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련'·'어둑시니'·'신과 함께_저승편'·'성주_집 잃은 신의 서울 표류기' 공연박제된 전통을 깨고 무대로…"그리스 신화보다 가깝고 판타지 소설보다 강렬"
  • ▲ 뮤지컬 '홍련' 공연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 뮤지컬 '홍련' 공연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버려진 공주에서 죽은 자를 인도하는 신이 된 바리데기, 인간의 두려움을 먹고 자라는 요괴 어둑시니,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저승차사, 가택 신앙의 중심인 성주신…최근 공연계는 그리스·로마 신화보다 가깝고, 판타지 소설보다 매혹적인 'K-설화' 매력에 빠져 있다. 서양 라이선스 뮤지컬이나 대형 서사 대신,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신화와 민담 속 주인공들이 무대 위 주인공으로 등판했다.

    갓을 쓰고 도포를 자락을 휘날리던 박제된 전통을 넘어 이제 우리 신(神)들은 지하철을 타고 아파트 재개발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관객과 호흡한다. 익숙한 듯 낯선 한국적 소재에 세련된 비트를 입혀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뮤지컬 '홍련'·'어둑시니'·'신과 함께_저승편'·'성주(城主)_집 잃은 신의 서울 표류기' 등 4편을 소개한다.

    공연계 관계자는 "웹툰과 게임 등에서 이미 검증된 'K-판타지' 세계관이 무대예술로 확장되면서 젊은 층의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전통은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와 함께 호흡할 때 생명력을 얻는다. 한국 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은 단순히 소재의 변주를 넘어 우리만의 고유한 정서인 한(恨)과 흥(興)을 동시대적 관점으로 풀어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잔혹동화의 화려한 변신, 뮤지컬 '홍련'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통을 품은 바리와 억울한 죽음의 상징 홍련이 만났다. 오는 17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홍련'(작·작사 배시현, 작곡 박신애)은 한국 고전소설인 '장화홍련전'과 죽은 자의 한을 풀어주는 여신 '바리데기 설화'를 엮었다.

    극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동생을 해쳤다는 혐의로 천도정에 끌려온 홍련이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된다. 이에 저승신 바리는 그녀의 숨겨진 진실과 진짜 죄가 무엇인지 파헤치기 위해 사후 재판을 연다. 뮤지컬은 단순히 옛 이야기를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홍련'과 '바리'를 가정 학대 피해자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전통적인 한(恨)의 정서를 강렬한 록 사운드로 풀어내며, 복수가 아닌 치유의 서사에 집중한다.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이색적인 장르적 결합에 있다. 저승의 재판 과정을 서양의 콘서트 형식과 동양의 전통 씻김굿을 섞어 구현한다. 죽은 자를 인도하는 바리의 여정은 현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강력한 위로가 된다.
  • ▲ 뮤지컬 '어둑시니' 포스터 및 출연진.ⓒ뉴프로덕션
    ▲ 뮤지컬 '어둑시니' 포스터 및 출연진.ⓒ뉴프로덕션
    ◇ 어둠 속에 숨은 우리 그림자, 뮤지컬 '어둑시니'

    한국 민담에 등장하는 어둠의 신 어둑시니가 무대 위에서 형상화된다. 공연 제작사 뉴프로덕션 뮤지컬 '어둑시니'(작·작사 김지식, 작곡 유한나)를 6월 9일~8월 30일 대학로 NOL 서경스퀘어 스콘 2관에서 처음 선보인다.

