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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재판'을 보았는가!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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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었지 한 번도 목격한 적은 없었습니다.
내가 가르친 제자 중 한 사람의 고향이 함경도 영흥인데 집안이 지주였답니다.
이 사람이 여섯 살 때 해방이 되어 그 시골에도 공산당이 들이닥쳐 ‘인민재판’이 벌어졌는데
그의 아버지는 이미 도피 중이어서 그의 어머니가 대신 재판을 받고 사형이 선고되어
폭도들의 죽창에 찔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이 어린 딸이 지켜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 어느 일간지에 실린 ‘인민재판’의 한 장면을 보고 나는 정말 놀랐습니다.
거기에는 사진 설명이 붙어 있는데 죄인으로 재판 받는 사람은 두 사람,
한 분은 나도 잘 아는 <청년 김옥균>의 저자 팔봉 김기진 선생,
그 따님이 저명한 소프라노 가수 김복희! 또 한 분은 그가 운영하던 인쇄소의 직원 이영환 씨 -
두 사람은 몽둥이찜질에 녹초가 돼 쓰러졌으나 팔봉은 겨우 목숨을 건졌고
그 직원은 매를 맞아 목숨을 잃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 ‘인민재판’에서 ‘반동분자’로 낙인이 찍히면 죽은 목숨,
전국 방방곡곡에서 6만 명이 학살되었다고 합니다.
제헌국회의원과 제 2대 국회의원 도합 77명이 납북되어
공산당 치하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을 것입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 살면서 그 혹독했던 ‘인민재판’을 정당화하려는 놈이 있다면
살려둘 수 없습니다. 6.25는 남쪽에서 국군이 시작했다는 등 허위사실을 유표하면서
그 날의 민족적 수난을 외면하는 자들은 오늘의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