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가 중단시킨 ‘물포 작전’, 전방 지역 北주민들 생필품 공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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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북심리전 재개, '혹독한 대가' 맞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북한군 전선사령부는 15일 '공개경고장'을 통해 최근 우리 군이 재개한 대북 확성기방송에 대해 "중단하지 않으면 무차별 타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했다.

    한편 우리 군은 북한의 지뢰도발사건을 '정전협정 위반행위‘로 다시 한 번 규정하고, 이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경고했다.

    우리 군이 말한 ‘혹독한 대가’엔 어떤 것들이 포함되게 될까. 일단은 지난 10일부터 재개된 대북확성기방송이 첫 시작인 듯하다.

    확성기 방송

    2001년 입국한 전직 북한군 대위 류철영 씨는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해 “집요하게 마음을 파고드는 방송”이라고 표현했다.

    북괴 2군단 6사단 민경대대에서 근무한바 있는 류 씨는 “저녁 어스름이 깃들 무렵부터 잠복근무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는 새벽시간까지 지속되던 방송은 그것 없이는 잠복의 긴긴 밤을 보낼 수 없을 만큼 초병(전투근무병)들에게 친밀했던 방송”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지휘관들은 적들의 심리전방송에 절대로 귀 기울이지 말라고 요구하지만 귀를 잘라내지 않는 한 방송을 아니 들을 수 없고 특히 북한의 정치가요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남한의 생활가요는 사랑과 고향에 대해…나도 인간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던 삶의 길라잡이 었다”고 회고했다.

    지금도 ‘북한군 지역에서 벌어지는 부대 이동과 간부 인사’ 등에 대해 너무나 소상히 알려주던 방송내용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 류 씨는 “당시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의 정치학습 효과를 이겨내지 못했지만, 제대 후 탈북을 결심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자유를 강조하던 남조선 방송’이었다”고 밝혔다.

    대북전단

    북한군의 3분의 1정도가 집결되어 있는 북측 철책선 지역(전방에 배치된 인민군 1, 2, 3, 5군단)에서 군 복무를 한 경험이 있는 탈북자들은 거의 모두가 ‘적들의 삐라’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다. 저들은 한결같이 ‘특수한 재질과 컬러틱한 컨셉의 삐라’를 말하고 있으며 삐라가 강조했다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풍요로움’을 기억한다.

    김일성 부자를 풍자한 그림을 보면서는 오히려 ‘(위대한 수령을 욕보이는) 적에 대한 적개심’을, ‘승용차가 늘어선 남조선 거리’를 보면서는 대한민국에 대한 동경심을 키웠다는 등으로 주장이 엇갈리지만, 삐라 한 장으로 ‘남조선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공통 분모는 삐라를 접했던 모든 이들에게 작용하고 있었다.

    전광판과 애기봉 등탑

    과거 북한의 황해남도와 강원도, 개성 지역을 상대로 실시되었던 10여개소의 남측 전광판과 김포의 애기봉 등탑은 다양한 외부소식과 ‘남조선의 풍요로움’을 전해주던 신기루 같은 존재였다고 증언하는 탈북자들이 있다.

    이들은 “멀리 남조선 (산등성이)에서 밤이면 밤마다 어둠을 밝히며 번쩍거리던 전광판은 전기가 부족한 북쪽 주민들에게 ‘남조선에선 전기걱정을 모르고 산다’는 것을 일깨워주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밤새도록, 날이 밝을 때까지 멀리서 비춰지던 그 불빛은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라도 다가갈 수 있는 희망의 등대였고 안식처 같았다”는 증언도 나온다.

    또 당시로서는 잘 믿겨지지가 않았지만 ‘자가용 승용차 1,000만 대 돌파’, ‘자유는 눈앞에 있다’, ‘김정일의 고향은 하바롭스크’와 같은 문구들은 한번 보면 절대로 잊혀 지지 않았고, ‘그게 사실일까’라는 질문을 두고두고 갖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고 말한다. 절대의 가치로 여겨온 교과서와 노동신문에 의문을 품게 했던 전광판이란 얘기다.

