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해협 봉쇄 땐 韓 GDP 23% 증발美, 이라크전 이후 최대 전력 투입대만해협 유사시 고강도 전력 필요韓, 파병이냐 아니냐 이분법에 매몰 유사시 개입 조건·임무 사전 규정해야한중 경제, 상호보완 아닌 경쟁 관계中 경제 보복 속 '안미경중'은 철지난 문법전략적 모호성은 준비됐을 때만 유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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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 해안경비대 선박 1척이 2024년 10월 14일 대만 마쭈(馬祖)섬 인근을 항행하며 경계를 서고 있다. 중국은 이날 대만과 외곽 섬들을 둘러싼 대규모 군사훈련에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호 등 전함뿐만 아니라 사상 최대 규모인 125대의 항공기를 투입해 대만해협의 긴장된 상황을 강조하며 주요 항구의 봉쇄하는 모의 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AP·뉴시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지렛대로 활용하는 유형이 반복되면서 호르무즈는 사실상 상시적인 교전 위험에 노출된 해역이 됐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호르무즈 위기 때마다 국제 유가와 해상 보험료 급등은 물론 내수와 수출을 아우르는 실물 경제 전반의 충격을 감수해야 했다. 이란 전쟁이 핵, 달러, 에너지 패권이 동시에 얽힌 복합전이라면 반도체, 원자재 공급망 수출입까지 차단될 대만해협 유사 상황은 한국 경제와 안보의 구조적 취약성을 정면으로 시험하는 고차방정식이 될 수밖에 없다.한국 전체 해상 물동량의 약 40%가 통과하는 대만해협이 봉쇄되면 우리나라가 감당해야 할 충격은 호르무즈 사태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지난 2월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중국의 대만 침공에 미국이 참전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전 세계 경제에서 10조6000억 달러(약 1경5440조 원)이 증발하며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23%가 날아갈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대만(40%) 다음으로 큰 피해이며 전쟁 당사국인 중국(11%)보다도 크다. 2022년 해군 추정치 기준으로는 대만해협 유사시 한국의 하루 피해액이 4452억 원에 달한다.그럼에도 이재명 정부는 대만해협 유사시 한국의 원칙, 파병 및 후방 지원 기준, 한미일 공조의 범위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원칙론에만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운·정유 업계에서는 호르무즈 사태 이후 대체 항로, 선복, 보험 조건 점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랐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 나아가 대만해협 봉쇄 시나리오를 전제로 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마련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정작 대만해협 유사시 한국이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지를 가늠하려면 현재 이란전쟁에 투입된 미 해군 전력의 구조를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난 4월 말 기준 중동 일대에 미군의 항공모함전단(CSG) 3개가 집결했고, 소해정과 연안전투함(LCS), 31·11해병원정대, 82공정사단 등 미군 전력이 투입됐다. 2003년 이라크전 이후 처음 보는 규모의 미군 해상·상륙 전력이 중동에 모인 것이다. 이란 측은 가디르급 잠수정, 소형 고속정, 지하 미사일 도시, 1000~3000기의 기뢰를 활용한 비대칭 전력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전력과 시간 모두에서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국방대 명예교수인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은 지난달 세종열린포럼에서 이란 전쟁을 3개 항공모함전단(CSG)과 2개 상륙강습단(ARG)이 동시에 투입된 새로운 전쟁으로 분석했다. CSG의 기본 편제는 항모 1척, 순양함 1~2척, 구축함 4~6척, 공격핵잠수함 1~2척, 군수지원함 1척 이상, 함재기 약 70~90대다. 항모는 '떠다니는 공군기지'로서 순양함·구축함은 해상용 다용도 미사일인 스탠다드 미사일(SM) 계열 함대공미사일과 토마호크를 통한 다층 방공·장거리 타격을, 공격핵잠은 대잠전, 정보·감시·정찰(ISR), 특수전을 맡는다.방공, 미사일방어, 대잠전, 특수전, 보급, 함재기 운용이 하나의 패키지로 결합된 이 전력 구조는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력이 밀집된 대만해협에서는 더 높은 강도로 요구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전쟁을 비롯해 호르무즈해협에서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한국 사회 내 논쟁은 파병이냐 아니냐라는 이분법에 머물렀지만 실제로는 어느 단계까지를 국가 이익으로 설정할 것인지, 그 기준을 어떤 조건에서 발동할 것인지, 즉 어떤 조건과 임무로 개입할지를 사전에 규정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
- ▲ 지난 15일 중국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차담을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연합뉴스
