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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 독재자? 그럼 링컨도 독재자"

[제35회 이승만포럼] 김충남 박사, 해외사례 비교해 건국대통령 업적 재평가

입력 2014-01-09 22:56 수정 2014-01-11 00:12

▲ 이승만 대통령과 에브러햄 링컨 대통령.ⓒ 툰부리


"미국의 영웅으로 추앙(推仰)받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자국의 분단을 막고 노예를 해방하기 위한 남북전쟁을 치르면서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비민주적]이라고 할만한 조치들을 많이 취했다.

징집기피자-전쟁 반대자-적에게 호의적인자 등을
군사재판에 회부(回附)했고,
자신의 전쟁정책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정치인을 축출했다.

언론인들도 영장 없이 수 천명씩 체포-구금했다.

링컨 대통령은,
이런 자신의 행동을, 

"평상시라면 헌법에 위배될지 모르지만,
이 같은 조치들은
나라를 보위하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불가피하다"
설명했다"

   - 김충남 박사(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대한민국의 건국은 우리 국민들의 관심 밖이다.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건국일(1948년 8월 15일)을 모르는 국민이 75%에 이른다.

(사)건국이념보급회가 주최한
제35회 이승만포럼에 발표자로 나선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김충남 박사는
건국을 기념하지 않는,
심지어 대한민국의 건국을 일군
국부(國父)를 폄하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 김충남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이종현

“대한민국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서양의 근대국가 발전과정,
신생국가들의 실패과정,
일본의 발전과정 등을 연구했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편협하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시작은
상해임시정부 수립부터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고,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라를 분단시킨 사람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권위주의 통치를 바탕으로 장기집권을 한 독재자이며
친일파를 숙청하지 않은 옹졸한 지도자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 김충남 박사


대한민국은 현대적인 [국민]국가다.
한반도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정말 생소한 개념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건국했을 당시,
우리나라는 절체절명의 안보위기에 직면했다.

국력을 키우기 위한 경제발전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모든 것이 척박했다.

치안-행정-국방 등
국가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부를 수립하는 것만도 벅찬 일이었다.
사회는 혼란스러웠고,
북한의 위협은 시간이 갈수록 정도를 더해갔다.

동북아의 작은 국가 대한민국은,
태어나자 마자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존립의 위기를 맞았다.

신생국가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노력은,
이런 혼란을 극복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 에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그린 영화 2012년作.ⓒ 온라인게시판


"이승만 대통령이
눈 앞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기 위한 일련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민주적 절차가
일부 희생됐다는 지적에 수긍((首肯)한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지금의 시각으로만 바라봐선 안 된다.

중국(중공)소련,
그리고 이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위성국가 북한의 남침위협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새로 태어난 약소국 대한민국의 기틀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카리스마와 리더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권위에는
[전통적 권위], [카리스마적 권위], [합리적 권위]가 있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당시는
모든 것이 무너진 혼돈의 시기였다.

약소국 대한민국이 직면한 안보위협을 극복하고
국가로서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선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

   - 김충남 박사


김충남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 했다는
일부의 평가에 대해,
대한민국 건국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통치하에서 불가피하게 친일을 한 사람 모두를,
친일파로 단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식이라면
당시 국민 중 친일파가 아닌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
당시 전문인력이 극히

부족했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전문대 이상 학력을 가진 사람이
전체 인구 2천만명 중

불과 2만5천여명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들 중 3분의 2가
일본 통치하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란 사실이다.

이들을 제거할 수 없었던
당시 절박한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 김충남 박사



▲ 1954년 미국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 뉴데일리 DB


이날 김충남 박사는,
공산침략으로부터의 생존,
국가안보 인프라(군대-경찰) 구축,
[토지 무상분배] 등 눈에 보이는 업적은 물론,

1945년 78%가 넘었던 문맹률
15년만에 10%까지 낮춘,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언급하면서
[이승만]을 알기 위해선,
신생 약소국 대한민국의 건국대통령으로서
그가 가졌을 [고민과 갈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충남 박사가,
이날 발표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 중 가장 높이 평가한 것은
다름 아닌 [한미동맹]이었다. 


"한미동맹은 전적으로 이승만의 작품이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원하지 않았다.
급도 안되는 대한민국과 무슨 동맹을 하려 했겠는가.

역사적으로 베트남은
미국과 동맹을 맺지 못했고 결국 공산화의 길로 갔다.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의 발전에 절대적 기초가 됐다.

한미동맹으로 국방 예산을 줄였고
해외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해소시켰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성공은,
이승만 대통령의 성공이 없었다면 생각할 수도 없었다.

