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남기고 사의 … "두 국가론, 위헌적 주장""김여정 조건 수용해도 남북 대화 안 열린다""김정은 일가, 정권 유지 위해 관계 단절 택해""교류 늘수록 北 주민 현실 인식 … 정권에 위협""정보 개방 확대해야 … 승리는 자유민주주의 편"
  • ▲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이 2024년 8월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캠프 데이비드 1년과 8.15 통일 독트린' 국제학술회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이 2024년 8월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캠프 데이비드 1년과 8.15 통일 독트린' 국제학술회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이 임기를 약 8개월 남기고 지난 4일 사의를 표명했다. 통일부 차관과 통일정책실장, 교류협력국장 등을 지낸 김 원장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유일한 전략실무 배석자로서 남북공동선언 합의문을 작성한 '남북 대화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공직 입문 후 40년 가까이 남북 관계의 최전선에서 통일 정책을 다뤄온 그는 "통일을 지운 정부와는 함께할 수 없다"며 사퇴의 배경을 밝혔다.

    김 원장은 6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두 국가론'은 헌법이 명시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원칙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위헌적 발상이라고 전제한 뒤 "평화적이든 적대적이든 두 국가론은 결국 영구분단을 의미하며, 이는 우리 민족이 강대국이 될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또 "지금 일부가 말하는 '통일은 비현실적이니, 두 국가로 공존하자'는 주장은 일제시대 '친일 반민족 행위'와 비슷하다고 본다"며 "그때도 '독립은 현실적이지 않으니 일본과 협력해 잘 사는 것이 낫다'고 말한 지식인들이 있었다. 논리 구조가 똑같다. 당시 그것이 반민족 행위였던 것처럼 지금도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김정은은 대한민국이 철저한 적대국이므로 언제든 핵무기로 공격해 궤멸시킬 합법성을 갖는다고 주장하고, 전쟁 시 남한을 점령해 북한 영토로 편입하겠다고 위협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김 원장은 김여정이 제시한 통일부 폐지, 헌법 개정,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연합훈련 중단, 비핵화 요구 철회 등 '5대 조건'에 대해 "다 수용해도 북한이 대화에 응할 가능성은 낮다"며 "다만 그 요구를 받아들이면 우리나라는 매우 위험해지고 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남북·미북 관계에서 미국이 대화를 주도하는 '피스메이커'(peacemaker) 역할을 맡는다면, 한국은 속도와 균형을 조율하는 '페이스메이커'(pacemaker)로서 조정자 역할을 하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구상도 북한 입장에서는 '주제넘은 소리'로 들릴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북한의 태도와 내부 상황을 보면 대화 재개를 기대하기는 당분간 어렵다"며 "북한은 자기들의 체제 유지를 위해 남북 관계를 단절시켜 놨는데, 우리가 자꾸 대화하자고 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제안들을 여론 조작이라고 비난하지 않는가. 남북 관계가 다시 열리기는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즉, 남북 간 교류와 소통이 확대되면 북한 주민들이 외부 현실에 눈을 뜨게 되고, 그 순간 김정은 정권은 체제의 근본적 위협을 느낀다는 것이다.

    끝으로 그는 현실적 통일 경로에 대해 "'민족공동체통일방안'(화해·협력 단계→남북연합 단계→통일국가 완성 단계)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남북 주민의 언어와 문화가 달라지지 않도록 상호 방송과 정보 개방을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 발언에는 남북 간 교류와 소통이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게 경쟁력의 추는 결국 우리 쪽으로 기울게 될 것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확신이 담겨 있다.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임명장 수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임명장 수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다음은 김천식 통일연구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통일 정책에 관한 소신이 정부 정책과 너무 달라 국책기관장 직을 더는 유지할 수 없다며 사의를 표명하셨다. 외부 압박이나 강압은 없었는가.

