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억제력·한미일' vs 韓 '평화·한중일' 방점한일 ACSA, 체결 당위성에도 논의 진전 없어한빛부대 사태가 보여준 ACSA 부재의 민낯李가 띄운 CPTPP 한국 가입도 거론조차 안 돼민감 현안 덮고 각자 실리만… 최소공배수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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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19일 경북 안동시 한 호텔에서 한일 공동언론발표를 마치고 악수하는 모습. ⓒ뉴시스
'국익 중심 실용주의'를 내건 이재명 정부의 첫 한일 '고향 셔틀외교'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등 경제·안보 핵심 현안을 정면으로 다루지 못한 채 국내 정치 일정에 맞춘 '최소 공배수 회담'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21일 외교가에 따르면 지난 19일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에너지·공급망 연계, 초국가적 사기(스캠) 범죄 대응, 인도주의 사안 등 비교적 부담이 적은 의제에 주력했다.원유·LNG(액화천연가스) 스와프와 상호 공급, 일본이 주도하는 에너지 협력 구상 '파워 아시아'를 매개로 한 에너지 협력 확대, 공급망 파트너십 강화, 인공지능(AI)·우주·바이오 등 미래 산업 협력, 일본 조세이 탄광 유해 DNA 감정 착수 등은 모두 합의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은 영역이다.공동언론발표에서도 양국 정상의 메시지는 방향과 온도에서 적잖은 차이를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의 한반도"를 재차 언급하며 자신의 오랜 지론인 이른바 '더러운 평화론'을 거듭 강조하면서 한중일 3국 협력의 필요성을 전면에 세웠다.반면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북핵·미사일 위협, 인도·태평양 질서, 호르무즈해협 항행 안전, 한일·한미일 안보 협력 등 전통 안보 의제를 촘촘히 열거하며 억제력에 방점을 찍었다.이러한 구도에서 한일 ACSA는 지난 7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안보정책협의회에서 일본이 실무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했을 뿐 이번 정상회담 계기에 본격 논의 단계로 올라서지 못했다. 한일 ACSA를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과 연결시키는 국내 정치·여론의 민감도를 고려할 때 정상회담 전면 의제로 올리기에는 여권으로서도 부담이 컸다는 분석이 외교가에서 나온다.ACSA는 식량·연료·탄약·예비 부품과 수송·정비·의무 지원 등 군수 물자와 서비스의 상호 제공 근거를 마련하는 상호군수지원협정이다. 완성된 무기 체계를 사고파는 협정이 아니라 보급·군수 지원을 위한 법적·행정적 틀에 가깝다. 특정 분쟁 개입을 강제하기보다는 유사시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의 폭과 속도를 넓혀 주는 장치라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한국이 미국·태국·뉴질랜드·터키·필리핀·이스라엘·호주·캐나다·싱가포르·인도네시아·캄보디아·스페인·영국·몽골·독일·아랍에미리트(UAE) 등과 폭넓게 ACSA를 체결해 온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그럼에도 한일 ACSA는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부에 이르기까지 우파 정권조차 국내 여론의 반발을 의식해 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한 대표적 난제였다.2013년 12월 남수단 평화유지활동(PKO)에 투입된 한빛부대가 탄약 부족 위기에 몰렸을 당시 유엔의 중재로 일본 육상자위대로부터 5.56㎜ 실탄 1만 발을 긴급 지원받은 사례는 한일 ACSA 부재가 안겨준 구조적 제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꼽힌다.당시 양국은 양자 ACSA를 맺지 않은 상태여서 유엔 PKO 지휘 체계와 양국 국내법을 억지로 끼워 맞춘 예외적·일회성 조치로 처리해야 했다. 탄약 지원의 실효성보다 절차와 정치적 논란이 더 크게 부각됐다는 평가가 뒤따랐다.유사한 위기 상황에서 한국군과 자위대가 탄약·연료·예비 부품 등을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제도적 인프라가 미비할 경우 현장 지휘부가 감수해야 할 시간 지연과 정치·외교적 부담이 과도하게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군 안팎에서 나온다. 한반도 유사시 미군에 대한 후방 군수 지원 전반을 일본이 담당하는 구조를 고려할 때 한일 ACSA는 군사·작전 현실과 국내 정치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안이라는 것이다.이 대통령이 지난 정상회담에서 일본·베트남·호주와 영국·캐나다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다자 자유무역협정(FTA)인 CPTPP 가입 재추진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국익 중심 실용주의' 기치를 드러낸 사례로 평가돼 왔다.국책 연구기관들은 한국이 CPTPP에 가입할 경우 국내총생산(GDP)이 약 0.33~0.35%포인트 증가하고 장기적으로 무역수지가 연평균 1조 원 이상 개선될 것이라는 추산을 내놓은 바 있다. CPTPP는 관세 인하를 넘어 공급망 협력, 디지털 무역, 국영기업 규율까지 포괄하는 '21세기형 통상 규범 체제'로 평가된다.무엇보다 CPTPP 가입은 공급망·경제안보 차원의 연대를 넘어 일본·호주·영국·캐나다 등 미국의 핵심 안보 파트너들과 함께 규범 기반 경제권에 참여한다는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최강 아산정책연구원장은 지난 4월 중앙일보 기고에서 "한국이 CPTPP 핵심 공급망 국가로 자리 잡을수록 미국도 한국을 배제하기 어려워지고 우리 입장에서는 대중국 의존 구조를 완화하는 효과도 기대된다"며 "이러한 다자 협력 구도는 한미 동맹의 결속과 협상력 강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럼에도 한국의 CPTPP 가입 문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 규제, 비관세 장벽, 농수산·지역 경제 이해관계 등 양국 내부에서 민감한 통상 현안을 둘러싼 논란을 의도적으로 피했다는 해석이 뒤따르는 대목이다.일본 언론들은 이번 정상회담이 민감 현안을 비켜간 배경으로 양국 정상의 정치적 이해 득실을 지목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중동 정세 불안과 중국과의 관계 경색 속에서 한국과의 공조를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 안정 의지를 부각하려는 다카이치 총리의 계산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외 리더십을 어필하려는 이 대통령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고 풀이했다.요미우리신문은 한국 정부가 다카이치 총리의 조속한 방한을 원한 배경으로 대미 관계 불협화음을 지목하며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북한 핵시설 관련 발언 이후 미국이 대북 정보 공유를 축소한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일본과의 관계가 우호적이라는 점을 한국 국민에게 부각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결국 이번 '고향 셔틀외교'는 한일 정상의 상호 고향 방문이라는 상징성, 중동·에너지 불안에 대한 공동 대응 의지, 한미일과 한중일을 모두 언급하며 외교 공간을 넓히려는 수사적 시도 등 정치·외교 이벤트로서의 역할은 일정 부분 소화했다. 그러나 구조적 이해와 국내 정치 리스크가 교차하는 전략 현안에서는 양측 모두 결단을 미룬 채 각자가 감당 가능한 최소공배수만을 택한 회담이었다는 한계도 분명히 드러났다. '국익 중심 실용주의'를 앞세운 이재명 정부가 이 난제에 대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책임 있는 해답을 내놓을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