링컨
[노예해방][남북전쟁 승리]를 통해
오늘날 미국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승만
[한미동맹][한국전쟁 승리]를 통해
오늘날 대한민국의 터전을 만들었다.

   - 김충남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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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미국인을 가장 많이 죽인
미국인을 본받아라"


박성현 뉴데일리 주필


※ 이 기사는 2011년 7월 1일 뉴데일리에 실린 글입니다.


어느 정당이든 집권하면 [품격]이 생긴다.
옷이 사람을 돋보이게 하고, 자리가 사람의 품위를 만드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DJ의 민주당은 집권하자,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서민대중경제]를 버리고
IMF 구원투수 역할을 해냈다.
덕분에 그들의 지지 기반이 깎여나갔다.

그래서 대한민국 안보의 기본틀을 약화시켰음에도,
나는 그 세력을 인정한다.
그들은 집권당으로서 [품격]이 있었다.
안보에 관해서는 안 해야 할 일을 했지만,
경제에 관해서는 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이다. 
 
당신들(당시 한나라당)은 집권당임에도 불구하고 품격이 생기기는 커녕,
애초 가지고 있던 알량한 품격마저 내팽겨쳤다.
아무런 원칙도 전략도 없이 선거구의 표심만 의식하는 가련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도대체 [선거구의 표심]이란 무엇인가?
선거는 10개월 가까이 남았다.
당신이 표심을 좇다가는 허공만 잡는다.
표심이 당신을 좇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역동적인 정치다.
 
내 말이 이상적이라고 코웃음 치는 건방진 뱃지들이 보인다.
정치가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하나도 모른 채
"얌마, 내가 국회의원이야! 국회의원!"이라는 생각만 머리 끝까지 차있는
발랑까진 종자들이다.
그래, 당신 x 굵다.
 
모든 정치인은 결국 "표를 의식한다"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쓸만한 정치인은,
가치(value)
를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국가,
혹은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당신들이 벌이고 있는 작태는 어떤가?
국민의 세금을 마치 자기 재산인 것처럼 다루고 있지 않은가?
 
[내 눈알로 보지 않았으니까 천안함이 침몰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정신병자가 헌법재판관 후보가 된 것에 대해,
당당하게 부적격 의견을 내놓기는커녕,
눈알만 요리조리 돌리며 눈치만 보고 있는 것 아닌가?

당신들 눈알  돌아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당신들이 헌법기관으로서 대접 받는 것은 [표]만 의식하기 때문이 아니다.
표와 동시에,
가치를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사명은,
표심과 가치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표심만 좇을 수도 없고,
가치만 좇을 수도 없는 딜레마가 바로 정치인의 운명이다.
그 딜레마를 끌어 안고 고통하기 때문에 당신들을 존경할 수 있게 된다. 
그 딜레마를 감당하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가,
당신들을 헌법기관으로 만든 것이다.
 
자기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 한 채 사회적 지위만 높아진 불쌍한 인종들--
그게 당신들이다.

운명이 되어라! (Be your fate!)
당신 자신인 존재가 되어라!(Be what you are!)

사회 지도층 인사가 자신의 운명을 모르고 메뚜기처럼 날뛸 때,
우리는 그를 [걸레]라고 부른다.

당신은 운명인가, 아니면 걸레인가?
 
지구 상에 존재했던 정치인 중에
[표심과 가치 사이의 긴장
]을 온몸으로 감당했던 위대한 정치인이 있었다.

아브라함 링컨이다.
흔히들 링컨에 대해
"노예해방을 위해 전쟁을 치른 진보 정치인"이라고 착각하지만,
실은 미국 공화당을 만들어냈던 핵심 멤버 중의 하나였고,
공화당이 배출한 첫 대통령
이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링컨은
"링컨 공화주의"(Republicanism)를 만든 인간이다.
링컨 공화주의는,
"미덕을 갖춘 시민이 공동체를 위해 사사로운 이익을 희생한다"는 식의
[구름잡는 이상주의]도 아니고,
"개인은,
국민의 뜻(general will, 일반의지) 앞에 희생해야 한다"

[잔혹한 국가주의]도 아니다.

링컨 공화주의는 양의 얼굴과 사자의 심장을 갖춘 사상이다.
 
1. 양의 얼굴: 
(
다수결, 즉 민주주의로 건드릴 수 없는)
공동체가 지켜야 하는 최종적 가치
는 무엇인가?

 
링컨은 이에 대해 두 개의 답을 내놓았다. 

하나는,  
"노예제도를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가치였고,

둘은,
"노예제 따위의 문제로 연방을 탈퇴해서 분리독립해서는 안 된다'는 가치였다.