    "직접적인 강압은 없었다.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고, 혼자 결심했다. 통일 문제에 대한  입장이 현 정부와 다르다. 그런 상황에서 통일연구원장으로 일하기가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있는 것도 불편하고, 그렇다고 국책연구기관장이 정부와 계속 맞서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북한 김정은과 마찬가지로 '두 국가론'을 주장하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달리, 늘 '통일의 3원칙'(통일의 당위성·자유민주주의 통일·평화적 통일)을 강조해 왔다. 현재 가장 약화된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솔직히 말해, 셋 다 약화됐다. '통일은 해야 한다'는 의식도 약해졌고, '자유민주주의로 해야 한다'는 점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그 부분이 특히 심각하다. 제가 원장으로 있으면서 가장 많은 공격을 받은 지점도 바로 그것이다. 일부 진영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에 대해 이념 편향이란 비판이 있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비판받는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9월 '국제한반도포럼'에서 "남북이 지금처럼 적대하며 살 수는 없다. 대안은 (북한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평화적 두 국가론'으로 전환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미 2023년 말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통일을 포기하겠다고 공언했다. 김정은은 대한민국이 철저한 적대국이므로 언제든 핵무기로 공격해 궤멸시킬 합법성을 갖는다고 주장하고, 나아가 전쟁 시 남한을 점령해 북한의 영토로 편입하겠다고 위협했다.

    반면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명시하고 있다. 두 국가론은 이 조항의 근본을 훼손하는 위헌적 발상이다. 평화적이든 적대적이든 두 국가론은 결국 '영구 분단'을 의미한다. 남북을 별개의 국가로 인정하자는 논리이며, 이는 우리 민족이 강대국이 될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자는 말과 같다. 또한 북한 주민을 외국인, 이민족으로 취급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저는 두 국가론을 반역사적·반민족적 논리라고 본다."

    -두 국가론을 수용하고 만약 북한에서 급변 사태가 발생하면 중국이 개입해 북한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있다.

    "그게 더 심각한 문제다. 북한이 외국이 되면 북한 영토에 대한 연고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통일이란 말에는 북한 지역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는 의미가 있다. 우리가 포기하면 그 연고권을 주변국이 가져가게 될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봐라. 북한 지역에 대한 역사적·문화적 연고권을 내포하고 있다. 북한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는가. 두 국가론은 궁극적으로 북한 지역을 다른 국가에 바치는 반역이다. 북한 지역은 대한민국이 역사적·법적으로 연고권을 가진 영토다. 우리가 통일을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 논리가 아니라 국가 존속과 영토 보전의 핵심 문제다."

    -정동영 장관은 통일부의 명칭을 '통일'을 뺀 '한반도부'로 바꾸려고 했다.

    "통일부는 명칭이 95%다. '통일'이라는 말을 빼버리면 결국 통일부는 폐지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강하게 비판했던 것이다. 통일부는 단순한 행정기관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통일 의지와 통일의 권리를 국가기구로서 표상하고 있다. 그 이름에서 '통일'을 지우면 우리 스스로 통일을 포기한 것으로 비친다. 최근 북한은 통일부 폐지, 헌법 개정,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연합훈련 중단, 비핵화 요구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그에 호응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국가 정체성을 훼손하게 될 것이다." 

    -일부에서는 통일을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저는 지금 일부가 말하는 '통일은 비현실적이니, 두 국가로 공존하자'는 주장을 일제시대 '친일 반민족 행위'와 비슷하다고 본다. 그때도 '독립은 현실적이지 않으니, 일본과 협력하며 잘사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한 지식인들이 있었다. 논리 구조가 똑같다. 당시 그것이 '반민족 행위'였던 것처럼, 지금도 똑같이 위험한 발상이다."
  • ▲ 북한 김정은이 지난 11월 1일 일명 '폭풍군단'으로 알려진 인민군 제11군단 지휘부를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 북한 김정은이 지난 11월 1일 일명 '폭풍군단'으로 알려진 인민군 제11군단 지휘부를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일부 친여권 인사들과 일부 언론은 남북 관계가 단절된 근본 원인을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에서 찾고 있다.

