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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보길 칼럼] ‘성상납 파문’으로 본 미인계 이야기

김정일, 한국인 등 외국인 불러다가 "씨받이 공작"김일성은 김구 평양가자 '첫 사랑의 여인' 상봉시켜

입력 2021-12-30 00:41 | 수정 2021-12-31 00:10

▲ 오늘의 평양시가지. 105층 류경호텔이 보인다.(자료사진)

무시무시한 대선판에 성추문 파문까지 등장

대한민국 건국후 ‘처음 겪어보는’ 아수라장 선거판, 대형 범죄와 조폭과 자살과 죽음이 넘실거리는데도 구경만 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대선 싸움판에 급기야 성상납 스캔들까지 튀어나와 시끄럽다. 당사자야 물론 부인하지만 폭로한 유튜버가 검찰의 수사기록이라 주장하니 안 믿기도 어려운 게 대중심리 아니랴. 이를 본 사람들은 대통령 선거에 큰 영향력을 지닌 정치인이 그동안 ‘제집 망치기’ 행보를 벌인 일이 “미인계에 걸려 약점 잡힌 프락치, 트로이의 목마 같은 소행이었느냐”고 멋대로 해석을 꿰맞추며 수근거리고 있다. 그 유튜버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언젠가 밝혀지지 않겠느냐면서.

▲ 북한 김정일과 여인들.(자료사진)

◆손자병법 36계중 31계 미인계(美人計)를 전국시대 ‘서시’부터 현재까지도 가장 많이 잘 써먹는 나라는 물론 중국이다. 지금 한국에도 중국 공산당에 봉사하는 미녀들이 오고가는지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중국을 뺨치는 미인계를 활용한 사람은 북한 김정일, 이름하여 ‘임신공작’ 또는 “씨받이공작‘이었다. 10여년전 북한을 탈출한 ’통일전선부 요원‘이 폭로한 내용을 잠깐 보자. 

김일성이 추진한 ’고려연방제 통일‘ 전략은 무력공격 대신에, ”남한에서 군사정부가 물러나도록 ’민주화세력‘을 만들어 지원하는 지능적인 적화공작“이 필요했다. 몇 차례의 지하당 암약과 시위 폭동으로도 실패한 이 목표를 이어받은 아들 수령 김정일은 전술을 추가하여 ’소년소녀 납북‘을 감행한다. 당연히 한국과 일본의 10대 청소년들을 납치하였다. 일본 소녀 메구미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미 성장한 소년소녀들을 완전히 세뇌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하여 아예 ’타고난 공산당 간첩‘을 만들기 위해 짜낸 것이 ’씨받이 공작‘이다. 
한국인, 일본인만이 아니라 백인, 아랍인과 흑인도 평양에 데려다가 씨를 받는 작전은 ’임신 공작‘이라고도 불렀다.

평양 동대원구에는 ’철통경비‘ 단독주택 마을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바로 ‘현지처’와 그 아이들. 즉, 북한이 점찍어 불러들인 한국인들을 비롯한 각국 포섭대상자들이 씨를 뿌린 북한 미녀들과 그 자녀들이다. 
그 남편, 아빠들은 모두 과거에 방북했거나 지금도 수시로 왕래하는 각국의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종교인, 학자, 문화예술인 등이다. 북한 정권은 그 현지처와 아이들을 인질삼아 그 아버지들에게 북한에 대한 협조와 각종지원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리고 출생부터 철저한 교육을 거쳐 성장한 아이들은 한국은 물론, 각국을 상대로 각가지 간첩 임무를 수행한다고 한다.

▲ 1948년 5월3일 김일성(왼쪽)과 단독회담하러 따라가는 김구.(자료사진)

◆해방정국에서 유명한 미인계는 미군 장교와 동거한 명문대 출신 간첩 김수임이다. 그녀의 연인은 남노당(남한 공산당) 간부이자 유부남 이강국이었다. 거물간첩 성시백과 비슷한 시기 6.25 직전에 검거되어 처형된 김수임은 ‘한국의 마타하리’라는 별칭과 “사랑이 간첩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남겨 놓았다.

이 보다 먼저 성시백의 공작에 빠진 백범 김구는 1948년 4월 19일 반대시위를 뿌리치고 38선을 넘어 평양에 도착한 뒤, 뜻 밖에도 ‘첫사랑의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도산 안창호의 여동생 안신호(安信浩, 1884~1963)이다. 김구가 28세때 갓스물 안신호와 사랑하고 결혼을 약속했지만 오빠 안창호의 반대로 헤어져야 했다. 도산은 왜 김구를 배척하였을까.

공산당의 공작은 치밀하다. 김구(72세)를 월북시키면서 북로당의 여성간부 안신호(64세)를 데려다가 대면시킨다.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을 자극하는 심리전, 비록 나이는 들었어도 남녀의 옛정은 되살아나는 법, 그날부터 안신호는 17일동안 김구가 묵는 상수리 호텔에서 수발을 들며 가는 곳마다 안내를 맡았다. 그 기간 김구 어머니의 제삿날도 챙겨주고, 대동강 뱃놀이도 하고, 김구의 청년시절 추억이 서린 곳을 돌아다녔다. 

★5월3일 김일성과 5시간 단독면담을 가진 김구의 발언 중 일부는 뒷날 김일성이 일본 좌익월간지 ‘세카이’(世界) 인터뷰에서 털어놓는다. 
김일성과 합의한 남북합작투쟁이 “이승만 매국도당의 방해로 실패할 경우, 나는 북한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으니 과수원이라도 마련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말이 그것이다. 
김일성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을 지라도 당시 장덕수 암살사건후 남한에서 궁지에 몰렸던 김구가 김일성과 손을 잡았지만 전망이 불투명한지라 “안신호와 함께 여생을” 마치고 싶은 마음은 노년의 진심일 가능성도 크지 않았을까. 

아무튼 5월5일 서울로 돌아온 김구는 닷새 뒤에 치러질 5.10 제헌국회 총선거를 반대 거부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36세 김일성의 입장에서 보면, 소련의 지령대로 움직여서 김구라는 거물 프락치, 또는 공개된 트로이의 목마를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그 후의 역사가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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