그는 이 두 가치의 뿌리가
미국 독립선언서와 미국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들로부터 기원했음을 밝혔다.

그래서 링컨이야말로 미국 보수주의의 정신적 지주이다.

보수는 옆집 강아지 이름이 아니다.
보수는,
미래를 위해 과거를 해석하는 정신의 힘이다. 
당신들(당시 한나라당 의원) 같은 잡종 오렌지들의 동호회(당시 한나라당)가,
감히 [보수]라는 단어를 거론하지 않기를 빈다.

한나라당은 당이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동호회]일 뿐이다.
 
2. 사자의 심장:
공동체가 지켜야 할 최종적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는 반란행위이다.
내전을 치를 수 밖에
없다.
 
남북전쟁은  만 4년에 걸쳐 60만 명이 죽어나간 참혹한 전쟁이었다.
그 피 웅덩이를 처벅처벅 걸어서 건너갔다.
그래서 링컨은,
"미국인을 가장 많이 죽인 미국인"이기도 하다.
 
자,
성인이자 도살자인 링컨이 ,
정치인의 운명적 딜레마를 어떻게 감당했는지 자세히 가르쳐 주마.
공짜이니까,
귀를 후벼내고 눈알을 닦아낸 후,
잘 봐두어라.

*******************************


미국의 천재성은 정치에 있다.
미국이 낳은 유일한 성스런 인물,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충만한 인생]을 상징하는 인물,
숭고한 목표를 향해 자신의 인생 전체를 바쳤다고 평가되는 인물 역시 정치인이다.
그의 이름은 아브러함 링컨이다.


1953 년에 드러커(Peter Drucker)가 쓴 글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링컨은 심지가 굳으면서도 온건한 사람이었다.
흔히 링컨에 대해 매우 과격한 노예해방론자라는 인상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그는 미국 공화당을 만든 정치인 중 한 명이며,
공화당이 배출한 첫 대통령이었다.
그의 사상과 행적을 잠시 살펴 보자.
 
링컨은  “세상을 뜯어 고쳐야 한다”고 믿은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드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바로 노예 문제에 관한 그의 입장이었다.

링컨은 과격한 노예해방론자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미국의 모든 노예를 당장 해방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가졌던
철페론자(abolitionist)들과 극심하게 대립했다.

기존에 노예제를 유지해 오던 지역(노예주, slave states)에서는 계속 노예제를 두되,
새로 개척되는 지역(변경주, territories)에서는
노예제를 절대로 허락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 회색이 변경주(새로 개척되는 지역, territories) 였다. "변경주에 노예제를 실시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당시 미국의 최대의 이슈였다.ⓒ


회색이 변경주(새로 개척되는 지역, territories) 였다. "변경주에 노예제를 실시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당시 미국의 최대의 이슈였다.

여기서 잠시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노예는 목화 농장에서 일했다.
그런데 목화에서 천을 짜는 과정에 있어서 가장 골치 아픈 병목 구간은
목화를 기르거나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목화 꽃에서 씨를 빼내는 작업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휘트니(Eli Whitney, 1765~1825)라는 청년이었다.
그가 1793년에 발명한 [휘트니 엔진]을 쓰면,
한 사람이 하루에,
씨를 제거한 목화 25킬로그램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 기계 덕분에 남부의 목화 농장은 떼돈을 벌게 되었고,
목화 생산이 급속히 확대되었다.
1830년에 75만 베일(bale)이었던 생산량은
20년 만에 약 3백만 베일로,
네 배 가까이 늘어났다.

미국 코넷티컷에 있는 휘트니 박물관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1825년에 죽은 휘트니는
자신의 발명이 세상을 크게 어지럽히게 될 것이라는 점을 전혀 알 지 못 했다.
[휘트니 엔진] 때문에 미국에서 노예제가 크게 번성했다.
이 기계에 의해 목화꽃에서 씨를 제거하는 일이 쉬워지자
목화를 기르고 재배하는 노예가 그만큼 더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농장부지와 노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1790년에는 노예제를 운영하고 있는 지역(노예주)이 불과 여섯 개 뿐이었다.
그러나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860년에 이르자
노예주는 열다섯 개가 되었다.
1790년부터, 
노예 수입을 금지시킨 1808년까지,
18년 동안 무려 8만명의 노예가 수입되었다.
1860년을 기준으로 남부 노예주에서는
주민의 셋 중 하나가 흑인노예였다.



 

▲ 휘트니 엔진. 이 기계 덕분에 흑인노예를 부리는 목화농업은 황금 방석에 앉았다.ⓒ

휘트니 엔진. 이 기계 덕분에 흑인노예를 부리는 목화농업은 황금 방석에 앉았다.

