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에르상이 주목한 화제작, 이준우 서울시극단장 부임 후 첫 연출 작품60개 장면, 실시간 라이브캠 적극 활용…오는 25일까지 세종M씨어터서 초연
  • ▲ 서울시극단 '빅 마더' 공연 사진.ⓒ세종문화회관
    ▲ 서울시극단 '빅 마더' 공연 사진.ⓒ세종문화회관
    과거의 독재자가 공포와 폭력으로 대중을 짓눌렀다면, 현대의 권력은 따뜻한 코코아 한 잔과 함께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영상을 추천하며 다가온다. 조지 오웰이 예견한 '빅 브라더'의 시대가 가고, 다정하고 치밀한 '빅 마더'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연극 한 편이 무대에 올랐다.

    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은 '빅 마더(Big Mother)'를 오는 25일까지 M씨어터에서 국내 초연으로 선보인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 역대 최연소로 부임하며 화제를 모았던 이준우(41) 서울시극단장의 첫 연출작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연극은 프랑스 잡지사 기자 출신의 극작가 멜로디 무레가 2023년 발표한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무레는 '미친 개구리들', '거인들의 경주' 등을 통해 동시대 사회를 예리하게 포착해온 작가로 주목받았다. '빅 마더'는 프랑스 연극계 최고 권위의 몰리에르상 5개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작품의 핵심 개념인 '빅 마더'는 우리가 흔히 아는 '빅 브라더'의 진화형이다. 강압적인 감시 대신, 사용자의 데이터를 분석해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제공하는 알고리즘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준우 연출은 "빅 마더는 엄마처럼 포근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우리의 생각을 바꾼다. 우리가 선택한다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된 결과물인지 질문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 ▲ 서울시극단 '빅 마더' 공연 사진.ⓒ세종문화회관
    ▲ 서울시극단 '빅 마더' 공연 사진.ⓒ세종문화회관
    연극이 시작되면 관객은 마치 유튜브 쇼츠(Shorts)나 틱톡의 타임라인을 넘기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110분의 러닝타임 동안 무려 60개의 장면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이 연출은 이를 위해 유리 소재의 칸막이로 분리된 공간과 LED 스크린, 실시간 라이브캠을 적극 활용했다.

    이 연출은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검색하다 나도 모르게 맥락을 잃고 딴 길로 새는 경험, 그 산만함 자체를 공연의 경험으로 만들고 싶었다"며 "라이브캠을 통해 무대를 하나의 거대한 스튜디오처럼 보이게 한 것도 우리가 매일 접하는 미디어 환경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무대 디자인 역시 상징적이다. 무대는 투명한 듯 보이지만, 그 유리 벽은 인물들을 분리하고 통제하는 현대 사회의 감시 구조를 드러낸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배우들의 얼굴은 뉴스 스튜디오의 긴박함을 더하는 동시에, 우리가 보는 '영상화된 진실'이 얼마나 쉽게 편집되고 소비되는지를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극은 미국 대선을 앞두고 터진 현직 대통령의 성추문 영상에서 시작된다. '뉴욕 탐사' 소속 기자들이 이 영상의 진위를 추적하며 스릴러의 막이 오른다. 퓰리처상을 받은 베테랑 기자 오웬과 블랙웰, 쿡, 줄리아 등은 거대 권력과 빅데이터가 결탁한 음모를 파헤치지만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수록 혼란에 빠진다.
  • ▲ 서울시극단 '빅 마더' 공연 사진.ⓒ세종문화회관
    ▲ 서울시극단 '빅 마더' 공연 사진.ⓒ세종문화회관
    배우들과의 연기 앙상블도 볼거리다. 냉철한 편집국장 '오웬 그린' 역에는 조한철과 유성주가 분해 극의 무게 중심을 잡는다. 진실을 쫓는 열혈 기자 '알렉스 쿡' 역의 이강욱·김세환, 감정의 균형점을 찾는 '줄리아 로빈슨' 역의 신윤지, '에단/머서' 1인 2역의 최호영 등이 긴박한 전개의 호흡을 이끈다.

    '빅 마더'는 단순히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가짜 뉴스'를 가려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시대.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이 곧 진실이 되는 알고리즘 사회에서 저널리즘의 소명은 어디에 있는가?" 극의 후반부 신뢰를 증명해야 한다는 기자 쿡의 절규는 객석을 메운 관객들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이 연출은 결말에 대해 "처음엔 각자의 개인적인 고민에 허우적대던 기자들이 거대한 사건을 마주하며 다시 펜을 잡는다. 진실이 추천되는 시대라 할지라도, 결국 마지막 보루는 진실을 향한 집요한 추적과 신뢰의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 시대에 연극이, 그리고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