    "그것은 맞지 않는다. 사실에 맞지 않은 선전선동이다. 이미 북한에 대해 매우 유화적이었던 문재인 정부 시절 3년 6개월 동안 남북 관계가 완전히 단절됐고, 그 이후 윤석열 정부 3년 동안도 단절이 이어졌는데 어느 기간이 더 긴가. 그런데 언론에서는 '윤석열 정부 때문에 남북 관계가 단절됐다'고 보도한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남북 관계가 단절된 것은 어느 정권의 탓이 아니다. 근본 원인은 북한 내부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 북한은 남북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개방되는 것을 체제 위협으로 인식한다. 남북 교류가 북한 정권 유지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 정부의 대화 제의에 북한이 응하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인가.

    "그렇다. 정동영 장관이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사망에 조의를 표하고 평화 공존을 말해도 북한이 반응할 리가 없다. 그들은 이미 남북 관계의 단절을 체제 안전에 유리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우리가 계속 '협력하자, 만나자'고 하면 오히려 불쾌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김정은이 한국과 일절 상대하지 않을 것이며 그 무엇도 함께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빈말이 아닐 것으로 본다."

    -남북이 두 국가로 '평화 공존'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두 국가론은 영구 분단을 '평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주장이다. 결국 '현상 유지'다. 하지만 현상 유지가 과연 가능한가. 북한이 핵무기를 앞세워 우리를 위협하는데, 그것을 두고 '평화 공존'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평화는 구호로 유지되지 않는다. 현실에서 '세력 균형'이 유지될 때만 평화가 존재한다. 이것이 국제정치학의 일반이론이자 경험이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세력 균형이 깨지면 곧바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이나 자연 지리적 특성으로 볼 때 남북 분단은 절대로 항구적인 평화를 보장하지 못한다."

    -현재 한반도를 중심으로 세력 균형이 유지되고 있다고 보는가.

    "세력 균형은 남북한의 힘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배후 세력인 주변 4강(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까지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단순한 남북한 간 전쟁이 아닌 세계대전이 된다. 그러므로 구조적으로 전쟁이 쉽게 일어나기 어렵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해도 그 자체로 세력 균형을 깨뜨릴 정도의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 핵은 위협이지만 국제질서의 구조를 뒤흔들 힘은 되지 못한다. 북한 핵 개발로 얻은 것은 별로 없이 엄청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일부에서는 한국이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을 확보한 뒤, 향후 미 전술핵을 한반도에 재배치하고 나아가 원잠에 탑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향후 한미 확장억제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가 핵을 개발하거나 보유해야 하는 주장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조건이 안 맞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가 작동하고 있고,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존재하는 한, 한반도의 기본적인 안전 보장은 유지된다.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만큼 위험한 발상이다. 또 지금 단계에서 굳이 '핵을 개발하겠다'는 식으로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것은 전략적으로도 불필요한 자극이다. 핵 무장론은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카드'이지, 외교적 수단으로 흘려 말할 사안이 아니다."
  • ▲ 지난 2018년 2월 11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서울 중구 국립중앙극장에서 북한 김여정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뉴시스
    ▲ 지난 2018년 2월 11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서울 중구 국립중앙극장에서 북한 김여정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뉴시스
    -특히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 북한 김여정은 통일부 폐지, 헌법 개정,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연합훈련 중단, 비핵화 요구 철회 등 다섯 가지를 지속적으로,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를 수용해야 남북 대화에 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한가.

    "그것을 다 수용해도 대화에 응할 가능성은 낮다. 다만 우리가 그 요구를 받아들이면 우리나라는 매우 위험해지고 망할 수도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페이스메이커(속도 조절자)론'이 성과를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 북한은 한국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김여정이 지난 8월 20일 담화에서 "한국은 우리 국가의 외교 상대가 될 수 없다"며 "진중치 못하고 무게감이 없으며 정직하지 못한 한국에는 우리 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지역 외교 무대에서 잡역조차 차례지지 않을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즉, 한국을 한반도 문제에서 완전히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겠다는 것은 북한 입장에서는 '주제넘은 소리'로 들릴 뿐이다. 북한은 핵 무장으로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권을 장악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재명 정부가 대화를 계속 제의해도 남북 관계가 다시 열릴 가능성은 없겠는가.