한마디로 1800년대 전반기 50년 동안에 미국의 노예제도는 크게 강화되었으며.
노예 소유주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엄청나게 증가했다.
1850년이 되자 이들은 노예제도를 미국 전역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이 거센 물결에 대해 링컨은 이렇게 한탄했다.

노예 소유주들에게는
노예제도 확대에 관한 명확한 이해관계가 있다.
노예제도가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면,
노예의 가격이 당장 두 배로 뛸 것이다.
반면에,
노예제도의 확대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같은 절실한 욕망이 존재하지 않는다.


1850 년대 내내 링컨은 원외 정치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과격한 철폐론자들을 견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 개척되고 있는 변방주에서도 노예제도를 확대하자는 노예론자들과 싸우는 데에
선봉 역할을 맡았다.

이 싸움을 통해 미국 공화당이 만들어졌다.

노예 소유주의 입장을 대변하던 미국 상원의원 더글러스(Stephen Douglas)는,
1854년에 매우 선동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노예제를 택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각 주에서 투표로 결정하자”라는
인민주권론(Popular Sovereignity)이었다.

이 달콤한 주장에 대한 링컨의 반박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이 반박은 내가 정리해서 재구성한 것이다.)

새로 개척되고 있는 변경주(territory)들에서는
노예제를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들의 행적과 글을 살펴 보십시오.
그 분들은 노예제도를,
[가능하면 억제해야 할 악(惡)]으로 보았습니다.

또한 독립선언서를 보십시오.
독립선언서는 헌법보다 먼저 만들어졌으며 헌법에 우선하는 것입니다.
독립선언서에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평등하게 창조하신 것을
우리 인간이 불평등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인간 세상의 불평등을 한번에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불평등을 확대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변경주로 노예제를 확대하는 것은,
건국의 아버지들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며
독립선언서의 정신을 뒤집는 일입니다.

 
미국에는
민주주의, 즉 다수결에 의해 뒤집어서 안 되는
소중한 원칙이 있습니다.

더글러스는,
노예제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다수결에 의해 결정하자고 주장합니다.

오늘 다수결에 의해 흑인을 노예로 만들면,
내일은 다수결에 의해 유대인을 노예로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모레는 우리 중의 누구라도 다수결에 의해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에는,
민주주의로 뒤집을 수 없는,
뒤집어서 안 되는 가치와 원칙이 있다는 점—
이것이 바로 미국의 자랑입니다.

독립선언서와 건국의 아버지들이 밝힌 노예제도에 대한 입장은
바로 이 소중한 가치와 원칙에 해당합니다.

 
또한 건국의 아버지들과 독립선언서가 밝힌 가치와 원칙을
거추장스럽다고 느껴서 이를 어기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함부로 분리독립해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미국의 소중한 가치와 원칙입니다.

남부 지역 주민들이 아무리 다수결에 의해,
민주적 절차를 거쳐 연방 탈퇴를 결정하더라도,
이는 불법이며 배반행위입니다.
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80여 년 전,
남부가 독립 과정에 합류하여 미국의 일부가 되었을 때,
이미 미국의 소중한 가치와 원칙을 지키겠다는
성스런 계약이 맺어졌던 것입니다. 
    


링컨의 이 같은 주장은 온건한 듯 보이지만,
실은 매섭기 짝이 없다.
노예제를 허락하는 지역을 기존 열 다섯 개 주로 묶어두고,
앞으로 생겨날 모든 신개척 지역(변경주)에서 노예제를 못 하게 만들면,
언젠가는 노예제가 없어질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남부 노예 경제를 고통스럽지 않게 목졸라 죽이는 정책—
자비로운 교살(benevolent strangulation) 정책이었다.
 
또한 링컨은,
노예제를 억제하는 것이 바로 독립선언서와 [건국의 아버지들]의 근본 정신이며,
이는 민주주의(다수결)에 의해 뒤집을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그는 민주주의(다수결)를 초월한 [미국의 근본 가치]—
공화주의(Republicanism) 가치—를 정의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링컨에 대해,
[미국 공화주의 전통을 확립시킨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공화주의 가치를 뒤집겠다는 이야기는
혁명이나 내전을 하자는 이야기이다.
함부로 까불대며 집적거리지 말아라!”
라고 선언하고,
그것을 증명한 사람이 바로 링컨이다.
 
19 세기에 들어서 50년 이상 목화 농장을 경영하면서
떼돈을 벌어왔던 남부 노예 소유주들은,
링컨의 정책에 대해 크게 반발했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채 취임하기도 전에
남부의 일곱 개 주가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나아가 이들은 남부에 있는 연방군 기지를 공격했다.