    작품은 인간을 혐오하며 그들의 두려움을 먹고 사는 불로불사의 요괴 '어둑시니'와 앞을 보지 못해 늘 어둠 속에 살지만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맹인 청년 '소문'의 만남을 다룬다. 서로 다른 어둠을 살아가던 두 존재는 책과 이야기를 매개로 점차 가까워진다. 어둑시니의 무채색 세상이 소문의 순수한 진심을 통해 점차 빛으로 물들어가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깊은 위로와 성장의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초연에서는 '어둠의 신' 역에 강찬·조모세·박두호가 낙점됐다. 이들은 신비로우면서도 냉소적인 어둑시니의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줄 예정이다. 맹인 청년 '소문' 역에는 이한솔·신주협·류동휘가 출연한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 따뜻한 인간미를 보여주는 섬세한 연기를 보여줄일 계획이다.
  • ▲ 2023년 창작가무극 '신과 함께_저승편' 공연 사진.ⓒ서울예술단
    ▲ 2023년 창작가무극 '신과 함께_저승편' 공연 사진.ⓒ서울예술단
    ◇ "저 세상행 열차 다시 출발한다"…서울예술단 '신과 함께-저승편'

    갓 대신 수트를 입고 서류 가방을 든 저승차사들이 지하철에서 망자를 기다린다. 주호민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신과 함께_저승편'(작·작사 정영, 작곡 박성일)이 3년 만에 다섯 번째 시즌으로 귀환한다. 공연은 6월 13일~7월 5일 NOL 씨어터 대학로 우리카드홀에서 이어진다.

    '신과 함께_저승편'은 방대한 원작의 서사를 165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절묘하게 압축했다. 웹툰에서 순차적으로 전개되던 '김자홍의 재판'과 '저승차사의 원귀 추적'이라는 두 축을 무대 위에서 유기적으로 교차시켜 공연 예술만의 역동성을 확보했다. 평범한 소시민 김자홍과 엘리트 변호사 진기한, 저승차사 '강림' 일행의 여정은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가장 유쾌한 방식으로 던진다.

    공연의 백미는 단연 무대다. 박동우 무대 디자이너와 정재진 영상 디자이너가 협업해 구현한 지옥은 초현실적이면서도 세련된 미감을 자랑한다. 무대 중앙을 차지한 17m의 거대한 바퀴 모양의 구조물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통로이자 윤회의 상징이다. 무대 바닥에 설치된 80㎡ 규모의 LED 스크린은 불덩이가 치솟는 화탕지옥부터 얼어붙은 한빙지옥까지 실감나게 구현한다.
  • ▲ 뮤지컬 '성주(城主)_집 잃은 신의 서울 표류기' 포스터 및 출연진.ⓒ네버엔딩플레이
    ▲ 뮤지컬 '성주(城主)_집 잃은 신의 서울 표류기' 포스터 및 출연진.ⓒ네버엔딩플레이
    ◇ DIMF서 주거 현실 비춘다…'성주(城主)_집 잃은 신의 서울 표류기'

    뮤지컬 '성주(城主)_집 잃은 신의 서울 표류기'(작 김희정, 작곡 임지송, 이하 '성주')가 '제20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의 '창작지원사업' 선정작으로 7월 3~5일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에서 공연된다. 작품은 300년간 경북의 한 종갓집을 지켜온 성주신의 이야기를 다룬다.

    '성주'는 가장 한국적인 소재인 전통 신앙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전개는 지독히 현실적이다. 평화롭던 고택이 하루아침에 에어비앤비 숙소로 변하며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성주신은 가신(家神)들의 블루오션이라 불리는 서울로 상경해 자신만의 '내 집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신조차 머물 곳이 없는 서울"이라는 배경 위로 흐르는 서정적인 넘버는 전통 신앙을 힙(Hip)하고도 짠한 현대의 서사로 탈바꿈시킨다.

    오늘날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자산이자 신분으로 치환된다. 뮤지컬은 집을 지키던 존재가 오히려 집을 잃게 된다는 아이러니를 통해 법과 제도가 결합된 견고한 주거 시스템이 누군가에게는 거대한 장벽이 되는지를 묻는다. 극의 흐름에 따라 '어디에 사는가'라는 외형적 조건보다 '누구와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집중하며, 사람의 온기로 완성되는 진정한 집의 의미를 재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