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수' 이미지에 당내 견제 계파도 없지만… 국민에게 발행한 어음은 돌아올 것
  •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3일 저녁 서울 마포당사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시청하던 도중 김영환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3일 저녁 서울 마포당사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시청하던 도중 김영환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가 열연한 1972년작 〈후보자(The Candidate)〉를 보면, 시종일관 유력 후보에 맞서 '더 나은 길!(The Better Way!)'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캠페인을 벌였던 후보자가 막상 당선되자 핵심 참모에게 "이제 어떡하죠?"라며 안절부절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4·13 총선에서 37석 획득이 유력시돼(13일 저녁 11시 개표 상황 현재), 확고한 원내 3당으로 자리매김할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이제 어떡하죠?"라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을까.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공식선거운동 기간 중 4079㎞를 이동하며 총 140회의 지원유세 일정을 소화했다. 이 기간 중 안철수 대표는 국민들을 향해 "1번(새누리당)과 2번(더불어민주당)은 싸움만 하는 정당"이라며 "3번(국민의당)은 문제해결정당이 되겠다"고 밝혀왔다.

    안철수 대표는 지난 3일 순천 연향동에서 열린 구희승 후보 지원유세에서 "1번·2번은 꼭 싸우는데, 우리 3번 국민의당은 문제 해결 방법을 내놓겠다"며 "뒤늦게 1번과 2번도 정신을 차리고 문제 해결 방법을 내놓으면 그게 대한민국의 변화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여수 진남시장에서 열린 주승용 후보 지원유세와 이마트 여수점 앞에서 열린 이용주 후보 지원유세에서도 "3번 국민의 편인 국민의당이 국회에서 민생 문제 해결 방법을 내놓겠다"며 "싸우는 1번과 2번을 우리가 일하게 만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옛날 원내 3당처럼 "충청도가 핫바지냐"라고 외쳐서 지역 기반 정당을 만들면은 선거 때는 지역주의라는 온갖 공격을 받아 힘들지언정 차라리 선거가 끝나고나서는 일이 쉽다. 원래 출발부터가 '그냥 지역정당'이기 때문에 새삼 새롭게 보여줘야 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자유민주연합(자민련)과는 다르다. 국민의당 김희경 대변인도 13일 선거상황실에서 취재진과 만나 "자민련과 국민의당은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며 "우리는 제3당으로 수권을 하려는 정당"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렇다면 보여줘야 한다. 무엇이 '문제 해결 정당'인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말이다. 

    13일 저녁 11시 개표 상황 현재 새누리당은 131석, 더불어민주당은 114석, 국민의당은 37석 획득이 점쳐진다. 원내 3당 중 어느 2개 정당이 의석을 합치더라도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규정한 법안 통과 요건(180석)에 미치지 못한다.

    과거처럼 과반(151석)이 법안 통과 요건이라면 새누리당과 합쳐도, 더민주와 합쳐도 과반을 만들 수 있는 국민의당의 '캐스팅보트' 위력은 극대화됐을 것이다. 그러나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국민의당이 거대 양당 중 어느 한 당의 손을 들어줘도 법안 의결이 쉽지만은 않다.

    되레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합의를 보면 국민의당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법안을 의결할 수 있기 때문에 생각만큼 원내에서 국민의당의 존재감이 부각되지 못할 우려도 있다.

  •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3일 저녁 서울 마포당사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시청하던 도중 임내현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3일 저녁 서울 마포당사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시청하던 도중 임내현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어떻게 문제 해결 방법을 내놓을 것인가, 어떻게 1번과 2번을 일하게 만들 것인가, 나아가 어떻게 대한민국의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인가. 안철수 대표가 공식 선거운동기간 중에 국민들에게 발행했던 어음들이 만기가 돼서 돌아올 날이 머지 않았다.

    이번 총선을 통해 안철수 대표는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친노·친문패권 세력들의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탈당해 신당을 차렸다.

    예상만큼 후속 탈당이 잇따르지 않으면서 신당은 쉽사리 원내교섭단체가 되지 못했다. 이 때도 안철수 대표는 아낌없이 사재(私財)를 털면서 당의 물적 기틀을 잡아나갔다.

    김한길 의원과 천정배 대표가 '통합' '연대'를 운운하며 압박해오던 시기도 있었다. 안철수 대표는 '강철수 모드'로 전환해 강하게 버텼다. 시민사회를 자처하는 좌파 세력들의 단일화 겁박에도 결코 굴하지 않았다.

    그 결과 원내 37석의 제2야당을 보란듯이 구축해냈다. 전국단위 비례대표 득표율에서는 제1야당인 더민주를 되레 앞지르는 쾌거도 이뤘다.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 획득도 저지하면서 "총선 결과에 대해 야권의 지도자들 모두가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는 김한길 위원장의 말은 의미를 잃었다.

    '통합·연대'를 강하게 압박했던 김한길 위원장의 판단이 그릇된 것으로 드러났고, 천정배 대표는 '호남 현역 물갈이'를 소리높여 외치다가 광주 지역 국민의당 현역 의원들이 무난히 공천받고 모두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면서 세력을 잃게 됐다. 이제 당내 역학 구도상 안철수 대표의 공고한 지위를 위협하거나 견제할 사람도 없다.

    위기는 이러한 시점으로부터 시작된다. 대선까지 1년 8개월여가 남은 상황에서, 국민들은 총선 선거운동 기간 중 그가 공언했던 '새로운 정치'의 실험들이 어떠한 형태로 구체화되는지 지켜볼 것이다.

    아마 총선 직후 실시되는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대표의 차기 대권 지지율은 일시적으로 크게 치솟을 것이다. 제3원내교섭단체 구성에 따른 기대감이 반영될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인내는 길지 않다. "뭐야, 똑같잖아"라는 말이 터져나오는 순간, 지지율은 거품처럼 꺼져버릴 수 있다.

    '더 나은 길'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기는 쉽다. 그러나 막상 당선됐을 때 '더 나은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기는 어렵다. 기실 자기자신조차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선거운동을 하기도 한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당선된 직후 "이제 어떡하죠?"라고 토로한 것은 그 때문이리라.

    안철수 대표는 어떻게 '문제 해결 정당'이 무엇인지 보여줄 것인가.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인 '문제 해결 정당'이 어떻게 구체화되느냐에 따라 그의 대권 가도에는 날개가 달릴 수도, 아니면 급격히 추동력을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