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쓰나미' 대약진, 캐스팅보트 쥔 안철수는 대권가도 탄력
  •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이 지난 8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고 참배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호남에서 지지를 얻지 못하면 정계를 은퇴하고 대선에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이 지난 8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고 참배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호남에서 지지를 얻지 못하면 정계를 은퇴하고 대선에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민심은 냉혹했다.

    '1번도 싫다, 2번도 싫다' 차라리 3번이나 찍어보자는 거부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는데도 여전히 구태(舊態)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대 양당. 유권자들의 엄준한 심판이다.

    4.13 총선의 최종 승자는 바로 안철수 대표였다.

    호남의 맹주(盟主)가 바뀌었다. 국민의당은 전북 7석, 전남 8석, 광주 8석을 가져갔다. 수도권과 비례대표를 포함하면 총 38석이다. 명실상부 3당 체제 속에서 정국의 흐름을 가를 캐스팅보트(Casting vote)를 쥐게 됐다.
     
    반면, 사상 최악의 공천파동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새누리당은 초상집 분위기다.

    누가 봐도 명확한 패배다. 16년만에 돌아온 여소야대(與小野大)다. 비례대표를 포함해 얻은 의석은 122석에 불과하다. 4년 전 19대 총선에 비해 30석이나 줄어들었다. 180석은 헛된 꿈에 불과했다. 이젠 제1당도 아니다. 

    과반은커녕 당장 책임공방 후폭풍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국민을 우습게 본 결과다.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대표의 사퇴 마지노선을 웃도는 123석을 확보했다. 새누리당을 앞선다. 

    겉으로만 보면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성적표다. 하지만 호남 후보들이 무더기로 패배했다. 호남지역을 국민의당에게 내줬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곳곳에서 장탄식이 쏟아져나왔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수도권을 얻은 대신, 텃밭이자 야권의 심장부인 호남을 잃게 됐다. 더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 야권의 상징을 놓친 문재인 전 대표의 정계은퇴 여부는 이번 총선의 최대 이슈다.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의석수를 합해도 과반 수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석수를 합해도 비슷한 실정이다.

    안철수 대표가 잡은 캐스팅보트의 파괴력은 어마어마할 것으로 전망된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의 국회 원내 전략 수립이 좀처럼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정의당은 6석, 무소속이 11석을 가져갔다.

     

  • ▲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대패했다. 옥쇄파동을 일으킨 김무성 대표에 대한 책임론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대패했다. 옥쇄파동을 일으킨 김무성 대표에 대한 책임론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집안 싸움 끝에 무너진 새누리당

    충격적이다. 여권 성향 무소속 후보들을 합해도 129석에 불과하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됐다. 곡소리가 울려퍼진다. 우울하다 못해 참담할 지경이다. 

    패인(敗因)은 역시 균열이다. 친박계가 주도한 무리한 공천 물갈이, 그 속에서 터져나온 파열음은 귀를 찢는 굉음이었다. 국민들이 바라는 화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적군에게 안방을 내준 대구는 물론, 수도권 박빙 지역에서 야권 후보에게 대패했다. 그동안 여당이 싹쓸이해오던 영남권도 꿈틀거리고 있다.

    윤상현 의원의 막말, 김무성 대표의 태업, 유승민 의원의 해당행위. 일련의 공천과정은 보수 유권자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투표율이 이에 대한 방증이다.

    20대, 30대의 경우 19대 총선보다 각각 5%p, 8%p 높아졌다. 반면 50대, 60대 투표율은 19대와 비교해 큰 변화가 없다. 전체 투표율로 놓고 봤을 때 상대적으로 50대와 60대의 투표율이 낮아진 것이다. 야권을 지지하는 젊은이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인 반면 보수 성향이 강한 중장년층은 꼼짝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책임론을 벗어날 수 없다.

    옥새파동을 기획 연출한 김무성 대표는 거센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총선 직후 대표직을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후폭풍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부산에서도 야당에 5석이나 뺐겼다. 입이 열개라도 더이상 할말이 없어야 할 김무성 대표다. 야당에 패배한만큼 불명예 퇴진이 불가피해졌다. 차기 대권 입지도 쪼그라들 것으로 관측된다. 당장 짐을 싸야할 처지다. 

    친박(親朴)도 마찬가지다. 면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천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는 이한구 공관위원장, 서청원 최고위원, 최경환 전 부총리 등 친박 핵심인사를 향한 비난이 쇄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정 동력이 급속히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당의 과반의석 확보 실패에 따라 박근혜 정부 후반기 국정과제 추진에 급제동이 걸리게 됐다. 레임덕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의도 정치권과의 관계 재설정을 넘어 집권여당 내 세력 재편이 급속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 있는 유승민 의원을 내세워 비박 진영이 조기전당대회에 불을 붙일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무소속 의원들의 복당 여부를 둘러싼 계파 간 2차 권력투쟁이 예고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장 역할을 할 원유철 원내대표가 계파 갈등을 어떻게 봉합할지에 정치권의 이목이 쏠린다.

