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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누리당 대구시당이 지난달 28일 대구 동구 무소속 유승민 후보 선거사무소에 보낸 대통령 존영 반납 협조공문. 대구시당은 이날 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자들에게 대통령 존영 반납 공문을 전달했다. ⓒ뉴시스
카메오(Cameo)인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연이 된 이상한 선거다.
막판까지 이야깃거리가 많았지만, 빛 좋은 개살구에 그쳤다.
역대 최악의 국회, 다음은 역대 최악의 선거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 승자가 없는 제3의 결말이다.
이번 20대 총선에선 인물이 보이지 않았다. 정책도 보이질 않았다. 계파 간 이전투구(泥田鬪狗)에 휩쓸렸다.
가까스로 승리한 새누리당은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성적표를 가져갔다. 당직자들은 뒤로 씁쓸한 한줄기 눈물을 흘렸다.
더불어민주당은 표정이 확연히 엇갈렸다. 수도권 승리 속에서 호남 참패(慘敗)를 기록한 부분은 뼈아프다. 이는 곧 지지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재인 전 대표는 당장 정계은퇴라는 위기에 봉착했다.
곳곳에서 비판이 쇄도한다. 누구를 비난할 처지가 아니다. 거대 양당이 만든 합작품이다. 결과가 전부가 아니다. 두 공룡 간의 혈투 속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석고대죄(席藁待罪)도 부족할 판이다.
새누리당의 오만(傲慢)은 하늘을 찔렀다.
오히려 일부러 선거에서 지겠다는 속내인지, 제 발등을 찍는 안하무인(眼下無人)식 행태를 보였다.
'무성이 나르샤'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3류 코미디를 연상케하는 활극(活劇)으로 요약된다. 차기 대권을 염두한 탓일까. 당내 균열을 아랑곳 않고 옥새파동을 일으킨 김무성 대표의 태도를 보며 많은 이들이 쯧쯧 혀를 찼다.
또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과 일부 친박(親朴) 핵심 인사들이 마구잡이로 공천권을 휘두르는 모습에 국민들은 새누리당에 등을 돌렸다. 제대로 된 공약하나 없이 '진박(眞朴) 마케팅'에만 열중하는 일부 후보를 향해선 역(逆)심판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배신의 정치'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들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갈등에 불을 지핀 배신자를 향한 분노가 그리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 하다.
'우리만의 대통령'이라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됐다는 존영(尊影) 논란도 전국적으로 표심에 찬물을 끼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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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선결과 브리핑하는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결과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함성과 불만이 엇갈렸다. 친박(親朴)과 비박(非朴) 간의 갈등 양상이 새누리당의 발목을 잡았다.
'선거개입 불가(不可)' 원칙을 끝까지 견지하며 조용히 선거를 지켜보던 청와대는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새누리당 내에선 책임론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야권 분열 호재에서도 당초 목표치에 크게 미달했다는 책임론이다.
김무성 대표, 이한구 공관위원장, 서청원 최고위원,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모두에게 화살이 꽂힐 분위기다.
180석은커녕 4년 전인 19대 국회 당시 획득한 154석에도 미치지 못한다. 몇석을 잃더라도 주도권잡기가 우선이다? 정확한 판세를 읽지 못한 친박계의 정무적 판단은 바닥을 쳤다.
친박계와 각을 세우며 제 밥그릇 챙기기에 몰두한 비박(非朴) 인사들 역시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총선 결과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정 장악력을 떨어트릴 요인이 난무한다.
먼저 하반기 국정운영은 큰 동력을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의 숙원이었던 노동개혁 법안과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을 더이상 밀어붙일 수 없게 됐다. 주요 국정과제 추진에 급제동이 걸리게 됐다.
박근혜 정부는 정치적으로 사실상 제 기능을 하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된다.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 후반기를 보다 야권과의 협력 속에서 운영할 수밖에 없게 됐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4대 구조개혁과 상당수 정책 기조들에 대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새누리당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더불어민주당이 소득 위주 성장을 중시하고 있어 경제정책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총선 패배를 둘러싼 책임론이 가열될 경우 박 대통령의 국정을 뒷받침해줄 여당의 지원사격도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새누리당 대권주자들의 난립이 박근혜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권력누수)을 부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득세 속에서 '청년일자리 창출이 가로막힐까' 하는 고심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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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인 더블어민주당 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0대 국회의원선거 종합 상황실에서 당 관계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의 대통령 비판공세가 일정 부분 먹혀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례대표 2번 자리를 끝까지 고집해 노욕(老慾) 비판을 자초한 김종인 대표지만 비판행보만큼은 돋보였다.
김종인 대표는 수시로 박근혜 정부의 경제성과를 깎아내렸고, 입을 열 때마다 경제실패를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새누리당의 헛발질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금괴 8.2kg,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명품시계, 8년 만에 22억원이나 불어난 재산. 대기업과 재벌을 향해 호된 질책을 쏟아내던 김종인 대표의 '두 얼굴'보다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그의 비판 발언에 수도권 야권 지지자들은 귀를 기울였다.
결과적으로는 이렇다.
'박근혜'를 바라보는 친박.
'박근혜'와 각을 세우는 비박.
'박근혜'를 비난하는 세력이 치른 선거전이다.
청와대는 아무 말이 없다. 반응을 내놓기가 부담스럽다는 표정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처음부터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았는데, 왜 총선 결과에 대해 논평을 내놓아야 하냐고 반문한다.
다만 청와대는 국민들을 향한 입법과 정책이 여소야대(與小野大)에 가로막혀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하는 기류가 강하다."일하는 국회를 만들어달라"던 박근혜 대통령.
민생(民生)보다 자신의 금배지를 우선시하던 19대 국회가, 진정 국민의 고통을 살피고 일하는 국회로 거듭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