남북전쟁은 북부가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해 시작한 전쟁이 아니라,
남부가 분리독립하기 위해 도발한 전쟁이었다.
물론 분리독립의 목적은
[노예 제도를 무제한 확장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링컨은 설득과 타이밍에 관한 천재였다.
그는 평소에는 자신의 주장을 논리 정연하게 정리해서 설득하는 작업을 했다.
항상 연설하려 다녔고,
항상 사람들을 설득했다.

예를 들어 1850년대 내내
그는 원외 정치가로서 한번도 흐트러지지 않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다녔다.
앞서 언급한 더글러스가
“인민의 투표에 의해 노예제를 결정하자!”라는 지극히 선동적인 주장을 폈을 때
이를 상대로 싸운 대표선수가 바로 링컨이었다.

이 논쟁은 더글러스-링컨 논쟁이라 불린다.
미국 공화당은 이 논쟁을 통해 만들어졌다.
 
링컨은 이토록 헌신적이고 열정적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러 다녔지만,
결코 조바심을 내서 서두르지는 않았다.
항상 패배를 담담하게 받아들였고 다시 설득 작업을 계속했다.

그는 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때가 왔다.

1860 년 12월,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일리노이 도끼잡이]—
링컨은 젊은 시절 일리노이 최강의 도끼잡이였다—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었다.

1861년 봄,
남부 노예주들이 분리독립을 선언하고 연방군 기지를 공격하자,
링컨은 묵묵히  국민을 이끌고,
참혹한 내전—60만 명 이상 숨진 피웅덩이를 처벅처벅 건너갔다.  


▲ 남군에게 포로로 잡힌 북군은 참혹한 학대를 받았다. 예를 들어 앤더슨빌 포로수용소에는 약 5만명이 입소했지만 그 중 만 사천 명이 아사했다. 사진은 앤더슨빌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북군 병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군에게 포로로 잡힌 북군은 참혹한 학대를 받았다. 예를 들어 앤더슨빌 포로수용소에는 약 5만명이 입소했지만 그 중 만 사천 명이 아사했다. 사진은 앤더슨빌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북군 병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링컨은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노예해방령을 내리지 않았다.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린 것이다.
전쟁에서 승기를 잡고 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예해방에 대해 공감하기 시작한 1863년 1월 1일,
[교전 중인 남부 노예주에 있는 흑인 노예들]에 한정해서 해방령을 내렸다.
열다섯 개의 노예주 중에
매릴랜드-미주리-델라웨어-웨스트 버지니아-켄터키 등 다섯 개 주는
남부가 아닌 북부 편을 들었기 때문에,
이 다섯 개 주의 노예들은 계속 노예로 남아 있어야 되었다.

그로부터 다시 18개월쯤 지난 1864년 중반에 들어서
북군의 승리가 완전히 굳혀지고 나자
링컨은 위의 다섯 개 노예주를 포함한 미국 전역에 걸친 노예해방을 추진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1865년 2월에,
노예제를 금지하는 헌법 수정안을 통과시킨다. 
남군이 항복하기 두 달 전,
전쟁의 양상이 완전히 결판난 다음의 일이었기 때문에,
설혹 다섯 개 주가 불만을 가지더라도
아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없던 상황이었다.

노예제를 금지한 헌법 조항이 [제13차 헌법수정]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두 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문장에 의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 최강대국의 대들보가 세워졌다.

제13차 수정 제 1조:
미국 혹은 미국이 다스리는 모든 곳에서,
노예제 혹은
(적법한 절차에 의해 유죄가 확정된 범죄에 대한 형벌을 제외한) 강제 노동은
존재할 수 없다.

제 13차 수정 제2 조:
이를 실행하기 위한 관련 법률은 의회가 정한다.


헌법 수정이 끝나자 링컨은,
“이제 나의 일을 다했다”고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1865년 2월 이후 그의 발언은
한마디로 [겁없는] 개혁론자의 웅변이었다.
평생 동안 조심스레 억제해  왔던,
자신의 원칙과 신조를 고스란히 쏟아내었다.

암살당하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사방에서 암살에 관한 경고와 정보가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시간 날 때마다 극장에 가서 연극을 관람했다.
4년에 걸친 참혹한 피웅덩이를 처벅처벅 걸어서 건넌 위대한 지도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했다.

남군이 항복하고 난 후 이틀째인 4월 11일 저녁백악관 발코니에서,
링컨은 즉흥 연설을 했다. 
어둑어둑한 저녁이었고 마당 곳곳에 횃불을 밝혔다.
남부의 패배에 대해 앙심을 품은 사람이
총을 쏠지 모르니까 연설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링컨은 폭탄선언을 했다.

