇴 후 2보 전진'임을 증명한다. 중국은 민간 자산을 동원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핵심적인 군사·준군사 시설을 고정화한 채 대외적으로만 평화적 해결을 강조해 왔다.

    2012년 중국은 해경과 해양민병대를 동원해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 위치한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암도)를 사실상 강점했다. 2016년 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의 이른바 '9단선'에 대해 국제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하자 중국은 국제적 비난을 의식해 필리핀 어민의 접근을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민간 기상관측소를 설치하고 준군사 조직인 해양민병대를 상주시키며 실효지배를 기정사실화했다.

    2014년 중국이 파라셀 군도 인근 해역에 초대형 시추선 '하이양(海洋) 981'을 진입시킨 사례는 해양 주권 침탈의 야욕을 노골화한 사건이다. 베트남 측의 강력한 물리적 저항과 국제적 비판에 직면하자 중국은 2개월 만에 시추 작업을 완료했다는 명분으로 시추선을 철수시켰다. 그러나 그 자리에 해양관측소와 해양민병대를 투입해 베트남의 독자적 자원 개발을 원천 봉쇄했다.

    인도네시아와의 갈등은 중국이 상대국의 강경 대응에도 실익을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속성을 보여준다. 2016년 인도네시아가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직접 지휘 아래 해군·공군력을 투입하고 해당 해역을 '북나투나해'로 명명하며 주권 수호 의지를 분명히 하자 중국은 잠시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다. 중국은 국제 이미지 관리를 위해 해양관측선의 활동 반경을 조정하는 척하면서도 9단선 내 주요 해역에 대한 해양민병대의 활동은 오히려 확대·강화했다.

    중국 전문가인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서해 구조물 문제는 필리핀과 베트남이 남중국해에서 경험했던 기정사실화 전술의 전형적인 답습이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중국은 관리시설 1개만 이동시킨 채 나머지 2개의 구조물은 한국이 인정한 것처럼 만들어 향후 해양경계획정 회담에서 자국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악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베트남이 중국에 맞서 인공섬을 확장했다가 오히려 중국의 불법 행위에 면죄부만 주었던 '패착'을 언급하면서 "한국이 서해 PMZ에 중국과 비슷한 구조물을 설치해 맞불을 놓는 것은 중국의 전술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 ▲ 한국해양관할권 개념도.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제공
    ▲ 한국해양관할권 개념도.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제공
    ◆中, UNCLOS 76조의 의도적 오독과 국제판례의 실체

    중국은 그간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제76조가 규정하는 대륙붕에 대한 '자연적 연장' 개념을 내세워 동경 124도선까지의 대륙붕 권원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는 국제법에 대한 자의적 해석에 불과하다. 제76조의 10항은 "이 조의 규정은 서로 마주보고 있거나 이웃한 연안국의 대륙붕 경계획정 문제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해처럼 양국 해안 사이 거리가 400해리 미만인 대향국(對向國) 간에는 대륙붕이 아니라 '중간선'(Median Line)을 기준으로 해양경계를 획정하는 것이 국제판례법상 확립된 방법론이다. 서해 PMZ 사례에서 이 중간선은 동경 123도선 부근이 된다.

    국제해양법학회장을 지낸 이창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최근 10여 년간의 국제해양법 판례는 400해리 이내 구역에서 중간선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다. 국제법적 정당성은 명백히 한국에 있다"며 "중국의 주장은 동 협약 제74조 제3항과 제83조 제3항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제74조와 제83조는 제3항에서 "합의에 이르는 동안, 관련국은 상호이해와 협력의 정신으로 실질적인 잠정약정을 체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며, 이 기간 최종 합의에 이르는 것을 위태롭게 하거나 방해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바로 2001년 발효된 한중어업협정이 여기서 말하는 '실질적인 잠정약정'에 해당한다. 그러나 중국은 PMZ에 일부 레이더 시설까지 갖춘 13개의 부표와 2개의 양식장과 1개의 관리시설을 설치했으며, 해양민병대까지 배치했다. 이는 이 조항이 말하는 '최종 합의에 이르는 것을 위태롭게 하거나 방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양면게임'이론으로 본 李 대통령의 외교적 패착

