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미국 혁명의 본질 비교하다로베스피에르 유사 세력의 권력 장악한국식 유사 전체주의 고착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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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On Revolution)』(1963) 홍원표 옮김(2004). ⓒ 한길사
한국 학계-출판계-언론계 등 지식인 사회는 지나치게 좌파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좌파 지식인들이 담론을 장악, 한국 사회 전반을 좌경화시키고 있다.그런 좌경화에 맞서 싸우는 우파 인터넷신문 뉴데일리는《자유의 파수꾼》임을 자임하고 있다. ① 자유민주주의 ② 자유시장경제 ③ 자유통일 이라는 사시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창간 20주년을 맞은 뉴데일리는《기업이 대한민국이다》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고, 그 슬로건에 걸맞는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책을 보다》연재가 그것. 매주 한 권의 책을 골라 소개-분석-비평하는 기획이다. 단순 서평 차원을 넘어 반(反)대한민국-반자유민주주의 세력과《담론 투쟁 / 이론투쟁》을 벌여나갈 생각이다.열 아홉번째 책으로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On Revolution)』(1963) 이 선정됐다.필자는 조성환 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다음은 그의 약력이다.서울대, 대학원 외교학과 졸업(정치학 석사, 1985)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정치학 박사, 1989)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역임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원장 역임《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 공동대표==================================== -
- ▲ 프랑스 혁명은《피바다 혁명》이다. 소설-뮤지컬-영화가 그리는 프랑스 혁명은 허상이다. 레닌-스탈린-모택동-김일성 류 전체주의가 갖는 악마성의 원조다. 영-미 보수주의 정치철학은 프랑스 혁명의《피바다 악마성》에 대한 깨달음을 근거로 형성됐다. ⓒ 제미나이
《현대 민주주의의 기원,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비교사적 이해》■ 전체주의와 극단의 시대, 종언인가 지속인가?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20세기 최고의 정치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1951년 출판된『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이 잘 알려져 있다.전체주의는 영국의 마르크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의 표현대로《극단의 세기》에 출몰한 극단의 정치 체제였다.1951년에 출간되어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비소설 부문 베스트셀러를 기록한『전체주의의 기원』은 ① 반유대주의 ② 제국주의 ③ 전체주의의 3부로 구성되었다.아렌트는 유대인으로서 1933년 조국 독일의 나치즘 치하를 벗어나 프랑스로 망명했고, 1941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컬럼비아, 프린스턴, UC버클리 대학에서 교수를 지냈다.이 책은 반유대주의와 제국주의에 그 기원을 두고▲ 산업사회 이후 원자화되고 고립된 개인,▲ 대중과 인텔리겐차가 비대칭적으로 결합한 폭력과 테러 운동▲ 당·국가(전체)의 개인에 대한 총체적 지배의 시스템을 해부했다.악마적이지만 새로운 정치 체제인 전체주의의 기원과 양태에 대한 아렌트의 탁월한 철학적 탐구와 유대인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처절한 경험과 학습이 응결된 정치사회학적 이론서였다.『전체주의의 기원』의 출간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최고의 자유주의 지식인들이 주도하는《전체주의 연구》를 확산·심화시켰다.6.25 전쟁(1950-1953), 헝가리 부다페스트 사태(1956)를 지나면서 20세기의 극단적 체제, 전체주의의 악마성 이 이론적으로 해부되고 경험적으로 고발되었다.1950년대를 지나면서 세계는 자유민주 진영과 전체주의 진영으로 양분되어 냉전과 체제 대립을 고도화시켰다.1991년 소련연방과 공산당의 해체로 전체주의가 종언한 듯했다.