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 녹취록 입수..."협상력 위해 전철협과 제휴" 내주 시위 본격화
  • ▲ 지난 2일 '청계천 상권수호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유락희)는 중구청과 서울시청 앞에서 이주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17일 전국철거민협의회에 가입한 비대위는 빠르면 다음주부터 본격적인 시위에 나설 예정이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 지난 2일 '청계천 상권수호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유락희)는 중구청과 서울시청 앞에서 이주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17일 전국철거민협의회에 가입한 비대위는 빠르면 다음주부터 본격적인 시위에 나설 예정이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청계천 일대 재개발 사업을 둘러싸고 서울시-중구청과 상인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청계천 상인들이 '철거민 운동 단체'를 표방하는 전국철거민협의회(전철협)와 연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계천 3구역 산업용재 점포 임차인 약 150세대로 구성된 '청계천 상권수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위원장 유락희)'는 17일, 전철협에 '지역대책위원회' 자격으로 가입했다. 비대위는 빠르면 다음주부터 서울시청 및 중구청 앞에서 본격적인 시위에 나설 계획이다.

    중구청은 현재 청계 2~4가를 포함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점포를 비우게 된 임차 상인들은 적극적인 생계 및 이주대책을 요구하면서 시와 중구청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상인들 대다수는 산업용재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비대위는 "산업 특성상 점포가 한 곳에 밀집해 있지 않으면 영업하기 어렵다"며 "개별로 이주하게 되면 장사를 접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중구청 관계자는 "토지보상법에서 정한 영업보상금과 세입자를 위한 대체 영업장 마련에 대해 상인들과 논의하고 있지만, 이들이 상당액의 보상금에 대체 부지를 요구하고 있어 해결이 어렵다"고 밝혔다.

    비대위 측은 상권에 대한 무형가치(권리금)를 주장하고 있는데, 비대위 측은 사실상 폐업 수준에 달하는 보상금을 요구하고 있어 중구청이 감정평가를 통해 제시한 영업보상금 산출액과는 편차가 매우 크다.

    "청계천 재개발 8개 권역 중 1곳을 대체부지로 달라"는 비대위 측 주장도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해당 구역을 대체부지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사업시행자가 구역 전부를 협의 매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해당 구역의 땅값만 해도 수천억인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며, "유효 부지가 있다면 임대해서 마련해주는 것도 고민하고 있지만 놀고 있는 땅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자 결국 청계천 상인들은 비대위를 구성하고 지난 2일 서울시청 앞에서 '청계천 개발 이주대책 촉구 입주상인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비대위는 이날 기자회견의 효과가 미진했다고 판단, 전국철거민연합회(전철연)·전국철거민협의회 등 철거 단체들에 도움을 청했다.

    취재 결과, 비대위는 기자회견 이튿날인 3일 전국철거민연합회의 설명회를 듣고 4일과 9일 양일에 걸쳐 전철협의 설명회를 들었다. 비대위는 집행부 만장일치로 전철협을 선택했다. 지난 17일 비대위 과반인 75세대 이상이 전철협에 가입했다. 비대위 관계자에 따르면 전철협 가입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9일 서울 동대문구 인근 전철협 사무소에서 진행된 설명회에는 비대위 집행부 및 상인 7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설명회에서 이호승 전철협 상임대표는 '합법적이고 효과적인 집회 및 시위법'을 주제로 100분 가까이 강연했다.

    본지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이날 설명회에서 이 상임대표는 "구청장과 시장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선 개인의 힘으론 안 된다. 비대위 차원의 효과적인 집회와 시위를 통해 협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똑같은 목표로 1년이 걸린다고 하면, 우리 단체를 거칠 경우 6개월로 단축된다", "법 안의 요구는 단계를 밟아나가야 하지만, 우리는 법 외의 요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고 책임자를 상대해야 한다" 등 열변을 토했다.

    이 상임대표는 전철연과 선을 분명히 긋기도 했다. 전철연은 지난 2009년 일어난 '용산 참사'와 관련이 있다. 이 상임대표는 "용산참사처럼 싸우면 양쪽이 다 죽는다. 철거민은 방탄복 입었느냐. 투쟁 과정에서 죽거나 다치거나 구속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비대위 측도 앞서 지난 3일 남경남 전철연 의장으로부터 설명회를 들었지만, 전철연의 '강경한 투쟁 방침'에 부담을 느낀 상인들이 이들과의 연대를 꺼렸다는 후문이다.  

    이 상임대표는 "강제철거하면 사상자가 생긴다. '용산참사보다 더 심한 참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합법적인 영역에서 주장해야 한다. 뭉치면 뭉칠수록 기간은 짧아진다. 우리는 (시위 기간을) 3개월로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집회와 시위를 "약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며 시위 방법을 일종의 공식처럼 소개하기도 했다. 상대방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집회와 시위를 하다보면 비대위 위상이 계속해서 올라가며, 그 끝은 '사업자·중구청 등과 비대위가 동격으로 협상에 임할 때'라는 것이다.

    "가입하는 순간 집회와 시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죽거나 다치거나 구속되거나 하지 않고 위력적인 활동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전철협은 죽지 않고 (상대를) 다루는 기술을 알려준다."   

    중구청도 비대위의 전철협 가입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중구청 관계자는 "구청 차원에서 비대위를 오랫동안 만나왔다. 현재같은 일을 우려했기 때문에 사업시행자와 상인간 중재를 위해 노력했지만 (비대위 측에서) 성과가 없다고 평가한 것 같다"며, "구청이 법에 없는 내용을 강제할 초월적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갈등의 주체가 중구청과 청계천 상인들인 것처럼 인식되는 현실에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민간사업에 따른 사업자, 토지주, 세입자간 이견 중재와 이주대책을 별도 수립하는 과정에서 관이 나선 것이며, 청계천 복원사업과는 관계가 없다. 구청에서는 전문가와 세입자, 사업시행자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를 꾸려 계속해서 중재 노력에 나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