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 앞에서 웃는 '주름진 얼굴'도 퇴장할 때 온다
  • 지난 2017년 대선에서, 나의 제자가 “광주 청년이 아무개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라는 영상을 올렸다. 교회 청년 몇이 찍은 조야(粗野)한 영상이었지만, 반향은 컸다. 며칠 만에 조회수 15만을 돌파했다. 후보의 캠프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KTX를 타고 서울로 갔다. 차비를 쥐어 주었는데, 돌아와서 하는 말이 “후보 뒤에 서 있는 배경 역할을 했어요”였다.

    2020년 총선에서도 “청년병풍”은 계속 세워졌다. 제자들은 유세현장에 와서 뒷배경처럼 서 있어달라는 후보들의 부탁에 진절머리를 냈다. 2022년 보궐선거에서는 그나마 진일보했다. 뒤에 있는 병풍이 앞으로 나와서 연설도 하고 유세도 했다.

    “정말 열심히 했어요. 솔직히, 작은 자리라도 하나 얻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리마다 임자는 미리 정해져 있었더라구요.”

    반듯하고 똑똑해 보이는 청년이 허탈한 듯 웃었다. 국민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정치판인데, 이준석처럼 하버드 스펙에 유승민 인맥 정도가 아니라면, 뚫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이 나라에서 고위직을 지냈던 이들을 많이 만났다. 연락이 와서 가면 본인들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는지, 장광설(長廣舌)을 이어갔다. 그토록 훌륭한 인물들이 이끌어간 나라가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는지, 신기했다. 하지만 정말 신기한 일은 마지막 순간에 일어났다. 분명 본인이 만나자고 해서 애써 시간을 냈는데, 긴 무용담을 늘어놓은 끝에는 계산대 앞에서 직진했다.

    그때 대학시절에 들었던, 점잖치 않은 농담이 떠올랐다. 소위 ‘고위층’ 인사들이 젓가락질을 할 줄 모른다고,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옆에서 술도 따라 주고 과일도 찍어서 입에 넣어주니, 젓가락질 하는 법을 잊었다고 한다. 문득, 농담이 아니라 사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드 긁을 줄 모르는데, 젓가락질을 어떻게 하겠는가. 남의 자식 밥 한 끼 사줄 줄 모르는 그들이 자기 자식들은 줄줄이 외국에 보내놓고 있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사족(蛇足)을 붙이자면, 청년들 밥 사주기 좋아하시는 고마운 어른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분들은 많지 않았고, 필자와 같은 경험을 한 동지들은 적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냈던 이십대의 박지현은 당대표에 도전하려고 했지만, 출마자격이 안 된다는 이유로 저지당했다. 그녀는 지난 7월 6일 자신의 SNS를 통해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필요할 땐 온갖 감언이설로 회유해서 이용해 먹고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하려고 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토사구팽(兎死狗烹)을 하는 이 정치판”이라며, “그동안 청년 정치인들이 정치권에서 그저 잠깐 ‘얼굴 마담’으로 쓰이고 사라져 버린 적이 워낙 많았다.”고 했다. 판을 제대로 읽은 글이다.

    흥미로운 점은 우상호 대표의 반응이다. 그는 윤리위원회의 징계를 받은 이준석에 대해선 “선거에서 활용하고 버린 것”이라며 다분히 동정적으로 분석했다. 반면 박지현에 대해선 “당대표나 최고위원 선출할 때 외부인사 영입해서 (당원자격 예외의 출마자격을) 준 적이 없었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남의 당 대표를 동정하고 자기 당의 전임 비대위원장에게는 냉혹한, 진풍경이다.

    어차피, 청년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래도 시간은 그들의 편이다. 청년병풍 앞에서 웃음 짓는 주름진 얼굴이 퇴장해야할 순간이 있다, 얼굴마담을 뒤에서 조종하던 늙은 손도 약해질 때가 있다. 때를 기다리며 칼을 가는, 젊은 야망을 기대한다. 사랑도 정치도 쟁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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