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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일 칼럼] "김정은이여 오시옵소서"… 탈북민 '인신공양'한 文 정부

전체주의 광기(狂氣) 독재는 '악마' 그 자체다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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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2-07-13 15:06 수정 2022-07-13 16:55

▲ 2019년 문재인 정부 당시 판문점에서 강제로 북송되는 탈북 어민들의 모습. ⓒ사진 제공 = 태영호 의원실

탈북 어민 강제북송 장면은 586이란 집단이 어떤 종류의 인간들인지를 적나라하게 알게 했다.  

저들은 객관적 법도(法度)와 규범(規範)을 우습게 여기는, 사전적으로 말하면 극단 혁명가들이고 규범적으로 말하면 산적(山賊) 떼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혁명가(revolutionary), 또는 ’산적(山賊) 좌파(bandit left)‘는 도덕적 정당성, 법적 정당성, 절차적 정당성 같은 걸 반동적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라고 폄훼(貶毁)한다.  

그 대신 그들은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 민중혁명을 위해선 은행 강도 짓을 해도, 안경 쓰고 손이 하얗다는 이유만으로 주민 300만 명을 반동으로 몰아 학살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시킨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 주인공, 대학생 라스콜니코프는 자기 같은 잘난 진보 엘리트는 기생충 같은 수전노(守錢奴) 노파를 얼마든지 죽여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로베스피에르,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폴 포트, 북한 김가 세습 사교(邪敎) 집단의 악마성이 바로 그런 데서 나왔다.  

한국 운동권 일각에도 그런 ‘혁명 지상(至上)’이 일찍부터 터 잡아 왔다.
그들은 시인 김지하가 운동을 위해 옥중에서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계속 써내기를 요구했다. 
그래서 유신 정권이 그를 죽이길 바랐다.
시인을 제물, 수단으로 친 것이다.
김지하에 앞서 타계한 그의 부인 김영주가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사연이다.(2011.02.28. 조선일보. 최보식이 만난 사람)

2019년 11월 2일 북한 어민 두 명이 배를 타고 귀순했다.
586 당국자들은 5일, 북한이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이들을 북송하기로 했다.
그리고 7일, 발버둥 치고 주저앉는 이들을 판문점에서 등 떠밀어 북한에 넘겼다.
처절, 끔찍, 잔인, 무자비, 살기(殺氣), 음모 그 자체였다.
21세기 대명천지에 문재인 무리가 벌린 엽기적 인신 공여(人身 供與) 사육제였다. 

왜 그랬나?
김정은이 부산에 오기를 바라는 목적에서 그런 수단을 썼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그래놓곤 쉬쉬하다 이게 알려지자, 그때 통일부 장관은 ”그들이 죽어도 조국에 돌아가길 원했다“고 국회에서 답변했다.
거짓말이다.
그럼 그들이 북송 순간 왜 그렇게 몸부림치며 저항했단 말인가?  
그 둘은 사람 16명을 살해한 범죄자들이라고 저들은 말한다.
그렇더라도 그들이 헌법상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그들을 외국인처럼 봐야 한다는 좌파도 있다) 그 혐의를 일단 철저하게 규명은 한 뒤에 어떤 결정이라도 내려야 할 것 아닌가?
이런 절차적 정당성은 그들의 ‘거룩한’ 목적 앞에선 한낱 작은 수단일 뿐이란 뜻인가?  

일부는 말한다.
간첩 조작 사건 같은 것엔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왜 이런 일엔 인권 인권 하느냐고.
그렇다면 자기들은 왜 탈북 모녀가 베이징 주재 외교사절 문안으로 필사적으로 들어가려다 붙잡히는 장면엔 아무런 연민도 표하지 않았는가?
김정은이 주민 200만~300만을 굶어 죽게 했을 때도 저들이 언제 한 번 김정은 책임을 물은 적 있나? 

이런 사례에서 보듯, 저들과는 말싸움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입만 아프다.
저들은 왜 이럴까?
도덕적 절대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정의는 온통 자기들이 독점한다고 자만하기 때문이다.
‘뭣 짖는 소리’다. 

누가 역사의 진보 자체를 마다한다고 했나?
문제는 저들이야말로 진보도 깻묵도 아니란 사실이다.
저들은 그저 너절한 또 하나의 수구반동일 뿐이다.
조선왕조 때의 성리학 원리주의 세계인식의 연장일 뿐이다.
이런 전근대적 왕당파엔 근대 이래 계몽사상(enlightenment)에 기초한 레지스탕스만이 답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섯 가지를... .

저들에게 ,

심약하게 기죽지 말아야 한다.
가산점 주듯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 
보이스피싱에 당하듯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천진난만하게 대하지 말아야 한다.
이론적·논리적으로 꿀리지 말아야 한다.  

20세기와 21세기 초반을 살며 나치와 볼셰비키, 그리고 그 숱한 잡종(hybrid)들과 변종(variant)들을 겪은 자유인들은, 자유의 세계관이, 역시 이 시대 진정한 진보임을 고백할 만하다. 

586 무리, 문재인 정권, 관련 피고발인들...
그들에 의해 강제 북송돼 처형당했을 원귀(冤鬼)를 장차 어찌 감당할꼬? 

이 대목에서, 2018년 9월 13일 자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자유주의 특집의 인상적인 기사의 중요한 관점울 인용해 둔다.

https://www.economist.com/leaders/2018/09/13/a-manifesto-for-renewing-liberalism

자유인들의 유용한 토론자료가 됐으면 한다.

”자유주의는 근대 세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근대 세상은 자유주의에 등을 돌리고 있다.
유럽에서도 아메리카에서도 자유주의 엘리트에 대항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ordinary people)의 문제 해결에 그들이 인색하고 무능하고 의지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4반 세기에 걸친 자유와 개방 경제(open market)를 향한 우리의 캠페인과는 반대로, 추세가 뒤집혔다. 
중국이 세계 최대의 경제가 될 판이니 말이다.
독재가 번창한다는 이야기다."

"이걸 <이코노미스트>는 심각하게 잘못된 추세라고 본다.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 논객들에게 부추김당한 미국 대학 캠퍼스와 극단 자유주의(ultra liberalism)의 ‘좌파적 진보’가 아닌, 자유주의를 캠페인 하기 위해 175년 전에 창간되었다.
<이코노미스트>는 다시 토론과 개혁(debate and reform)을 통해 개인의 존엄, 개방 경제, 제한된 정부, 인류 진보에 대한 믿음에 개입하려 한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완벽하다고 말하진 않는다.
실패도 많았다.
그러나 지난 세기를 통해 전체주의 광기(狂氣) 독재는 그와 비교도 할 수 없게 ‘악마 그 자체’였음이 경험적으로 입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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