    "'중간을 정확히 그어버리자'고 실무적인 얘기를 하자"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국제법상 '중간선 원칙'에 따라 한국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제안'의 형식으로 던짐으로써 한국의 협상력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비롯해 지난달 방중 일정에서 수차례에 걸쳐 혐중 정서 극복을 언급한 대목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국제정치학의 '양면 게임(two-level game) 이론'에 따르면 강경한 국내 여론은 정부가 협상 가능한 합의 범위인 '윈셋'(Win-set)을 좁혀 오히려 협상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낸다. 즉, 국내 여론은 외교 협상에서 상대국을 압박하는 강력한 레버리지(지렛대)로 작동한다. 대통령이 사실상 반중 감정 완화를 선언하며 이 카드를 폐기한 것은 윈셋을 넓혀 중국에 양보 여지를 보여준 셈이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정부는 국민의 반중 감정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국민들이 이렇게 반발하고 있으니 중국이 이런 행동을 계속하면 한중 관계가 더 악화될 것'이라며 국내 여론을 외교의 레버리지로 중국을 설득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대통령이 직접 혐중 감정을 줄이겠다고 나섰으니 중국으로서는 이보다 좋은 신호가 없다. 사실상 '한국 내 반발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받은 셈"이라고 비판했다.
  • ▲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 일대에 설치된 중국 측 부표·구조물의 위치와 사진을 정리한 도표. 미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산하 '비욘드 패럴렐'(Beyond Parallel)은 2025년 12월 9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 일대에 설치된 중국 측 부표·구조물의 위치와 사진을 정리한 도표. 미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산하 '비욘드 패럴렐'(Beyond Parallel)은 2025년 12월 9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은 2018년 이후 해당 수역 내부 및 주변에 13개의 부표를 일방적으로 설치했고 한국과 사전 협의 없이 물고기 양식을 명분으로 한 '선란(Shen Lan) 1호'와 '선란 2호' 등 2개의 양식장 케이지와 통합 관리 플랫폼인 '아틀란틱 암스테르담'을 수역 내에 건설했다"며 "영구 시설물의 수역 내 설치는 한중 어업협정 위반"이라고 분석했다. ⓒCSIS Beyond Parallel
    ◆서해 70%가 中 '내해'로 … 北, 中 묵인하에 서해로 우회 침투 가능

    서해 124도선과 백령도 인근은 대한민국 안보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힐 만큼 서해 해양경계 문제는 단순한 어업이나 해양경계 문제를 넘어선다. 특히 중국의 124도선 주장을 수용할 경우 백령도 서쪽 해역 전체는 물론이고 서해의 약 70%가 중국의 '내해'가 된다. 2010년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46명의 용사가 희생된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한 백령도 인근 수역은 중국이 주장하는 작전 구역과 지리적으로 매우 인접해 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북한 화물선 덕성호가 서해 NLL을 월선한 뒤 중국 오성홍기를 게양하며 중국 선박으로 위장을 시도한 사건은 서해 공해상이 중국의 배타적 영향권 하에 있다는 인식을 북한조차 역이용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는 중국의 묵인하에 북한이 서해를 우회 침투 경로로 활용하는 상황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강 교수는 "북한은 1999년 6월 제1연평해전 후 9월 2일 일방적인 서해 NLL을 선포함으로써 서해 5도와 연평도 남쪽 해역 대부분을 북한 영해로 편입시켰다"며 "서해가 단순한 어업 분쟁 지역이 아니라 한반도 안보의 최전방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을 정부가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북한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5000톤급 구축함 2척을 진수해 하나는 서해에, 하나는 동해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급의 함정은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의 해상 발사가 가능하다"며 "중국 정보수집함의 서해 출현, 북·러 연합훈련 등 북·중·러 3국의 군사적 공조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권을 초월한 '해양 주권 전략' 확립해야

    전문가들은 서해의 내해화를 막기 위해 남은 15개 시설물의 즉각적 철수 요구, 중국이 주장하는 '양식 시설'에 대한 한국 측의 정례적인 공동 조사 관철, 해양수산부 차원을 넘은 국방부·합동참모본부의 적극적 개입, G7(서방 선진 7개국 회의) 등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한 '해양질서 유지' 프레임 강화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다른 전문가는 "중국은 50년 단위의 장기 전략으로 서해를 공략하고 있다. 5년 단임제 정부가 그때그때식의 임기응변으로 대응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서해는 한국의 앞바다가 아닌 중국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될 것"이라며 "지금이 해양 주권을 지킬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