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도준호 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 ⓒ 뉴데일리
    ▲ 도준호 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 ⓒ 뉴데일리

    진(秦)의 권력가 조고(趙高)는 2세황제와 함께한 자리에서 사슴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폐하 저것은 사슴이 아니고 말입니다”고 말했다. 황제도 입을 다물었고 함께 있던 신하들도 조고의 위세에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기에 유래된 고사성어가 ‘지록위마(指廘爲馬)’다.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길 때 더 자주 쓴다.

    전 대통령 김대중씨의 6.15공동선언 9주년 기념강연에서의 한 발언과 그의 최근 행적을 보면 이 고사성어를 떠 올리게 한다. 정도에 어긋날 정도로 너무 어거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국민 절대다수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을 독재자로 규정했다. 나아가  “모든 행동하는 양심은 자유, 서민경제, 평화로운 남북관계를 지키기 위해 들고 일어나라”고 선동했다.

    김씨가 최근 들어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국가원로 답지 않게 극단적인 언행을 하는 것의 근저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로 인한 국민동정 여론을 현 정부 비판에 이용하고 무엇보다 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겨온 6.15 선언 등 남북정상회담이 훼손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 깔려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객관성과 사실관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 균형감각도 갖춰야 한다. 그런 것 없이 자신의 주장만 선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조고가 사슴은 말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독재자로 부르려면 민의를 무시하고 ‘장충체육관’ 대통령이 되었다든지, 헌법을 유린하는 조치를 취했다는 지 등의 구체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 것 하나 없이 막연히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말로 그를 독재자로 매도하는 것은 자기 편의적이다.

    우리가 보기에 이명박 정부는 ‘민주병’에 걸린 좌파들에게 휘둘려 시청 앞 광장의 불법집회도 제대로 단속 못 하는 나약한 정부다. 민주주의 근간은 법치의 확립이란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도 그런 정부를 보고 독재정부라고 하는 것은 경우에도 맞지 않고 국민들의 동의도 얻기 어렵다.

    또 그가 균형감각을 가진 지도자라면 이대통령을 비난하기 전에 북한의 세습 독재정권에 대해 한마디쯤은 했어야 한다. 신문지상에는 김정일의 세습도 모자라 20대 청년에 불과한 3남 정운을 후계자로 내정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는 데도 꿀 먹은 벙어리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 평화를 깨고 있으니 이를 지키기 위해 궐기하자고 했다. 또 현 정부가 고의적으로 남북관계를 파탄내려고 한다고도 했다. 그를 추종하는 민주당 원내대표는 관훈클럽 토론에서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한 것은 ‘퍼주기’때문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적대정책 때문이라며 대북정책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반도 평화를 깨뜨리는 것은 우리와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과 장거리 미사일개발에 온 힘을 쏟고, 지금까지의 남북합의를 전면무효화하며 군부가 나서 전면대결태세를 선언한 북한이지 남한이 아니다.

    또 남북관계를 고의적으로 파탄 내려 한다는 주장이나 2차 핵실험도 대북 적대시정책 때문이라는 것도 객관성을 결여한 것이다. ‘북한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과거의 지나친 퍼주기와 북한 추수르기 정책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것이다. 지난번 대선에서 이명박 정부가 압도적으로 당선된 것도 김대중-노무현정부의 북한에 대한 지나친 온정주의에 대한 반발이 큰 몫을 했다. 그러고도 현 정부가 대화의 문을 계속 열어 놓고 있는 데도 북한이 종전처럼 남한이 말을 듣지 않는 다고 온갖 협박과 공갈을 일삼아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있는 데도 이것을 남한 정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북한의 핵실험을 도운 것은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 김대중 정부다. 그가 추진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에서 흘러간 돈이 북한 핵개발 자금으로 쓰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나아가 김씨는 그동안 북한이 마치 선한 사마리안이나 되는 것처럼 변호에 앞장섰다.

    1차 남북정상회담 후 ‘한반도에 이제 전쟁은 없다.’ ‘북한은 남한의 적화통일을 명시한 노동당 규약 전문을 개정하기로 약속했다.’ ‘김정일은 예의 바르고 판단력 있는 지도자다.’ 등 사실에 맞지 않은 말로 북한을 두둔했다.

    북한의 핵개발 의도도 북한 말을 그대로 대변했다. 북의 핵개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이며 미국이 체제를 보장하면 북은 언제라도 포기할 것이라 주장했다. 북한이 지금까지의 6자회담 합의와 새로 출범한 미국 오바마 정부의 대화 제의도 거부하고 2차 핵실험까지 하자  마지못해 “극단적인 핵실험까지 한 것에 대해서는 절대 지지할 수 없다”면서도 북한의 ‘온갖 억울함’을 안타까워했다.

    전직 대통령은 국가의 원로다. 따라서 그의 발언은 천금같은 무게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자신과 다르더라도 거리의 시위꾼처럼 ‘정권타도’를 선동하고 독재자로 규정하는 것은 할 일이 아니다. 또 이념성향이 다른 현 정부의 ‘다름’을 인정할 줄 도 알아야 한다. 자신이 그렇게 집착하는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한반도 긴장과 북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이 자신의  ‘원죄’때문임을 망각하고 이명박 정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이명박 정부가 여러 가지 잘못으로 민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기름을 끼 얹는 것은 전직 대통령이 할 짓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