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집권 이후 '제재 해제' 첫 거론…표면상 비핵화 맞교환 염두'일시적 핵 동결' 등 북핵 인정 분위기…한반도 핵 위협 노출 상존"중대한 양보, 실책 될 수도…한국-일본 핵 무장 필요성 논의 촉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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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판문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좌)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190630 ⓒ연합뉴스
29~30일(한국시각) 방한을 앞두고 북한에 대화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면 대북(對北) 제재까지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처음 밝히면서 북한의 관심을 끌지 주목된다.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처럼 제재 해제와 비핵화를 주고받는 협상 공식을 다시 제시한 것이다.그러나 북한의 전략 환경은 이미 달라졌다. 러시아·중국과의 공조 강화로 '제재 내성'을 확보한 만큼 북한이 과거의 협상 공식에 응할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 중론이다.AP·AFP·교도통신, 연합뉴스 등과 백악관이 공개한 녹취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각) 일본으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김 위원장과 만남에서 미국이 무엇을 제시할 수 있는지 취재진이 묻자 "우리에겐 제재가 있다. 이는 (논의를) 시작하기에 꽤 큰 사안이다. 아마 이보다 더 큰 건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한 이후 북·미 정상회담 의제로 대북 제재를 구체적으로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그간 여러 차례의 공개 대화 제의에도 북한의 긍정적인 반응이 없자 협상을 통한 제재 완화 가능성을 시사하며 북한의 협상장으로 유도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역대 미국 행정부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단념시키기 위해 갈수록 제재를 강화하며 북한을 경제적으로 압박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1기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제재 완화는 북한의 주요 외교 목표였다.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합의했다.하지만 이후 열린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정상회담에서는 영변 핵시설 해체와 대북 제재 대폭 완화 맞교환을 제시한 김 위원장과 '영변 플러스알파' 시설의 해체를 요구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견을 좁히지 못해 협상이 결렬됐다.현재 트럼프 2기 행정부는 1기 때와 마찬가지로 공식적으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견지하고 있다.그러나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공공연히 '핵보유국'이라고 거론하는 등 일단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는 양상이다.트럼프 대통령이 '완전한 비핵화'라는 기존 대북 목표를 포기하고 핵 동결과 경제 제재 일부 완화를 거래 조건으로 삼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임기제 지도자인 만큼 완전한 비핵화라는 정무적 목표는 그대로 두면서 일시적 핵 동결로 승부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복안이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 욕구를 의식한 듯 이번 아시아 순방을 시작하면서도 북한을 다시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라고 부르면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객관적 현실 자체는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트럼프 대통령은 1월 취임 첫날에도 북한을 '핵 세력'이라고 했다. 당시 백악관은 '북한 핵을 객관적으로 언급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번에는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냐'는 질문에 사실상 동의하며 한 발 더 나간 것이다.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 비핵화는 물 건너간다. '미국 우선주의' 입장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만 없애고 중·단거리 미사일을 그대로 두면 한국은 핵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된다.'군축'이라는 명분 아래 북핵 일부를 줄이더라도 대한민국을 초토화할 수 있는 핵무기는 그대로 남게 되는 만큼 한반도의 안보 공백은 생길 수밖에 없다.워싱턴포스트(WP)도 이에 대해 "그 발언(뉴클리어 파워)은 북한이 영구적으로 핵보유국 대열에 합류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도 있다는 암시처럼 불길하게 들렸다"며 "이러한 중대한 양보는 실책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이어 "오랜 비핵화 목표를 포기한다면 일본과 한국에서도 핵무기 보유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촉발할 것"이라며 "양 동맹국은 이미 미국이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안보 파트너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품고 있다"고 덧붙였다. -
- ▲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일본 도쿄로 향하는 전용기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기자들에게 발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251027 ⓒ연합뉴스
한편 제재 완화 가능성만으로 북한을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위한 대화로 끌어낼 수 있을지는 전문가들도 회의적이다.대북 제재는 트럼프 1기 때도 중국과 러시아의 비협조 때문에 북한이 우회할 틈이 많았으며 지금은 일각에서 '제재 무용론'을 거론할 정도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지원하는 대가로 식량과 에너지 등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으며 최근 몇 년에는 가상화폐 탈취로 핵·미사일 개발자금을 조달해오면서 과거처럼 제재 완화에 매달리지 않는 모습이다.김 위원장은 9월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좋은 추억을 갖고 있으며 미국이 비핵화 목표를 포기하면 만날 수 있다면서도 "제재 풀기에 집착해 적수국들과 그 무엇을 맞바꾸는 것과 같은 협상 따위는 없을 것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의 방한을 앞두고 대미(對美) 외교의 책임자인 최선희 외무상의 러시아, 벨라루스 방문 계획을 발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에 관심이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제재 완화 카드의 가치가 떨어진 반면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 러시아의 사실상 묵인 속에 이전보다 고도화했기 때문에 제재와 핵을 주고받는 과거의 공식이 다시 성립되기 어려워진 상황이다.트로이 스탠거론 카네기멜런대 전략기술연구소 연구원은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열의에도 그가 김정은을 실질적인 대화를 위한 테이블에 앉히기에는 가진 카드가 제한됐다"며 "트럼프와 김정은이 마지막으로 비무장지대(DMZ)에서 만난 뒤로 제재 완화는 그 가치를 많이 상실했다"고 평가했다.이어 "북한이 미국 대신 찾은 러시아는 전반적인 제재 집행을 약화하면서 북한에 상당한 경제적·군사적 혜택을 제공했다"며 "트럼프는 김정은과 협상을 타결하고 싶어 하지만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려면 북·러 관계를 단절할 방법을 먼저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반면 러시아의 지원과 제재 우회를 통해 얻는 경제적 이익이 김 위원장이 원하는 수준의 경제 발전을 이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제재 완화가 여전히 북한의 구미를 당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또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자신과의 정상외교에 관심이 있는 트럼프 대통령 집권기에 미국과 협상해야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판단할 여지도 있어 보인다.시드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어떤 유형의 제재 완화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진전을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의의 표시가 될 수 있지만, 문제는 김정은"이라고 말했다.그는 "미국이 보내는 대화 메시지에 북한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이 전혀 없다는 것에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어느 정도의 불만이 감지된다"면서 "제제 언급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떠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막바지에 이뤄질 수도 있는 정상회담의 가치를 키우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고 관측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