파시즘과 나치즘은 전쟁 패배의 결과로, 스탈린주의와 소비에트는 전체주의 당·국가 체제의 내재적 모순으로 해체되었다.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1992년 이를 보고《역사의 종언》을 선언했다.후쿠야마는 “전체주의는 역사적으로 종언했고, 자유민주주의가 최종적으로 승리했다”고 주장했다.물론 이 역사철학적 관점은 냉전 종식 직후의 세계와 문명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었다.민주주의, 세계화가《시대정신》이자 보편적 교양으로 널리 퍼졌다.■ 중국의 디지털 전체주의, 그리고 자유민주국가 안의 유사(類似) 전체주의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1991년 소련의 몰락 이후 전체주의는 《역사의 묘지》에 묻힌 것으로 여겨졌다.그러나 영원히 잠들지 않았다.공산주의가 종말을 고했고, 전체주의가 종언했다는 것은 역사철학자의 단선적 비전이었을 뿐이었던가?이 극단의 체제와 사회심리-정치운동은 변형된 방식으로 지속되었고 최근 들어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세계의 중심과 변방을 가리지 않고 재현되고 있다.첫째, 탈냉전-세계화 시대의 수혜를 입고 경제적으로 대국이 된 중국은 개방적 경제발전이 자유의 제도화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 유일 지배를 위한 디지털 전체주의를 구축하고 감시와 공포의 지배를 강화하는 것으로 나아갔다.대외적으로는 팽창적 중화 패권주의를 강화하면서 세계는 다시 전체주의의 악령을 마주하게 되었다.중국의 팽창은 미국과의 밀월의 이익을 스스로 팽개치고 전략적 경쟁이라는 도발에 박차를 가했다.세계는 미·소 간이 아니라 미·중 간의 신냉전 패권 경쟁에 돌입했다.둘째, 3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전체주의라는 극단적 체제가 재현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그런데 이 재현은 20세기 냉전기와 같이 블록으로 분절된 상태가 아니라 미국-유럽을 위시한 주요 자유민주주의 서방 선진국 국가의 내부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미국을 필두로 한 자유민주주의 선발국, 고도의 경제 선진국 국가에서 극좌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유사-전체주의적(quasi-totalitarian) 운동이 거세게 퍼져나가고 있다.유럽 국가들의 해체주의-포스트 마르크스주의, 미국의 PC 좌파와 젠더 이데올로기가 개인의 자유, 국가의 주권을 침식하게 되었다.개딸-전체주의 의 양상을 띠는 한국의 팬덤 정치도 선동과 기만의 정치, 전복주의 세력을 정파적으로 결집시키는 유사 전체주의적 정치운동을 시현하는 공통점을 가진다.■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 아렌트의 다시 보기한국뿐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가 가치와 정신, 그리고 경제와 군사를 포괄한 총체적 전환기의 혼란에 휩싸여 있다.이런 상황에서 아렌트가 1963년 출간한『혁명론(On Revolution)』(홍원표 역, 한길사, 2004)을 다시 보게 된다.현대 정치문명의 발원점이 된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에 대한 아렌트의 비교정치사상론를 읽어보면 총체적 혼란, 특히 민주주의 국가 안에서 만연되고 있는 유사-전체주의의 원인을 이해하고 극복 방안을 모색하는 화두를 찾아낼 수 있다.아렌트는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공통성을 시대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한 새로운 시작(Natality, 탄생성)의 차원에서 정의한다.새로운 시작으로서의 혁명은《해방》(Liberation)과《자유》(Freedom)의 위상에 대해 엄정한 견해를 전제한다.아렌트는 억압이나 결핍(빈곤)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해방이지만 이것이 혁명의 시작(동기)일 수는 있어도 결과(목적)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한편, 자유는 공적인 영역에 참여하여 시민들과 같이 호흡하고 행동하는《공적 자유》를 의미하며 아렌트는 혁명의 진정한 성공은《공적 자유》를 제도화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프랑스 혁명은 초기에는 자유를 지향했으나 곧바로 민중의《빈곤》, 즉 《사회적 문제》(Social Question)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아렌트는《빈곤》이라는 필연성 영역에 정치가 압도당할 때《공적 자유》를 형성하는 토론과 설득의 정치는 사라지고 폭력과 동정심이 자리 잡게 되고, 결국《공포 정치》에 귀착되었다고 보았다.