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만해협 유사시 한국의 역할은 대략 세 갈래로 나뉜다. 비군사 영역에서는 해상 보험과 물류 지원, 전략물자 비축 확대, 우회 항로 확보 같은 경제·외교 대응이 거론된다. 군사 영역으로 들어가면 청해부대와 비슷한 형태의 구축함 중심 에스코트, 기뢰 제거, 후방 해역 초계 등 해상교통로(SLOC) 보호 임무가 1차 상정된다. 그보다 강한 단계에서는 미·일 연합작전에 편입돼 대만해협 인근에서 직접 작전을 수행하는 시나리오도 고려할 수 있다. 대만해협 유사시 어디까지 개입·지원할 것인지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은 피할 수 없겠으나 최소한 군과 동맹이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을 사전에 마련해 둬야 실제 위기에서 혼란을 줄일 수 있다.일각에서는 미국조차 대만 무기 판매를 협상 카드로 흔드는 마당에 한국이 굳이 중국을 자극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을 제기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5일(미국 현지시간) 방영된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만에 대한 추가 무기 판매 승인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는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승인을) 일시 보류하고 있고 그것은 중국에 달려 있다"며 "그것은 우리에게 매우 좋은 협상칩이다. 120억 달러(약 17조9천억 원) 상당은 많은 무기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만해협은 미·중 패권 경쟁의 전장이기 이전에 한국 해상 물동량의 40%가 지나는 공급망의 목줄이자, 한국 경제·산업 구조와 직결된 생존 공간이다. 미국 정상의 개인적 성향과 무관하게 한국이 독자적인 개입 기준과 준비된 선택지를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물론 전략적 모호성을 옹호하는 쪽은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결국 한국 경제를 지키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중 경제는 이미 '중간재 공급자-완제품 조립'이라는 상호보완적 구도가 아니라 전기차·배터리·철강·조선 등 핵심 산업에서 같은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로 바뀌었다. 특히 중국은 필요할 때면 언제든 경제를 레버리지로 전환해 타국을 압박해 왔다. 중국이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2017년 한국 단체관광을 전면 중단하고 중국 내 롯데마트에 대해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고 한한령을 발동했던 사례, 2020년 호주가 코로나19 기원 국제 조사를 주장하자 중국이 석탄·보리·와인·쇠고기 수입을 전면 금지하거나 고율 관세로 제한하며 압박에 나섰던 사례, 올해 1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군사 개입, 집단적 자위권 행사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시사하자 이중용도 물자 가운데 희토류와 영구자석 등을 포함한 대일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한 사례 등이 그 증거다.
대만해협 문제에서 군사 개입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중국의 보복이 뒤따를 수 있지만,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한다고 해서 중국의 경제 보복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모호성은 보복을 막는 방패가 아니라 단지 결정을 미루는 것일 뿐이며, 위기가 터진 순간 준비 없는 모호성은 더 큰 혼란을 부른다. 이런 구조에서는 중국의 심기 관리를 이유로 대만해협 원칙을 끝없이 미루는 것이 오히려 한국의 경제안보·군사안보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중국이 군함 집결, 항공기 진입, 해상 훈련 등을 동원한 회색지대 전술로 압박에 나설 경우 군사적 충돌 없이도 민간 선사와 보험사가 대만해협 운항을 기피하면서 사실상의 해상 봉쇄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대응 방침을 정리하기도 전에 시장과 공급망이 먼저 흔들릴 수 있다. 대만해협 유사시는 호르무즈보다 훨씬 짧은 시간 안에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의 중장기 전략과 그에 맞춘 대외 메시지 발신은 사실상 부재하다.이재명 정부는 현재까지 대만해협 문제에 대해 원칙적 입장 유지와 상황별 판단이라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외교적으로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군사·안보 차원의 전략적 모호성은 준비된 선택지가 존재할 때만 의미를 갖는다. 한국이 대만해협 유사시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지, 어떤 전력을 어떤 임무로 투입할 것인지, 그 결정은 어떤 법과 절차에 따라 내려질 것인지에 대한 기준 없이는 전략적 모호성이 외교적 유연성이 아니라 정책적 공백으로 읽힐 가능성이 크다.한 전직 외교관은 "대만해협은 호르무즈해협보다 우리나라에 더 가깝고 우리가 더 많이 의존하는 해역"이라며 "호르무즈에서 한 차례 시험을 치른 한국이 대만해협이라는 더 큰 시험대 앞에서도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면 그것은 위기의 복잡성 때문이 아니라 준비 부족의 결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략적 모호성'이 아니라 기준의 정립"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