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집을 나설 때 계급장이 부착된 카키색 여름군복을 입고, 비닐커버를 씌운 카키색 군정모를 썼다. 신발은 군화 대신 긴 검은색 고무장화를 신었으며, 엷은 녹색 군용 우의를 입고 있었다.

    하숙집은 죽림동 고개 능선 위에 있었다. 경사진 도로를 따라 약 300미터쯤 북쪽으로 내려가면 동서로 가로놓인 넓은 길과 만나게 된다. 바로 이 교차로 서남모퉁이에 춘천공회당이라는 큰 건물이 있었다. 약 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건물은 당시 대중 집회나 음악연주회, 기타 무슨 특별 공연이 있을 때 이용하는 공공시설이었다.

  • ▲ 이대용 장군 ⓒ 뉴데일리
    ▲ 이대용 장군 ⓒ 뉴데일리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한참가면 제7연대본부가 나오고, 동북쪽으로 꽤 가면 춘천도서관이 나온다. 바로 이 건물 동쪽모퉁이에서 내 앞으로 뛰어 달려오는 카빈소총으로 무장한 제1중대 연락병 안기수(安起秀) 하사를 만났다.

    그는 내 앞에서 다급하게 멈춰서더니 거수경계를 한 다음 “중대장님, 인민군이 38선을 넘어 공격해와 연대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대대장님이 대대본부에서 중대장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빨리 오시라고 하셨습니다.”라는 구두 메시지를 큰 소리로 숨 가쁘게 전달했다.

    이런 비상소집은 그전에도 심심치 않게 있었으며 새로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야간에 북한공산군이 38선을 침범하여 아군이나 민가에 사격을 가하고 소란을 피우는 상황이 가끔 있었다.

    그럴때면 연대장은 비상을 걸어 영외거주 장교들과 하사관들을 영내로 소집했다. 영외거주 장교들과 하사관들이 모두 영내에 집합하면, 38선 경비를 담당하는 우리 국군 중대장으로부터 적군이 다시 38선 북쪽으로 후퇴했다는 보고가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면 영외 거주자들은 비상소집훈련 한번 잘했다고 웃으면서 싱겁게 집으로 되돌아가곤 하였다. 오늘도 그런것이 아닐까 반신반의 하면서 연대영내에 도착했더니 어이가 없었다. 꼭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제1대대장 김용배 소령의 상황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북한공산군은 오늘 새벽 38선의 모든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 총공세를 감행했다. 우리 제7연대의 38선 배치부대인 제2대대와 제3대대는 38선 일대에서 북한공산군과 교전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내평에 있는 제7중대는 유선통신망이 끊어지고, 양구-춘천가도를 따라 지연전을 펴고있는 중이다. 모진교 일대에서화천-춘천가도를 방어하고 있던 제9중대는 중대장인 이래흥 중위기 전사하고, 결정적인 타격을 받은 중대는 산을 넘어 춘천시로 후퇴중이라고 했다.

    화천-춘천가도를 진격하는 적군 선두부대는 옥산포에서 약 3킬로미터 북장에 있는 역골까지 진격해 내려왔다고 했다. 화천-춘천가도상의 적군과 맞서고 있는 아군 소총중대는 전무하며, 겨우 사단공병 수십명, 연대대 전차포 2문, 그리고 제12중대 중기관총2정, 81미리 박격포 2문이 고작이라고 했다. 이들 아군을 모두 합치더라도 100명 남짓한 소수병력에 불과한데다가, 이들은 모두 지휘계통이 다른 개개의 독자적인 소부대들이어서 지휘통일도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라고 했다.

    적의 포탄은 이미 춘천시의 일각인 우두동 북부에 떨어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이 연대 본부에도 적탄이 쏟아질 판이다. 나는 군화와 전투 작업복을 가지러 하숙집까지 다녀올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제1중대 보급계 박래영 중사를 불러서 중대창고에 있는 것을 가져오라고 했더니, 군화 다섯 켤레와 전투작업복 상하 한번과 철모 하나를 들고 왔다. 그러나 군화는 모두 작아서 신을 수가 없었다. 신을 수 있는 것이 없느냐고 했더니 겨울용 방한화 한 켤레를 가지고 왔다. 부리나케 군복을 갈아입고 발에 맞는 방한화를 신었다. 한 여름에 혹한용 방한화를 신다니 우스운 일이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인원점검을 시키니 외출외박을 나가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사병과 휴가간 사병들이 합계 약 40명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소대장 4명은 모두 와 있었다. 그 후의 일이지만 이들은 한국전쟁에서 모두 전사했다. 제1중대 제1소대장 한도선(韓道善) 중위는 문경옥녀봉전투에서 전사하고, 제2소대장 강구석(姜九錫) 중위는 금성전투에서 전사했다. 제3소대장 손종구(孫鐘九) 소위와 제4소대장대리 이한직(李漢稙) 상사는 낙동강교두보전투에서 전사했다.

    나는 음성전투에서 적탄에 중상을 입고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육군병원에서 다행히도 살아남았다. 내 위의 상관인 제1대대부대대장 조현묵(趙顯默) 대위는 초산전투에서 전사하고, 대대장 김용배 소령은 양구전투에서 전사했다. 2명의 직속상관과 4명의 직속부하는 전원 전사하고,  나 홀로 외로이 살아남아서 그 기록을 여기에 남기게 된다.

     

  • ▲ 이대용 장군 ⓒ 뉴데일리

    <6.25와 베트남전 두 死線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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