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불법조업 격노-PMZ는 질문만합참 MDL '남하 지침' 공식화PMZ 접근·항행, 새 충돌 전선'묵인' 함정…프레아 비헤아 교훈中 124°선, 서해 70% 독식 야욕
  • ▲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 일대에 설치된 중국 측 부표·구조물의 위치와 사진을 정리한 도표. 미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산하 '비욘드 패럴렐'(Beyond Parallel)은 지난 9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 일대에 설치된 중국 측 부표·구조물의 위치와 사진을 정리한 도표. 미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산하 '비욘드 패럴렐'(Beyond Parallel)은 지난 9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은 2018년 이후 해당 수역 내부 및 주변에 13개의 부표를 일방적으로 설치했고 한국과 사전 협의 없이 물고기 양식을 명분으로 한 '선란(Shen Lan) 1호'와 '선란 2호' 등 2개의 양식장 케이지와 통합 관리 플랫폼인 '아틀란틱 암스테르담'을 수역 내에 건설했다"며 "영구 시설물의 수역 내 설치는 한중 어업협정 위반"이라고 분석했다. ⓒCSIS Beyond Parallel
    남북 군사분계선(MDL)과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서 북한과 중국의 '현상 변경' 시도가 맞물리면서 정부의 갈등 관리 기조가 시험대에 올랐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냉전기 핀란드가 소련을 의식해 안보의 자율성을 스스로 제약한 '핀란드화'(finlandization)의 그림자가 21세기 한반도 비무장지대(DMZ)와 서해에 드리우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우발적 충돌을 피한다는 명분 아래 대응 기준이 보수적으로 설정되면 단기적 안정과 맞바꿔 군사·영토 주권의 작동 원칙이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법조업엔 전면, PMZ는 질문만 … 대통령 메시지의 비대칭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해양수산부·해양경찰청 업무보고에서 중국 불법 조업 어선에 대해 "아주 못됐다"며 나포와 벌금 대폭 인상을 거론하는 등 강경한 원칙론을 전면에 세웠다.

    반면 중국의 서해 구조물 문제는 "(해경의) 구조물 순찰을 중국 측이 방해하고 있느냐"는 질문과 "구조물까지 순찰하고 온다"는 장인식 해양경찰청 차장의 답변이 오가는 선에서 정리됐다.

    내년 초 한중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대중(對中) 메시지를 이례적으로 강하게 낸 것이지만, 서해 PMZ 내 구조물 설치 및 항행금지구역 설정 논란은 발언의 중심축으로 올라서지 못했다.

    결국 단속·벌금처럼 집행 가능한 영역과 PMZ 회색지대처럼 외교·안보 비용이 큰 영역이 분리돼 관리되는 듯한 인상을 남기며 현상 변경을 위한 상대의 저강도 조치가 누적될 여지를 키울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 ▲ 22일 합동참모본부가 우리 군의 군사지도상 군사분계선(MDL)과 유엔군사령부의 MDL 기준선이 다르면 둘 중에 더 남쪽의 선을 기준으로 북한군의 MDL 침범에 대응하라는 지침을 전방 부대에 전파했다. 우리 군은 또 내년 중 유엔사와 서로 기준선이 다른 부분에 대해 협의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 22일 합동참모본부가 우리 군의 군사지도상 군사분계선(MDL)과 유엔군사령부의 MDL 기준선이 다르면 둘 중에 더 남쪽의 선을 기준으로 북한군의 MDL 침범에 대응하라는 지침을 전방 부대에 전파했다. 우리 군은 또 내년 중 유엔사와 서로 기준선이 다른 부분에 대해 협의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MDL '남쪽선' 적용 공식화 … 우발충돌 방지의 역설

    합동참모본부는 최근 우리 군의 군사지도상 MDL과 유엔군사령부의 MDL 기준선이 다를 경우 더 남쪽에 있는 선을 기준으로 북한군의 MDL 침범에 대응하라는 지침을 공식화했다.

    합참은 지난 22일 입장을 내고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군의 정전협정 위반 행위 발생 시 현장 부대의 단호한 대응과 남북 간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지난해부터 현장의 '식별된 MDL 표지판'을 최우선 적용하되, MDL 표지판이 식별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군사지도상 MDL과 유엔사 MDL 표지판 좌표의 연결선을 종합 판단해 조치 중"이라고 밝혔다.

    MDL 기준선 불일치 문제는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북한의 국경선화 작업에 맞물려 있다. 북한은 2023년 12월 김정은이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이후 2024년 4월부터 MDL 근접 지역에서 불모지 및 전술도로 구축, 철조망과 지뢰 장애 설치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은 올해 3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총 17회 MDL을 침범했고, 우리는 경고 사격과 경고 방송으로 대응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해 6월 변경 지침을 하달해 전방에서 적용해 왔고, 올해 9월 작전 관련 지침서에 공식 반영했다"며 "이 조치는 북한군이 주간에 노출된 환경에서 MDL 근접 활동을 하는 지역에 한정하며 소극적 대응을 위해 작전 절차를 변경하거나 북한군에 유리하게 MDL을 적용한 게 아님을 명확하게 밝힌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국경선화'가 남긴 경고 … 작은 조치의 누적이 만든 현상 변경

    그러나 러시아가 조지아와의 접경지역에서 벌인 '물리적 국경선화' 사례를 살펴보면 우발 충돌 방지에 방점을 찍은 한국의 근시안적인 갈등 회피 기조가 군사·영토 주권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국경선화는 분쟁선이 물리적 장벽과 통행 통제로 굳어지면서 현실의 경계로 작동하는 과정을 뜻한다. 특히 MDL을 침범해 철조망을 설치하는 북한의 작업은 모호성과 물리적 조치가 누적되면 경계의 작동 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할 메커니즘으로 꼽힌다.