“전쟁에 참여한 흑인과,
읽고 쓸 줄 아는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
고 말했다.

링컨이,
백인 뿐 아니라
모든 흑인 아동에게도 국가 의무교육을 추진했던 점을 고려하면,
결국 “모든 흑인에게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폭탄 선언에 의해,
링컨의 암살은 확정되었다.

링컨은 4월 11일의 연설이 있은 지 나흘 뒤에 암살되었다.
여성의 투표권이 1920년에야 주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1865년에 “흑인(남성)에게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는 링컨의 발언이
얼마나 파격적인 이야기였는지 짐작된다.

링컨의 죽음 이후 5년이 지난 1870년에
[제15차 헌법수정]이 이루어짐으로써 흑인(남성) 투표권이 확보되었다. 
흑인 남성은,
백인 여성보다 꼭 50년 앞서 투표권을 보장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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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은 엄청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깊이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는 정치인으로서의 승패와 상관없이,
논리정연하고 온건한 정치적 원칙을 사람들에게 꾸준히 전파하고 다녔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그가 내세울 수 있는 경력이라곤,
연방 하원의원을 딱 한 번(2년) 했던 것 뿐이다.
그의 정치 활동은,
국회의원으로서의 화려한 활동이 아니라,
순회재판소를 따라다니는 변호사로서
일리노이 방방 곡곡을 다니며 정치적 관점을 설득하고 동지를 규합하는 일이었다.
 
그는 표심과 가치 사이의 긴장에 관한 예술가이다.
사람들을 꾸준히 설득하고 조직하면서 때—현실 여건의 변화를 기다린다.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치까지만 주장하고 때를 기다린다.
1850년대에 노예제 철폐를 곧바로 주장하면
오히려 연방이 분열된다는 현실을 중시했기 때문에
“새로 개척되는 지역에서만큼은 노예제를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남북전쟁이 벌어지자 마자 노예해방령을 내렸다가는
북부 편을 든 다섯 개 노예주가 적으로 돌아선다는 것을 알았기에
전쟁의 승기가 잡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매우 제한적인 조치—교전중인 남부 주의 노예들에 대한 해방령을 내렸다.
물론 이 때도 사람들에 대한 설득 작업은 계속되었다.
 
남군의 패배가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13차 헌법 수정을 밀어붙여서 노예제를 완전히 철폐했다.
나아가 백인 아동 뿐 아니라 흑인 아동에 대한 국가의 의무교육을 추진했다.
 
1865 년 4월 9일 남군이 항복한 후에,
링컨은 비로소 이 처절한 [타이밍의 전략]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소신(흑인에게 참정권을 주어야 한다는 소신)을 있는 그대로 밝혔다.
국민을 이끌고 참혹한 피웅덩이를 건너면서 쌓였던 슬픔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음 뿐이라고 느꼈던 게다.

그는 암살 [당한 것]이 아니라 암살을 [안은 것]이다.

링컨 연구자들은,
남북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이후,
그의 안색이 점점 더 검어지고 눈이 더 깊이 들어가고 몸이 더 말라 갔다고 전한다.

노예제 확대 반대==>
교전 지역의 노예 해방령==>
헌법 수정에 의한 전면적인 노예해방==>
흑인 투표권 선언


이 네 단계에 걸친 링컨의 행보를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그는,
세상이 매우 복합적인 이해관계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하고 복잡한 생태계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사람들의 의식을 한걸음씩 바꾸어낼 수 있는 설득과 조직 작업을 꾸준히 하면서,
[결단을 위한 때]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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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컨의 눈빛은 극심한 우울증 환자의 눈빛이다. ⓒ


▲ 링컨의 눈빛은 극심한 우울증 환자의 눈빛이다.


링컨 같은 위대한 예술가가 생겨나려면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
링컨을 이해하려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필요가 있다. 

첫째,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초등학교마저 변변히 다니지 못 했지만,
스스로 공부해서 측량기사-변호사가 되었던 사람이다.
한마디로 의지가 굳고 머리가 지극히 영민한 사람이었다.

둘째,
그는 일리노이 최강의 도끼잡이-레슬러-달리기 선수였다.
말하자면,
강호동의 힘에 추신수의 파괴력을 더 해놓은 인물이다.
특히 그의 도끼질은 [예술]이었다고 전해진다.
링컨이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그의 지지자들은,
그가 젊은 시절 참나무를 빠개서 만들어 놓았던 농장 울타리를 뜯어서 들고 다니며
선거 유세를 했다.

말하자면 이렇게 외친 셈이다.