    물포 작전

    대형 기구에 생필품과 먹거리 등을 매달아 북쪽으로 보내는 것에 붙여진 이름은 ‘물포 작전’이다. 북한에서는 이 대형기구들로부터 ‘공수’되는 물건을 ‘심리전 차원에서 적들이 투하하는 물건’이라며 ‘적지물자’라는 이름을 달아놓았다.

    70년대와 80년대엔 “적들이 보낸 손목시계를 차면 손목이 썩어나가고, 사탕이나 과자를 먹으면 내장이 썩는다”는 말로 군인들과 주민들을 ‘적지물자’로부터 차단시켰던 북한이다. 실지로 그 이상의 피해를 보았다는 사람들을 내세워 순회강연을 진행한 바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무식하고 철면피한 방법이 통할 리 없던 80년대와 90년대였다. 당시 필자는 정말 ‘죽을 각오’를 하고 하늘에서 떨어진 불티나 표 라이터로 역시 하늘에서 공수된 아리랑 담배에 불을 붙인바 있다. “이 힘든 사병생활…죽으면 죽자”는 생각도 없지 않았는데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멀쩡히 살아있었다.

    음식물은 그렇게, 주민들과 군인들의 목숨 건 시험을 통해 북조선 인민들에게 다가갔다. 트레이닝 복과 팬티스타킹, 모나미 볼펜 등 갖가지 생활 용품도 산에만 오르면 주어올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궁핍한 삶을 사는 북한주민들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찰나, 노무현 정부의 국군은 매정하게도 ‘물포 작전’을 중단해 버렸다.

    승산 있는 싸움, 대가는 ‘혹독할 것’

    열을 주고 하나를 받을 때가 있고 하나를 주고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둘 때가 있다.

    과거의 대북전단과 방송, 물자투입과 전광판은 투자한 것에 비해 응분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만큼 외부세계, 특히 남조선 소식을 차단하려는 북한 당국의 의지가 강했고 굶주림에 지친 주민들의 의식도 화석처럼 굳어가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제 북조선 인민들, 특히 신세대 인민군 군인들에게 남조선은 그리 먼 나라가 아니다. 남조선 비디오에 익숙하고 남조선 노래 한두 개쯤은 암기하고 다니는 북한의 젊은이들에게 대북확성기 방송을 통해 다시 듣게 될 노래는, 노래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전단도 마찬가지다. 국방부가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전력증강에 쏟아 붓는 자금의 적은 부문만 대북전단 살포에 투자한다면, 그리하여 북한주민들과 군인들이 ‘당신들이 굶어죽고 있을 때 김정은은 해외 유학을 다녀온 유학파’라는 것과 그의 엄마 고영희가 재일교포 출신이란 것만 알게 된다고 해도 저들은 큰 충격에 빠지게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늘에서 다시 사탕과 볼펜과 떨어진다면 손모가지를 잘라낸다고 해도 산으로 달려갈 인민군 군인들이다. 누가 뭐래도 작금의 북한군 군인들은 ‘반항과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한 북한의 신세대이며 처형까지를 각오하고 한류에 근접했던 사람들 아닌가.

    이들의 손과 귀를 잘라내고 눈알을 뽑아내지 않는 한 대한민국이 북한에 비해 훨씬 우월하다는 걸 저들이 아는 건 시간문제다. 독재의 시스템에 갇혀 김 씨 왕조를 대를 이어 받들어야 하는 저들의 비참한 삶을 깨닫게 되는 것 역시 시간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대북심리전 재개는 우리 국방부가 말한 ‘혹독한 대가’가 맞다.

    이번 지뢰도발 사건으로 우리 군이 치명타를 입은 것도 사실이지만 ‘비열한 수법’으로 도발을 걸어온 북한이 ‘비참한 운명’을 고할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자유북한방송 - 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