    러시아가 조지아 접경에서 보여준 것은 한 번에 밀어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펜스·감시 장비·표지판 같은 물리 조치를 쌓아 분쟁선을 현실의 경계로 굳히는 전략이었다. 북한의 반복적인 MDL 침범 역시 상대가 전면전을 결심하기 어려운 수준의 미세한 도발을 반복해 종국에는 현상을 변경하는 '살라미 슬라이싱'(Salami Slicing) 전술의 사례로 볼 수 있다. 
  • ▲ 캄보디아-태국 접경의 '프레아 비헤아 사원'의 위치. 국제사법재판소(ICJ)는 1962년 판결에서 당사국의 장기간 태도와 지도 수용 여부 등을 종합해 판단했다.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캄보디아-태국 접경의 '프레아 비헤아 사원'의 위치. 국제사법재판소(ICJ)는 1962년 판결에서 당사국의 장기간 태도와 지도 수용 여부 등을 종합해 판단했다.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中, 서해 PMZ 접근·항행 막으며 '서해 공정' … 남중국해 식 '기정사실화'

    중국은 남중국해를 사실상 중국의 내해(內海)로 만든 '기정사실화'(Fait Accompli) 전략을 서해에서도 되풀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북한 전문 매체 '비욘드 패럴렐'은 지난 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은 2018년 이후 해당 수역 내부 및 주변에 13개의 부표를 일방적으로 설치했고 한국과 사전 협의 없이 물고기 양식을 명분으로 한 '선란(Shen Lan) 1호'와 '선란 2호' 등 2개의 양식장 케이지와 통합 관리 플랫폼인 '아틀란틱 암스테르담'을 수역 내에 건설했다"며 "영구 시설물의 수역 내 설치는 한중 어업협정 위반"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민간 어선과 해경을 동원해 분쟁 수역을 포위하는 '양배추 전술'(Cabbage tactics)을 통해 실질 지배를 고착화한 것과 동일한 유형이다. '해양 과학 조사'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해당 해역에 대한 배타적 관할권을 주장하며 향후 EEZ 경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회색지대 전술'이다.

    실제로 중국 해사 당국은 5월 PMZ 내에 항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최신예 항공모함인 푸젠함을 동원해 해상훈련을 벌였다. CSIS는 2020년 이후 PMZ 내 한국의 감시·조사 시도 135건 중 27건이 중국 해경에 의해 가로막혔다는 사실도 짚었다. 이런 사례가 누적되면 PMZ에서 접근과 항행 자체가 갈등의 전선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CSIS의 '잠정조치수역에서의 한중 대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월 해수부 산하기관의 해양조사선인 온누리호가 서해 잠정조치수역에 진입하자 중국 해경 경비함 한 척과 중국 해경 함정 두 척이 온누리호 쪽으로 접근했다.

    이튿날에는 온누리호와 한국 해경 함정이 잠정조치수역에 중국이 설치한 양식 구조물 선란 1호와 2호에 접근하자 중국 해경 함정 두 척이 온누리호를 에워싸는 등 대치 상황이 벌어졌고, 중국 함정은 온누리호와 해경 함정이 잠정조치수역을 벗어날 때까지 15시간 동안 추적했다. 

    빅터 차 CSIS 한국 석좌 등은 "중국의 남중국해에서의 군사화 전례를 고려할 때 PMZ 인근 부표 설치는 한국과의 분쟁 해역에 대한 중국 관할권을 주장하는 것"이라며 "주요 해상 통로에서 강화된 감시 능력을 설정하며, 서해에서 중국의 해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장기적 노력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묵인'의 국제법적 함정 … ICJ의 '프레아 비헤아 사원' 사건 판결 교훈

    국제분쟁에서 한 국가의 장기간 태도(수용 여부, 항의의 방식과 시기, 후속 조치)는 훗날 권원(권리의 근거)과 묵인(acquiescence) 여부를 가르는 핵심 정황으로 작용할 수 있다.

    1962년 '프레아 비헤아 사원' 사건 판결 당시 국제사법재판소(ICJ)는 태국이 프랑스(캄보디아의 당시 보호국)가 작성한 지도를 수용하고 장기간 명확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점을 종합하여 주권 인정을 판단했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구조물 설치나 북한의 MDL 침범을 둘러싼 정부 대응이 기록과 조치로 일관되게 축적되지 않으면 향후 분쟁 국면에서 한국의 법적·외교적 입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中, 동경 124도 '작전 경계선'으로 설정 … "서해의 70%가 中 관할수역化"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최근 언론 기고문에서 "중국 군부는 시진핑 체제 출범 직후인 2013년부터 국제법적 근거 없이 동경 124도를 '작전 경계선'으로 설정하고 한국 해군 함정의 진입과 훈련을 차단하고 있다"며 "중국이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강요해 온 동경 124도 선은 한중 잠정조치 수역에서 한국 쪽으로 크게 치우쳐 있어 이대로라면 서해의 약 70%가 중국 관할수역이 된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은 그 수역을 자국 해군의 배타적 작전 수역으로 독점하려는 의도여서 해양 주권 수호를 위한 국가적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