여러분!
링컨은 바로 우리의 이웃입니다.
이 참나무를 보십시오!
이렇게 반듯하게 빠개다니,
그야말로 [도끼의 예술] 아닙니까?

도끼잡이 링컨을 대통령으로 뽑읍시다!


셋째,
링컨은 극심한 우울증 환자였지만,
초인적인 의지로 자신의 병을 세상에 대한 통찰로 바꾸어 냈다.
링컨 시대에는 [우울증]이라는 병이 알려지지 않았고 그에 대한 치료도 없었다.
그 당시 우울증 환자들은 아무 치료도 받지 못 한 채,
대부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레오 톨스토이는,
죽기 일년 전에 <뉴욕 월드> 지의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젊었을 때 코카서스를 여행할 때 (
터키 동부) 키르카스(Circassian) 지방의 촌장 집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문명 세계로부터 완전히 떨어진 깊은 산악지역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바깥 세상의 상황과 역사에 대해서는
어린아이 같은 조가리 지식 밖에는 가진 바 없었다.
문명의 손길은 이 부족에게는 아직 미치지 못했다.
자신들이 태어나서 살고있는 계곡 바깥의 새상은 깜깜한 신비, 그 자체였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해왔던 일-바깥 세상의 공장 시설-새로운 발명품-학교 제도 등에 대해 말했다.
그들은 그냥 심드렁하게 들었다.
그러나 내가 군인과 장군과 정치인에 대해이야기 하자, 
키 크고 회색 수염이 난 촌장은 깊은 흥미를 보였다.
"
잠깐만 기다리시구려.
이웃들과 애들을 모두 불러올 테니깐, 그 때 이야기 해주쇼."

거칠게 보이는, 말 타는 사람들, 황야의 아들들이 들어서서
나를 둘러 싸고 앉았다.
지식에 굶주린 사람의 모습을 하고.
처음엔 러시아의 짜르들과 그들이 거둔 승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한 뛰어난 장군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특히 나폴레옹에 대해서는 너무나 깊은 관심을 보여서,
그의 손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그의 키가 몇 센티였는지까지 말해야 되었다.
그의 장총과 피스톨을 누가 만들었는지,
그의 말은 무슨 색이었는지도 말했다.
이 사람들의 궁금증을 만족시키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했다.
나의  말이 끝나자, 촌장이 말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
가장 위대한 지배자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소.
그 사람에 대해 말해 주쇼.
그는 영웅이었소.
그의 목소리는 천둥과 같았고 그의 웃음은 아침 햇살과 같았소.
그의 행동거지는 바위와 같았고 장미꽃 향기처럼 달콤했소.
그의 어머니가 그를 뱄을 때,
천사가 나타나,
태어날 아기가,
이제껏 하늘의 별 아래 태어난 사람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예언해 주었소.
그는 숙적의 범죄를 용서하는 아량을 가졌고
자신을 암살하려고 하는 사람의 손을 잡아 줄만큼 따듯했소.

그의 이름은 링컨이고...
그가 지배했던 나라는 아메리카였다고 들었소.
그 나라는 정말 먼 곳에 있다고 하오.
젊었을 적에 그 나라를 향해 떠나면,
다 늙어서야 도착한다는 구려.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 주구려...
우리가 가진 말 중에 제일 좋은 놈을 드리리다."

 
그들의 얼굴은 빛나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링컨에 대해, 링컨의 지혜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한  마디하면 그들은 열 개를 물었다.
그러나 링컨이 말도 잘 못 탔고 매우 소박한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를 하자...
그들은 모두 놀랐다.

나는 근처 도시까지 말을 타고 가서 링컨의 사진을 구해
이들에게 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젊은이들과 함께 말을 타고 출발했다.

 
사진을 사서, 한 젊은이에게 주자,
그는 참으로 심각한 얼굴에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받아 들었다.
몇 분 동안 아무 말 없이 뚫어져라 사진만 보았다.
마치 독실한 사람이 기도하는 모습과 비슷했다.
젊은이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깊은 감동을 받은 듯 했다.
내가 물었다—
“왜 그렇게 슬퍼 합니까?"
젊은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진을 보세요.
링컨, 이 분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고,
이 분의 입술에는 슬픔이 숨겨져 있지 않나요?"


사람들은 흔히 우울증을 [기분이 울적한 상태]쯤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천만에.
우울증이 무서운 것은 발작이기 때문이다.

