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 소지에도 법왜곡죄 강행하는 與벤치마킹한 독일조차 상징적인 제도에 불과정권 바뀔 때마다 판·검사 처벌수단으로 악용대법원 "법관의 독립적인 사법권 행사를 저해"
  • ▲ 추미애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뉴데일리DB
    ▲ 추미애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뉴데일리DB
    국민 기본권 보호를 위한 최후의 보루일까. 아니면 한 사람만을 위한 안전판 설계일까.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사법 개혁 3법(재판소원·대법관증원·법왜곡죄법)' 밀어붙이면서 정국이 다시 꽁꽁 얼어붙고 있다.

    민주당은 사법 개혁을 가리켜 "낡은 구조를 바로잡는 역사적 개혁"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사법부와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 결과를 뒤집기 위한 맞춤형 입법"이라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특히 법왜곡죄는 위헌 소지가 크다는 우려가 각계에서 제기돼 왔다. 판·검사가 사실을 조작하거나 법을 왜곡해 적용한 경우 처벌한다는 내용인데 법 왜곡 여부를 판단할 기준이 모호해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특정 권력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검사를 처벌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법왜곡죄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도 이 대통령이 재판받고 있는 5개의 사건과 무관치 않다는 점에서 '방탄 입법'이란 지적이 나온다.

    ◆"판결 잘못하면 징역 10년" … 벤치마킹한 독일조차 상징적인 제도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른바 '법왜곡죄'는 법 왜곡 행위에 대한 직접 처벌 규정이 없는 현행 형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재판·수사 과정에서 법리를 고의로 왜곡한 법관, 검사, 경찰을 최대 징역 10년에 처하도록 한 게 골자다.

    현행 형법상 판사나 검사가 증거·사실관계를 조작하거나 법령을 부당하게 적용하는 등 법 왜곡 행위를 하더라도 이를 직접 처벌할 규정이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발의됐다.

    다만 가장 큰 쟁점은 '모호성'이다. 개정안 조문은 "법관, 검사 또는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타인에게 위법 또는 부당하게 이익을 주거나 권익을 해할 목적을 가지고 법령을 의도적으로 잘못 적용해 당사자를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드는 등의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이 벤치마킹했다고 한 독일의 법왜곡죄는 실제 강력한 처벌보다는 상징성이 강한 제도로 기능하고 있다. 독일 연방법원은 사법권 독립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단순히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법관 등이 '고의'로 '중대하게' 법과 법률에서 이탈하는 경우에만 법왜곡죄 성립을 인정한다고 판시했다.

    독일 연방통계청이 발간하는 사법통계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17년까지 16년 동안 법왜곡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법관과 검사는 56명이다. 이 중 자유형의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간 사람은 단 3명(약 5%)에 불과했다.

    처벌 수위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법안은 최대 징역 10년인 반면 독일은 '1년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징역형)'이다. 실제로 유죄 확정자 56명 가운데 대다수가 집행유예(25명)나 벌금형(28명) 등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게다가 한국과 독일의 근본적인 사법 체계 차이를 간과한 채 제도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우려가 제기된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은 '기소 법정주의'를 따르지만 한국은 '기소 편의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며 "기소 편의주의 체제 아래에선 법 왜곡죄가 도입될 경우 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이나 기소 결정을 내린 법관과 검사들을 옭아매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뉴시스
    ◆판결 마음에 안들면 판사 고발…조희대·지귀연 겨냥 입법

    이 때문에 당장 판사들은 법왜곡죄 시비를 피하기 위해 기존 판례에 안주하는 판결만 양산할 우려가 있다. 수사기관 역시 법왜곡죄로 고소·고발 당하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방어적으로 수사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정치적 갈등이 갈수록 심해지는 우리 현실에서도 법왜곡죄가 생기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복 수사에 악용될 우려가 많다.

    실제 민주당은 법왜곡죄 적용 대상으로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위반 무죄를 34일 만에 파기환송한 조희대 대법원장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취소한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쿠팡CFS 무혐의 사건에 외압을 넣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엄희준 전 인천지검 부천지청장 등을 거론하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정 재판이나 제도 논의와 맞물려 판사·검사를 압박하려는 취지라면 제도 자체의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다"며"우리 형법에는 이미 직권남용죄가 있어 처벌 체계가 존재하는데 별도의 범죄를 추가로 도입하는 것은 형사법 체계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남용-왜곡 소지 많은 '법왜곡죄'…대통령 자문기구 수장조차 반대

    이 때문에 사법부와 법조계에서는 한 목소리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회에 '법왜곡죄 법안 의견서'를 낸 대법원은 "법왜곡죄를 도입할 경우, 재판과 관련한 불법행위를 범한 법관을 처벌 대상으로 하는 만큼 사법부 독립을 약화시킬 수 있고 권력이 사법부를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도 있다"고 논평했다.

    대법원은 "특히 정치적 이슈가 되는 사안일 경우 법관의 소신 있는 재판에 대해 법 왜곡죄 혐의를 씌울 위험성이 있다"며 "법관의 독립적인 사법권 행사를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법원은 나아가 "법관의 단순한 판단상의 과오나 소수적 견해까지도 수사나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소지가 있다"며 "자칫 법관의 직무수행을 지나치게 위축시켜 소수자에 대한 인권 보호 등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심지어 법조 원로인 이석연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장 역시 지난해 12월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법왜곡죄를 두고 "문명국의 수치"라며 "헌법의 정신을 이탈한 정치는 폭력"이라고 직격했다.

    각급 법원 판사들 회의체인 전국법관대표회의도 같은 달 8일 진행된 정기 회의에서 "법왜곡죄 신설은 위헌성 논란과 함께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므로 신중한 논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는 법관 대표 정원 126명 가운데 84명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석해 정족수 인원을 맞춘 뒤 열렸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정욱)도 같은 날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 원칙의 준수를 촉구한다'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 및 법 왜곡죄 신설 법안과 관련해 헌법상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 원칙의 관점에서 우려를 표명하며 신중한 검토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법관의 독립적 직무수행을 위축시킬 수 있는 형사처벌 규정의 신설에는 구성요건의 명확성 등 엄격한 헌법적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며 "위헌 논란이 지속될 경우 위헌법률심판 제청이나 헌법소원 등으로 인하여 오히려 관련 재판의 장기 지연이라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