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한국당이 최종적인 위상을 결정한 것 같다. 한국당은 결국 도심 광장을 가득 메운 수백만 자유 국민과 시민사회단체와 개신교 신자들 대신 유승민 김세연 등으로 대표(?)되는 특정 성향 계파를 협력 파트너로 선택한 것 같다. 표 계산을 한 끝에 아마도 그렇게 하는 편이 더 낫다고 본 모양이다. 황교안 대표가 여러 선택지 끝에 그런 결정을 내렸거나, 아니면 그를 에워싼 참모들이 황 대표를 그런 방향으로 몰아갔을 수도 있다. 어차피 남의 정당 일이니 그들의 결정에 깊이 개입할 생각은 없다.

    이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은 이런 계산을 했을 법하다. 4. 15 총선은 중도를 자임하는 표심을 누가 끌어 오느냐가 결판을 내릴 것이라는 것, 그래서 자신들은 고전적 자유주의-보수주의 우파보다는, 중도 우파나 중도 좌파 쪽으로 클릭 하는 게 보다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이 그것이다. 이런 계산은 이명박 후보도 했었고 박근혜 후보도 했었다. 황교안 한국당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중도실용주의’를 주청(奏請)한 박형준이 통합추진위원회 장(長)인 것만 봐도 그 점은 확실해 보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주요 선수들이 여전히 자유한국당의 두 실세(친박-비박)로 남아있는 한에는 이런 자칭 중도 노선이, 특히 선거기간일수록, 거의 예외 없이 채택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게 책상공부 잘하는 신 우파(자신은 고전적 우파가 아니라 진보적 우파라고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처신이기도 하다. 유승민이 그런 입장을 전형적으로 천명해 왔다. 이론적 차원에서 이런 입장(안보는 보수로, 경제-노동-복제-젠더는 진보로) 자체는 선진 의회민주주의 나라들의 보수당에서 곧잘 있어왔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의 한반도-한국 정치에선 그런 게 핵심 이슈가 아니라는 데 있다.

    지금의 한반도-한국 상황에선 자유민주주주의가 지속가능한가, 아니면 전체주의 1당 독재가 엄습할 것인가가 가장 급박한 이슈로 부각되어 있다. 단순히 의회민주주의 하의 보수냐 진보냐 중도냐의 경쟁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존속하느냐 망해 없어지느냐의 사생결단이 진행되도 있다는 이야기다. 보수냐 진보냐 중도냐 하는 경제-사회-노동-젠더에 관한 정책적 선택의 문제보다도, 자유로운 삶 자체가가 벼랑 끝에 몰려 우리가 그 아래로 떨어지느냐 않느냐의 판가름이 오늘의 한국 상황인 셈이다. 이런 현실에선 보수 진보 중도 이전에 ‘자유 아니면 죽음’의 실존적 결단이 있을 뿐이다.

    김정은이냐 아니냐, 주사파 혁명이냐 아니냐, 낙동강 후퇴냐 인천상륙이냐, 3권 분립이냐 3권 통합이냐, 전체주의냐 자유체제냐, 베네주엘라 차베스 식 사회주의냐 아니냐... 하는 사실상의 내전 판에선 “좌익 쿠데타냐 대한민국의 반격이냐?”가 있을 뿐, 보수 진보 중도는 그 다음 문제다. 지금의 한국정치는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을 아직도 모르고 있나? 물이 끓고 있는 줄을 모르는 개구리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래서 자유한국당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이고 필자가 상관할 일은 아니나, 그런 ‘정상적 의회민주주의 하의 진취적 우파 노선’ 같은 편안한 생각을 하는 자유한국당의 ‘도련님과 아씨’ 같은 스타일에 대해선 어딘가 남 같은 소원함을 느낀다. 뜨겁고, 위기의식이 절절하고.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묘사한 대형(大兄)의 체제에 대한 결사항전 정신 같은 것을 그들에게선 별로 느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 15 총선까지는 자유한국당이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라려 한다. 지금은 시간이 너무 없어서 다른 대안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자유한국당도 이런 대책 없음을 알기에 “우파 너희들이 우리를 안 찍고 누굴 찍을래?” 하며 우파엔 시선도 안 주며 좌 쪽을 향해 추파를 던지는 것 같다.

    어찌 됐든 정치는 최선을 바라는 게 아니고 차악을 바라는 것이란 말도 있으니, 김형오 공관위가 영 마음에 들진 않지만 공천에서 전투적 청장년들을 많이 뽑아 올리길 바란다. 제발 박사학위 있는 사(士)자 돌림-우등생-모범생 말고, 풍찬노숙 해온 싸움꾼들을 50%라도 채워야 할 일이다.

    류근일 / 전 조선일보 주필 /20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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