영화 <소피의 선택>의 원작자이며 현대 미국 문학의 거장인 윌리암 스타이론은,
나이 60에 느닷없이 우울증에 걸려 자살 직전까지 갔었다.
간신히 회복한 그는,
<어둠이 보인다> (Darkness Visible)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은 우울증이,
흔히 착각하는 것과는 달리,
일반적인 울적함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스타이론은 우울증에 대해
[뇌가 경련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한다.
우울증은 울적함을 너머 발작으로 치닫는다.
머리가 왱왱거리고, 속이 타고, 못 자고, 못 먹고….
기분이 울적해서가 아니라,
발작이 고통스러워서 자살한다. 
 
링컨은 20대부터 줄곧 지독한 우울증을 앓았지만,
이를 삶의 원동력으로 전환시키는 노하우를 터득한 사람이었다.
그는 우울증을 심오한 허무주의로 바꾸었고,
허무주의를 다시 삶에 대한 총체적 긍정으로 승화시켰다.

링컨의 이 위대한 예술(finesse)에 대해,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은 이렇게 말한다.

“링컨은 우울증을 견디어 냈을 뿐 아니라 이를 활용했다.
그 노하우를 아는 것은
링컨을 포함한 인간 전체의 위대함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고리이다.”


링컨은 허무와 긍정이라는 양날의 칼을 휘두른 사람이다.
삶과 인간에 대한 심오한 경멸은 허무였고,
사회와 정치에 관한 맹렬한 실천은 긍정이었다.
그는 우울을 극복하기 위하여,
허무와 긍정으로 이루어진 양날의 칼을,
[진실이라 불리는 숫돌]에 노상 갈아서 사용했다.
심지어 남북전쟁이 아슬아슬하게 진행 중이던 상황에서도
링컨은 스스로에게 “과연 우리는 유의미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근본적인 진실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어떤 사람이 승리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오!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서시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링컨은 이렇게 꾸짖으며 쏘아 붙였다.

“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기를!”


당시 교회의 기준에서 보면,
링컨은 결코 독실하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위에 인용한 링컨의 말 역시,
“우리가 정말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서있는 거야?
만약 그렇다면 전쟁의 열기에 취해 하나님을 찾으며 날뛸 일이 아니라,
남부 사람들을 관대하게 보듬어 안을 각오를 해야 돼!”
라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링컨은,
“우리에게 승리를!”이라고 말하는 대신에
“진실에게 승리를!”이라고 외치며,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태도를 평생 지켰던 것이다.
 
링컨은 허무-긍정-진실로 이루어진 트라이앵글을 만들어 냈다.
이 트라이앵글이 바로 [링컨식]의 예술이다.


인간 세상의 어리석음과 한계에 대해 깊은 허무를 느끼면서도
이를 극복하여 한걸음씩 꾸준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사람,
나아가 그 역할이 진실에 비추어 타당한지 여부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사람—
이것이 가장 숭고한 정치인의 모습이다.

<편집자의 사족(蛇足)>

이 글을 편집-출고한 후 퇴근하면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한 영화 <음모자>를 보았다.
아니 그런데 이럴 수가 있는가.
레드포드 감독은,
링컨 대통령 암살에 연루된 한 여성을 변호하는 변호사를 통해 미국 정치의 위대한 자산,
즉 [가치의 힘]을 보여주려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 글 저자가 전하려는 주제와 기가 막히게  중첩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한나라당의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이 글을  기고했다.
편집자는 이에 덧붙여,
이 글과 함께 영화 <음모자>를 반드시 볼 것을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사족의 사족 1 -
영화 <음모자>는 실화다.
영화 속 주인공 프레드릭 에이컨 변호사는,
자신이 변호한 여성이 교수형에 처해진뒤 변호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그 당시 막 워싱톤에 설립된, 
<워싱톤 포스트>의 첫 사회부장이 됐다고 영화 엔딩 크레딧에 나온다.
닉슨 대통령을 사임케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영화
<모두가 대통령 사람들>에서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는 밥 우드워드기자였다.
밥 우드워드는 <워싱톤 포스트> 사회부기자와 사회부장을 했다.

사족의 사족 2 -
링컨을 통해 알게된 [가치의 힘]을 역시 느끼게 하는 또 하나의 좋은 글이,
이 글과 함께 <뉴데일리>에 실렸다. 
조갑제 기자가 쓴
<김일성-김정일을 개자식이라고 부른 위인(偉…
>
이란 글을 꼭 읽어 보실 것을 권한다.
링컨에서 발원한 [가치의 힘]이 트루먼 대통령을 통해  6.25 동란 와중에서 발현된다.
두가지 글을 모두 읽은 분들은
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박성현 저술가/뉴데일리 주필.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지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도 일체 청구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웹사이트 : www.bangmo.net
이메일 : bangmo@gmail.com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bangmo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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