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노동당 중심의 국정운영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군부의 힘은 빠지는 반면 당 정치국의 위상은 높아지는 양상이다.

    특히 김정은 체제 들어 잦아진 군부 인사와 신진 인물의 대거 등용으로 군부의 파워가 예전과 같지 않다.

    군 서열 2위이자 군 작전을 지휘하는 총참모장은 리영호에서 현영철로, 다시 김격식에서 현재의 리영길까지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무려 4번이나 교체됐다.

    우리의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장 역시 김영춘에서 김정각으로, 다시 김격식에서 장정남으로 바뀌었다.

    '선군정치'의 김정일 체제에서 막강한 힘을 자랑했던 군부 원로들은 대부분 한직으로 물러났고, 김정은 체제의 군부 핵심으로 영향력을 키우던 정통 군인 출신의 리영호도 해임의 비운을 맛봤다.

    리영길과 장정남은 물론 손철주 군 총정치국 부국장, 박정천 상장, 윤동현 인민무력부 부부장 등 김정은 체제에서 부상하는 군부 핵심들은 사실 김정일 체제에서 권력의 변두리에 있던 인물들이다.

    지명도가 낮은 이들이 김정은 체제에서 권력 핵심에 진입한 만큼 국정의 중심축이 된 노동당의 영도에 끌려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김정은 체제 출범에 맞춰 정통 당 관료 출신인 최룡해가 군부 서열 1위인 인민군 총정치국장에 오른 것은 군부의 힘을 빼고 노동당 중심 체제 부활의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20대 초반의 하사관 생활 외에는 군 경력이 전무한 그가 인민군내 '당 총비서'나 다름없는 직책을 차지함에 따라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온 백발의 노장들도 그에게 복종해야 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최룡해의 등용은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와 200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 이후 힘이 더 커진 군부를 견제하고 허약한 노동당이 이끄는 김정은 체제의 안착을 위한 극단적인 처방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북 소식통은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정통 군인이 아닌 탓에 군부 원로들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김정은 제1위원장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하면서 노동당의 입장을 군부에 투영하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정책과 인사 등 국정 현안을 결정하는 노동당 정치국은 현 김정은 체제의 핵심 인사들로 구성됐으며 구성원의 3분의 2도 당과 내각의 실세들이다.

    김정일 체제에서도 정치국에 당과 내각 인물들이 포함됐으나 정치국의 기능과 역할이 유명무실해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현재 국정의 중심에 우뚝 선 당 정치국은 오랫동안 김정일 체제를 이끌었던 당 실세들이 버티고 있어 힘이 떨어진 군부를 이끌기에 충분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정치국 위원들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김경희(경공업)·김기남(선전)·최태복(교육 및 과학기술)·박도춘(군수) 당비서, 후보위원들인 김양건(대남)·곽범기(계획재정) 당비서, 주규창 당 기계공업부장, 조연준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대표적이다.

    후보위원들인 문경덕 평양시당 책임비서, 김영일(국제)·김평해(행정인사) 당비서 등은 비록 김정은 시대 들어 부상했지만 김정은 체제의 최고 실세이자 노동당 중심의 국정운영을 주도하고 있는 장성택의 인맥이다.

    반면 군부에서 정치국에 포함된 직책은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으로, 최근 교체된 리영길과 장정남의 정치국 진출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외 정치국에 포함된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의 부장 및 정치국장 4인은 장성택이 부장으로 있는 노동당 행정부 산하로 정통 군부와는 구별된다.

    이 같은 정치국 구성은 수적으로나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 열세인 신진 군부가 국정을 마음대로 좌우할 수 없는 구조임을 보여준다. 결국 정통 노동당 간부들이 김정은 시대를 주도하는 주요 세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동당이 국정의 중심에 자리하면서 경제를 총괄하는 박봉주 총리의 위상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군부의 강경 행보가 어느 정도 잦아든 지난 4월 총리에 임명된 박봉주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와 군부대 시찰에 군 고위간부들과 동행하는가 하면 당중앙군사위 확대회의에도 배석했다.

    또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주도했던 그가 총리로 복귀하면서 리무영(화학공업상)·리춘삼(국가자원개발상) 등 한때 그와 일했던 인물들이 내각 상에 대거 등용됐다.

    내각의 인사권은 여전히 노동당에 있지만, 경제발전을 주요 국정목표로 밝히고 책임총리제를 내세운 김정은 체제의 경제 수장인 그의 파워가 커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앞으로 박봉주의 당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도 눈여겨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