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박진경 대령 유공자 취소 검토 논란민주 "동학농민혁명 유공자 서훈 촉구"학계선 "심사 기준 등 물리적 한계 우려"
  • ▲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뉴데일리DB
    ▲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뉴데일리DB
    이재명 대통령이 1948년 제주 4·3 사건 초기 진압을 주도한 박진경(1920~1948)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 검토를 지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와중에 더불어민주당에선 "동학농민혁명 독립유공자 서훈을 서두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역사 논쟁은 가일층 뜨거워지고 있다.

    민주당 전북도당은 16일 논평을 내고 "이재명 대통령이 어제(15일) 제주 4·3 민간인 학살 작전 책임자인 고 박진경 대령 국가유공자 등록 취소 검토를 지시했다"며 "제주 4·3사건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 회복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대통령의 지시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보훈부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에 대한 독립 유공자 서훈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며 "동학농민혁명은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민족 항쟁이자 근대 민주주의 운동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정신은 이후 3·1운동,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10민주항쟁, 촛불혁명, 빛의혁명으로 이어졌다"면서 "민주주의, 인권, 평등, 상생 공동체를 향한 투쟁으로 민의 시대, 국민주권시대의 기원이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에 대한 조속한 독립유공자 서훈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했다.

    하지만 학계에선 동학농민혁명을 근대시민혁명으로 평가할지 여부부터 첨예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동학을 자본주의맹아론과 결부시켜 근대와 관련한 시민혁명으로 보고자 하는 연구는 오늘날 교과서 서술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자본주의맹아론이란 전근대 동북아시아에서 열강의 훼방이 없었다면 자체적으로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근대화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하지만 학계 일각에선 이에 대한 전면 검토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근대의 자유시장경제와 공화주의를 체제 근간으로 삼는 대한민국과의 관련성을 찾기엔 학문적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참여자 식별 단계부터 유족에 대한 '심사' 근거 및 기준에 대해서도 극히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과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한 역사학자는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비교적 사료가 충분하다고 여겨져도 6·25 전쟁과 건국에 이바지한 분들에 대해서조차 유공자로 지정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아직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동학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에 대해선 물리적 한계와 국가적 비용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며 "이런 식으로 올라가면 삼국시대까지 가야 한다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 ▲ 지난 15일 오후 제주시 산록도로 한울공원 인근 도로변에 있는 고(故) 박진경 대령 추도비 옆에서 열린 제주4·3의 진실을 담은 '바로 세운 진실' 안내판 설치 행사에서 반대단체 관계자가 항의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4일 국가보훈부에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를 검토하라고 지시해 논란에 휩싸였다.ⓒ뉴시스
    ▲ 지난 15일 오후 제주시 산록도로 한울공원 인근 도로변에 있는 고(故) 박진경 대령 추도비 옆에서 열린 제주4·3의 진실을 담은 '바로 세운 진실' 안내판 설치 행사에서 반대단체 관계자가 항의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4일 국가보훈부에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를 검토하라고 지시해 논란에 휩싸였다.ⓒ뉴시스
    이와 관련한 역사 논쟁은 최근 이 대통령이 검토를 지시한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등록 취소 논란과 맞물리면서 더욱 불붙고 있는 모습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14일 박 대령의 국가유공자 지정을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국가보훈부에 지시했다. 좌파 시민단체들이 '취소'를 요구하는 집회를 한 후 이틀 만의 일이었다.

    박 대령은 제주 4·3 사건 초기 진압작전을 이끈 인물이다. 1948년 5월 6일 미 군정 당국의 명에 따라 제주도 9대연장(후추 11연대장 보직)으로 부임했고, 당시 빈약한 참모 조직을 정비해 효율적인 작전 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박 대령은 '공산 폭도 100명을 놓치더라도 무고한 주민이 한 명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주민 보호 지침을 하달하는 등 주민을 보호하되 공산 폭도들을 효과적으로 진압한 지휘관으로 유능함을 평가받았다.

    하지만 박 대령은 진압 작전에 투입된 지 두 달도 안 된 6월 18일 새벽 3시 30분 취침 중 남로당 세포로 활동하던 부하인 손선호 하사의 총을 맞고 살해당했다.

    당시 미 군정 장관이었던 윌리엄 딘 소장은 한국군 장교 중 백선엽과 박진경을 '가장 정직하고 머리가 좋아 한국 육군을 이끌어갈 인재'라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딘 소장은 자신이 아꼈던 박 대령이 부하들에 의해 살해당하자 충격을 받고 직접 제주도까지 날아가 C-47 수송기에 박 대령의 유해를 싣고 오기까지 했다.

    하지만 좌파 진영에선 박 대령을 '학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제주도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는 등의 주장이 퍼지면서다. 다만 이 같은 주장은 남로당 사주를 받은 암살범의 법정 주장을 차용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아 '왜곡' 논란을 빚고 있다.

    대통령실발 역사 논란이 정국을 달구자 지난 6월 대선 이 대통령을 지지했던 논객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역시 날을 세웠다.

    조 전 대표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하여 무장폭동을 일으킨 남로당의 반란을 진압하다가 암살당한 지휘관을 이렇게 증오한다면 북한군이 남침할 때 국군에 진압을 명령할 수 있나"라며 "역사는 시간과 평가의 축적이다. 이를 권력으로 바꾸겠다는 오만은 역사의 보복을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 대통령이 보훈마저 정권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으로, '과거사의 정치화'이자 역사 판단도 대통령이 직접 개입해 마음대로 뒤집어 없겠다는 '독재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역사는 단순한 선악 구도로 나눌 수 없으며, 비극의 책임을 한 개인에게 덧씌우는 방식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라며 "이재명 대통령은 진영 갈등을 촉발시키는 지시를 즉각 취소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