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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주말 드라마 (토, 일 밤8시) <왕가네 식구들> (연출 진형욱 극본 문영남) 지난 3일 방송에서 오순정은 딸의 사진을 찍어 고민중에게 보여 주는 장면이 나온다.
<왕가네 식구들>에서 창 밖의 불빛처럼 정답고 훈훈함이 흘러 나오는 곳이 있다.
조카 상남네 집에서 사는 오순정(김희정)이 늘 열심히 일하는 부엌이다.
[그 땐 그랬지] 추억속에서 튀어 나오는 사람같다.
자아실현과 돈을 벌러 가서 빈 자리, 그 축에 끼지 못하는 여자들로 하여금 무능력의 수치를 보여주는 것 같아 주눅 들게 하는 별 볼 일 없어진 자리, 변심한 불 꺼진 애인의 집처럼 썰렁해진 곳이다.
빈 새 둥지처럼 주인을 잃은 쓸쓸한 자리이다.
오순정은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 부엌에서 다양한 요리들을 정성껏 만들어 이모부(이병준)와 어릴 때 버리고 떠난 조카 상남(한주완)이 엄마의 빈 자리를 대신 채워주고 있다. 상남이가 제일 먼저 광박(이윤지)이를 소개시켜 준 사람도 이모 순정이다. 하얀 이불 빨래를 눈 부시게 깨끗이 빨아 넣는 모습도 오랜만에 본다.
TV를 틀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소위 [먹방]이 인기를 끌지만, 막상 가정의 식탁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아침은 언제부터 실종되고 점심이나 저녁도 여차하면 김밥을 사다 때우거나 빵과 우유로 간단히 때운다.
아니면 전화 한 통화로 배달시켜 먹는 것은 흔한 풍경이다.
우유 한 잔에 빵을 먹는다든가 커피와 빵을 먹는 것이 문화인처럼 느껴지고 아주 중요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할 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세련되게 먹는 것이 소원인 사람도 있다.
얼마 전에 신문에 실린 인상적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끼니]라는 시를 쓴 고은과 밥 속에 피어 난 꽃을 그린 화가! 어떤 평론가는 " 밥 먹는 일이 사는 일이고 생명을 피워내는 일이고 희망을 보듬는 일이다" 고 말했지만.
꼬빡꼬빡 세 끼 밥 먹는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도 아침 먹고 돌아서고 나면 점심 저녁 준비해야 하는 것에 밥만 먹다 죽는가 싶은 회의를 물보라처럼 일으킬 정도로, 식사를 준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이 있을 것 같은 의식이 자연스레 마음속으로 스며들게 한 현대사회다.기운의 氣가 밥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순정에게서는 그런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여자다.
순정과 그 남자는 돈은 없지만 서로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는 진실된 사랑의 힘이 있었다. 헌데 순정이 그 사랑을 먼저 배신했다. 이제 가난한 것이 싫다고 모질게 돌아섰지만, 사실은 언니의 빚을 갚느라 어쩔 수 없이 부자 남자와 결혼하느라 헤어진 가슴 아픈 여자다.
이모부와 상남은 지금이라도 결혼하라고 하지만 순정이 전혀 맘에 없어하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은 몹시 안타까워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택배를 배달하느라 집으로 온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을 만나게 되었다.
화장실이 급하다고 애원해도 아무도 집으로 들이는 사람이 없어 고통을 겪고 있는 그 남자에게 흔쾌히 허락하면서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설사를 하던 그 남자는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마당에 널어 놓은 하얀 이불 빨래 사이로 머리에 꽂은 노란 핀을 얼핏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 노란 핀은 10여 전에 그 남자가 사 준 핀이다.
그 남자는 고민중(조성하)이다.
사업을 크게 하다 망해서 처가살이에 철딱서니라고는 없는 아내때문에 추운 한 겨울을 지내고 있는 민중이는 순정이한테 자신의 고통을 다 털어 놓는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고 있는 처가살이의 어려움과, 높은 계단을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내리면서도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화장실이 급해도 참아야 하는 택배 일...
순정은 그 남자가 좋아했던 만두도 만들어 싸다 주고 잘 나가다가 별 볼 일 없어진 사위와 남편의 생일을 까마득히 잊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생일날 미역국도 끓여주어서 민중이를 울컥하게 한다.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줄 아는 민중이가 부담스러워 하니까 꼬실까봐 걱정이냐며 안심시킨다."아내의 마음을 알 것 같아! 오빠가 잘 다독여 줘!
오빠 힘든 건 내가 다독여줄께!
언제든지 힘든 것은 다 나한테 이야기 해!"은거하는 수도사처럼 살던 순정은 어느 날 딸 미호(윤송이)를 예쁘게 입혀서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온 몸으로 차가운 겨울바람이 사정없이 불고 있는 고민중은 순정이와 길거리 의자에서 만난다.
기름과 물처럼 섞이지 않는 지금의 아내 수박(오현경)과는 달리 두 사람이 참 잘 어울리고 편안해 보인다.
순정은 딸의 사진을 보여준다."우리 딸 보고 싶다고 했지?
우리~~~딸이야!"생전 처음 해 보는 고달픈 육체노동을 하는 고민중은 잠시 안식을 누리고 있다.
"예쁘다! 딱 너 닮았다!"
"예뻐?"순정은 눈물어린 눈으로 의미심장하게 고민중을 바라본다.
민중이는 앞에는 또 어떤 고민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사진출처=KBS2 방송 캡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