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국가 전략으로 격상한 중국…엔비디아 중심 생태계 균열'최고 성능' 대신 '충분히 쓸만한 기술' 선택한 까닭은한국 반도체, 전략의 기로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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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반도체 관련 일러스트.ⓒ연합뉴스
중국이 인공지능(AI)을 차세대 성장 전략의 핵심으로 규정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구조적 변화가 가속화하고 있다.AI 연산의 핵심이 되는 첨단 반도체를 중국이 자국 기술로 확보하려 총력을 다하면서 글로벌 시장 질서에도 미묘한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명확한 산업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중국은 AI와 반도체를 '외부에 의존할 수 없는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연구개발 지원부터 조달·수요 정책까지 전방위적 개입을 통해 자국 중심의 AI 하드웨어 생태계 구축을 추진 중이다.기술 자립은 단순한 산업 목표를 넘어, 미중 갈등 국면에서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방어하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인식된다.이 흐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기업은 미국의 엔비디아다.엔비디아는 고성능 AI 연산용 반도체와 이를 뒷받침하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결합해, 사실상 글로벌 AI 인프라 표준의 위치를 차지해왔다.중국의 AI 반도체 굴기는 바로 이 시장 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엔비디아 중심 구조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시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엔비디아의 챔피언 벨트를 넘보는 중국 AI 반도체 기업들의 도전은 성능 비교로만 설명하기 어렵다.엔비디아가 최첨단 공정과 고대역폭 메모리(HBM),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결합한 '완성형 AI 연산 환경'을 제공하는 반면, 중국 기업들은 절대 성능에서의 정면 승부를 피하는 대신 자국 시장에 최적화된 '충분히 쓸 수 있는' 대안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이 같은 전략 차이는 기술 격차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업계에서는 중국 AI 칩이 엔비디아의 최신 제품과 동일한 성능을 단기간에 구현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그러나 중국 입장에서 보면 모든 영역에서 최고 성능의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대규모 언어모델 학습보다는 추론, 내부 데이터 처리, 공공·산업 프로젝트 등 안정적 공급과 비용 통제가 중요한 영역을 자국산 AI 칩이 완전히 맡아주면 활용 가치는 충분하다는 판단이다.중국 정부의 AI 및 데이터센터 정책 역시 이러한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외국산 고성능 칩이 언제든 대중(對中) 수출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다소 성능이 낮더라도 지속적으로 조달 가능한 자국산 AI 칩은 전략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이로 인해 중국 AI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 중심의 단일 구조에서, 여러 토종 기업이 역할을 분담하는 다층적 구조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
- ▲ 화웨이 로고. 출처=로이터ⓒ연합뉴스
기업별로 살펴보면 이러한 흐름이 분명하게 나타난다.중국 화웨이는 AI 가속기 '어센드' 시리즈를 앞세워 중국 내 공공·금융·통신 분야를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어센드 칩은 엔비디아 최신 GPU(그래픽처리장치) 대비 성능에서는 뒤지지만, 화웨이가 묶어 공급하는 서버·네트워크·소프트웨어와 함께 중국 내부 프로젝트에 특화된 통합 솔루션으로 자리 잡고 있다.캠브리콘은 보다 전형적인 '중국식 엔비디아 대체 모델'로 평가된다. 캠브리콘은 클라우드와 엣지용 AI 칩을 동시에 개발해 중국 빅테크와 지방정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고객을 늘리고 있다.회사의 최근 급증한 실적은 중국 내에서 엔비디아 저사양 칩을 대체할 수 있는 국산 옵션에 대한 실질적 수요가 존재함을 보여준다.알리바바 역시 자체 AI 칩 개발을 통해 클라우드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알리바바의 전략은 외부 판매보다 자사 클라우드 서비스의 비용 구조 개선과 성능 최적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이는 중국 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AI 인프라를 내부 자산으로 공고히 하려는 흐름을 보여준다.신생 기업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메타X와 무어스레드는 최근 중국 증시 상장 이후 시장의 높은 관심을 받으며, 중국 AI 반도체 산업이 정책 테마를 넘어 실질적인 성장 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증명했다.이 기업들 상당수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 출신 인력을 중심으로 구성됐다는 점은 중국 AI 칩 산업이 기술 축적 단계에 진입했음도 시사한다.이러한 변화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중요한 함의를 던진다.중국의 AI 반도체 굴기는 글로벌 AI 하드웨어 공급망 구조 자체를 흔들 수 있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한국은 AI 반도체 경쟁에서 시스템 반도체보다는 메모리 분야에서 절대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특히 한국이 강점을 가진 HBM은 AI 연산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으로, 글로벌 AI 칩 업체들이 필수적으로 의존하는 영역이다.중국 기업들이 자체 AI 칩을 개발하더라도 고성능 AI 서버 구축을 위해 한국산 메모리에 대한 의존을 단기간에 끊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다만, 중국이 중저가 AI 서버와 추론용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자국 생태계를 확대할 경우 HBM이 아닌 범용 메모리나 대체 기술이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이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프리미엄 전략과 함께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중국의 'AI 굴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이 흐름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질서를 바꾸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한국 역시 이 변화의 관찰자가 아니라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로서 단기 실적을 넘어, 기술·공급망·지정학을 함께 고려한 장기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