    '국회선진화법'은 이제 새누리당 편이 됐다. 새누리당이 이 법안을 폐기하겠다던 입장을 뒤집어 '야+야, 합종연횡'에 맞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러모로 상처만 가득한 새누리당이다.

     

  •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 마련된 20대 총선 개표상황실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 마련된 20대 총선 개표상황실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심장부 잃은 더민주, '웃는 게 웃는 게 아냐'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의 과반을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호남지역에서 국민의당에 대패했다. 절반의 성공이다.

    김종인 대표와 빚었던 갈등은 이제 둘째 문제가 됐다.

    문재인 전 대표는 일선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승부수가 고스란히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미련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

    지난 8일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배수진을 쳤던 문재인 전 대표의 정계은퇴가 가시화됐다. 그가 자신의 약속을 지킨다면, 대권도전 또한 포기해야 한다. 호남의 민심을 확인한 이상, '기호 2번'을 달고 대선에 나서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고 사죄의 큰절까지 올렸지만, 호남 민심은 이미 떠난 뒤였다. 오히려 문재인 전 대표의 방문이 역풍(逆風)으로 작용한 꼴이 됐다.

    이상돈 국민의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선거 결과를 접한 직후 "호남 민심은 이미 문재인 전 대표, 이른바 친노 집단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부분이 오래됐다.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표와는 달리, '바지사장'이라 불리던 김종인 대표의 위상은 올라갈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원내 복귀가 확정된 이해찬-김두관-송영길, 친노(親盧) 트리오와의 2차전이 불가피하다.

    총선 직후 야권 내 권력을 재편하려던 김종인 대표의 구상에 차질이 생긴 셈이다.

    친문(親文)을 쳐냈더니 운동권이 돌아온다. 누구 하나 만만한 선수들이 아니다. 양측의 충돌 과정에서 김종인 대표가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패권다툼은 리더십과는 또 다른 문제다. 전체주의 추종 세력과 맞닿은 운동권과 선을 그었던 김종인 대표의 역할이 어디까지일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김종인 대표의 지휘 하에 치러지는 전당대회 결과가 그의 입지를 대변하게 될 전망이다. 스스로 선수가 되어 당 대표에 도전할 수도, 혹은 자신의 분신을 내세워 당권을 쥐려는 속내가 엿보인다.

    상대인 운동권 세력과의 불안한 동거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김종인 대표가 당권을 쥐려 할 때, 구심력이 강한 운동권이 강력한 견제구를 날려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할 가능성이 높다. 김종인 대표가 친노 세력에게 무릎을 꿇고, 킹메이커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그간 스스로 던져온 발언들과 맥이 통하질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신들이 쳐낸 국민의당 눈치보기에 급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캐스팅보트를 쥔 안철수 대표를 더이상 무시할 상황이 아니다. 여당은 견제해야 하고, 호남은 탈환해야 한다. '안철수 딜레마'로 요약된다. 계파 문제를 넘어 더불어민주당의 가장 큰 숙제는 안철수 대표와의 관계다.

     

  •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개표 방송을 지켜보며 웃음을 짓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개표 방송을 지켜보며 웃음을 짓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국민의당' 안철수 → 강철수 → 금철수

    녹색쓰나미다.

    일방적인 공룡정치에 싫증을 낸 이탈 표심을 국민의당이 정확히 빨아들였다.

    광주 지역구 중에서 유일하게 더불어민주당 우세가 점쳐졌던 광산을마저도 빼앗아 왔다.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 속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린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몸값이 껑충 뛰어오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야권의 심장부인 호남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것은 역사적인 쾌거에 가깝다.

    이제 양당 구도가 아니다. 3당 체제를 정립했다. 국민의당은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수권정당으로서의 입지와 위상을 제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됐다.

    안철수 대표 스스로에게도 존재감을 부각시킬 기회다.

    본격적인 대선정국을 앞두고 펼쳐질 야권 권력 재편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상대로 밀리지 않을 단단한 입지를 확보했다. 치열한 주도권 싸움에서 호남 민심을 얻은 안철수 대표는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 

    그간 야권 대권후보가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해 왔음을 고려하면, 안철수 대표의 대권행보가 보다 가속화될 공산이 크다.

    교섭단체 확보가 기정사실화되면서 국민의당은 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사이에 서게 됐다. 각종 쟁점의 향배는 국민의당 손에 달려 있다.

    국민의당이 때로는 새누리당과, 때로는 더불어민주당과 손을 잡고 쟁점을 뒤흔들며 외연을 확대할 원내 전략을 세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20년 만에 3당 체제가 구축됐다. 새로운 정치지형 설정, 역학구도 재편이 유력하다. 그동안 양당체제가 갖는 정치적 비효율성이 일정부분 해소될 전망이다. 새로운 입법세력 구도가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이래저래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앞으로 안철수 대표의 눈치를 봐야 한다.

    다만 한솥밥을 먹었던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 내년 대선이 다가올수록 다시 통합론을 외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야권은 대권을 놓고 또 한 번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