이에 비해 미국 혁명은 정치적 자유의 창설을 목표로 법과 계약을 중시하는 시민 세력이 참여하여 상호 약속과 연대를 통해 권력을 창출하고 헌법을 제정하고 안정적인 공화국을 형성했다고 보았다.이러한 관점에서 아렌트는 프랑스 혁명은 빈곤의 해방이라는《사회적(The Social)》요인이《공적 자유》를 확립하는《정치적(The Political)》과정을 압도함으로써 공포정치 와 나폴레옹 독재 로 귀결된 《실패한 혁명》으로 규정했다.아렌트는 동정이라는 정념은 모든 프랑스 혁명가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자극했으며, 동정심이 행위자들의 동기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던 유일한 혁명은 미국 혁명이었다고 보았다.프랑스 혁명에 대해 아렌트는 단언했다.“혁명의 과정에서 개인적 좌절이나 사회적 야망이 아니라 빈곤이라는 곤경이《동정(연민)》의 정념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이제 우리는 미국 혁명을 제외한 다른 모든 혁명에서 동정심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아렌트는 프랑스 혁명에서는 빈민 대중, 즉 전체 인간의 압도적 다수를《가난한 사람》으로 방치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당시 사람들의 표현대로《비참한 사람들》(Les misérables)의 상태에 다시 빠지게 내버려두었다고 했다.아렌트는 “이들은 해방이라는 필연성에 예속되어 있었으며, 아울러 필연성을 극복하기 위해 항상 사용된 폭력을 담지하고 있었다“ 고 평가했다.로베스피에르는 저항할 수 없는《익명적 폭력》의 조류로 인간들의 자유롭고 신중한 행위를 대체한 인물이었다.이에 비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새로운 권력의 창출이라는 정치적 임무에 집중했다.미국 혁명은《공적 자유》의 정치적 제도화로 전개되었다.미국 혁명에서는 “공화국 내에서 권력의 형태와 결합”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이러한 측면에서 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1775)의『법의 정신』(1748)은 미국 혁명(건국)에서 최고의 관심사가 된 “정치적 자유의 구성”에 전범(典範)이 되었다.미국 헌법은 최종적으로 혁명의 권력을 흡수했다.그리고 혁명의 목적은《자유》였기 때문에 미국 헌법의 목적은, 13세기 영국의 헨리 브랙턴(Henry de Bracton, ?~1268)이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를 일컬은 표현대로 “자유의 확립(Constitutio Libertatis)이었다.”아렌트는《사회적(The Social)》인 프랑스 혁명과 비교하여 미국 혁명을《정치적(The Political)》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
- ▲ 한나 아렌트『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이진우 박미애 번역. ⓒ 한길사
■ 아렌트의『혁명론』 의 비교역사학적-정치학적 함의아렌트의 『혁명론(On Revolution)』의 미국과 프랑스 혁명의 비교사적 해석은 『전체주의의 기원』에 못지않은 정치학적 함의를 지닌다. 어쩌면 그 의미가 더 깊을 수 있다.첫째, 혁명은《자유의 창설》을 목표로 하는 형성(제도화)의 과정이 중요하며, 《사회 문제》에 대한 해방의 필연성으로 강제된다면 해방은 상실되고 공포와 폭력의 정치적 광란이 영속된다는 점이다.둘째, 아렌트의 『혁명론(On Revolution)』은 볼셰비키 혁명이 해방의 필연성을 내세우고 공포 폭력의 로베스피에르적 광란에 귀착된 사회혁명으로부터 발원했다는 프랑수아 퓌레(François Furet, 1927~1997)의 혁명의 역사 정치학적 해석의 열쇠를 제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셋째, 1991년 소련붕괴가 전체주의 당·국가의 붕괴였을 뿐 전체주의 체제와 구조가 완전히 해체되지 않았으며, 전체주의 독재가 중국과 같은 디지털 레닌주의, 북한-이란이 추구하는 신정(사교) 전제정으로 온존하고 강화되고 있는 실태를 파헤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다.넷째, 미국, 유럽 주요 자유민주주의 선진국에도《사회 문제》에 대한 해방의 필연성을 맹신하는 이데올로기적 급진주의 세력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출현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지금 대한민국은 문재인식 으로 표현하면,“결코 경험해서는 안 되는 세상”, 광기와 공포, 기만과 전복의 흑역사 에 빠졌다.과연 이 절체절명의 위기가 언제, 어떻게 극복될 것인가가 궁금하다.시계 제로이지만 책략은 찾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