    "지금 북한의 태도와 내부 상황을 보면, 대화 재개를 기대하기는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 북한으로서는 우리가 '대화하자', '교류하자', '개성공단을 재가동하자', '관광을 재개하자'고 제의하는 것들이 오히려 기분 나쁠 것이다. 북한은 자기들의 체제 유지를 위해 남북 관계를 단절시켜 놨는데, 우리가 자꾸 대화하자고 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제안들을 여론 조작이라고 비난하지 않는가. 남북 관계가 다시 열리기는 쉽지 않다."
  • ▲ 2000년 6월 1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당시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는 장면 뒤로 당시 통일부 정책총괄과장이었던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의 모습이 보인다. ⓒ뉴데일리 DB
    ▲ 2000년 6월 1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당시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는 장면 뒤로 당시 통일부 정책총괄과장이었던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의 모습이 보인다. ⓒ뉴데일리 DB
    -군 복무를 마치고 행정고시를 치렀는데 최상위권으로 합격했다. 당시 주목받는 부처가 아니었던 통일부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저는 통일을 이루고 싶어서 그 길을 택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역사를 공부하고 역사 소설을 즐겨 읽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본래 상당히 강한 민족이었는데 약한 민족이 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다시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통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대학 진학 시 정치학과를 택한 것도, 행정고시를 거쳐 통일부를 선택한 것도 모두 그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유일한 전략 실무 배석자로서 합의문을 직접 작성했는데, 그때와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너무 달라졌다.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당시에는 세계화와 탈냉전의 흐름이 맞물리며 국제질서가 개방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반대다. 신냉전 구도가 고착되고, 세계화는 중단됐다. 또한 2000년 당시 북한은 사실상 붕괴 직전의 경제적 빈사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핵 무장을 기반으로 '전략국가'로 행세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김정은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졌다.

    국제질서의 변화와 북한의 위상 변화가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 내 일부 인사들은 여전히 20여 년 전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때 가능했던 접근법이 지금도 통할 거라고 믿는 현실 인식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는데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면 결국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현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한반도 통일 경로는 무엇이라 보는가.

    "'개념적으로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화해・협력 단계→남북연합 단계→통일국가완성 단계)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 간의 개방과 소통이다. 특히 남북한 주민의 말이 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 간에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상호 개방하고 봐야 한다. 우리도 봐야 하고, 북한 주민도 우리 방송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북한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으니 문제다."

    -통일연구원장으로서 이재명 정부에 정책 제언이나 보고서를 올리셨을 텐데, 정책 방향이 크게 바뀐 상황에서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우리는 국책연구기관으로서 분석과 제안을 내면 그다음은 정부가 판단한다. 채택하든 안 하든, 그것은 그들의 결정이다. 정책 제안은 항상 '참고자료'일 뿐이다. 연구기관의 역할은 현실을 분석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외면하느냐는 정치의 몫이다. 다만 저는 한 가지 분명히 믿는다. 언젠가 다시 '통일'이라는 이름이 당당하게 국가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것, 그것이 통일연구원이 존재하는 이유다."
  • ▲ 김천식 통일연구원장. ⓒ뉴데일리 DB
    ▲ 김천식 통일연구원장. ⓒ뉴데일리 DB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은
    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나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제2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통일부에서 30여 년간 근무하며 정책총괄과장, 교류협력국장, 통일정책실장 등을 역임했다. 남북교류협력법과 남북관계발전법 제정에 참여해 통일정책과 남북 교류·협력의 제도화를 이끈 대표적 실무 관료로 평가받는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유일한 전략실무 배석자로서 합의문을 직접 작성하며 남북 화해에 이바지했고, 2011년에는 이명박 정부에서 제20대 통일부 차관으로 임명돼 정책의 실무와 전략을 동시에 총괄했다(2011~2013년). 이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특임연구원, 이화여대 초빙교수, 세한대 석좌교수를 거치며 학계와 정책 현장을 오가며 통일정책 연구에 매진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통일공감포럼 대표,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사회법인 통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윤석열 정부에서 2023년 7월 통일연구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통일국가론』(2018), 『개성공단』(2016년, 공저) 등의 저서를 통해 통일국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국가의 통일·대북정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1992년), 홍조근정훈장(2001년), 고운문화상(2009년)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