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동맹. 미국조차 자랑하는 세계 최강의 군사동맹 중 하나다.
    이런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1945년 해방 직후부터 [주창]했던 독립운동가가 있다.
    바로 <고하 송진우> 선생이다.

  • ▲ 고하 송진우 선생. 선생은 이승만 대통령을 새 정부의 지도자로 추대하고, 좌파와의 결탁을 막으려 노력했다.
    ▲ 고하 송진우 선생. 선생은 이승만 대통령을 새 정부의 지도자로 추대하고, 좌파와의 결탁을 막으려 노력했다.



    <국립서울현충원>은 오는 8일 오전 11시 <고하 송진우 선생 탄신 123주년 추모식>이
    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98호에서 <고하 송진우 선생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다고 전했다.

    추모식에는 유가족, 광복회․보훈처 관계자, 기념사업회 회원, 추모객 등 200여 명이 참석한다.

    송진우 선생은 1890년 5월 8일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다.
    송진우 선생은 30살이던 1919년 <3․1독립운동> 때문에 투옥되어 1년 반 옥고를 치렀다.

    이후 송진우 선생은 <동아일보> 주필 등 언론인으로 일제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쳤다.

    1936년 송진우 선생은 <동아일보>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그려진 <일장기>를 말소했다.
    이 일로 일제 총독부에 의해 사장에서 강제로 쫓겨나고 <동아일보>는 무기정간을 당했다.

    송진우 선생은 1945년 해방 된 뒤 복간된 <동아일보>의 사장을 맡아
    <환국지사 후원회>를 결성하고, <이승만> 박사와 국민 총동원 방법 논의,
    신탁통치 반대 등 건국활동에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송진우 선생은 美군정에 적극 협력하며,
    미국과의 동맹관계와 미군 주둔 필요성을 역설하고 다녔다.

    당시 송진우 선생은 <김 구>와의 토론에서 [빨갱이]와의 협력은 안 된다며,
    미국과의 협력을 역설했다.

    선생은 며칠 뒤인 1945년 12월 30일 <한현우> <유근배> 등에 의해 자택에서 암살당했다.
    당시 美군정청은 송진우 선생의 암살 배후가 김 구였다고 보고, 그를 소환해 주의를 주기도 했다.

    선생의 유해는 1946년 1월 5일 서울 망우리에 안장됐다가,
    1966년 11월 11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지향산 기슭으로 이장됐다.

    선생의 유해는 1988년 5월 3일이 되어서야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98호로 이장,
    영면하게 됐다.

    정부는 선생의 공헌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국립서울현충원(원장 김형기)은 <고하> 선생의 숭고한 애국심을
    우리 후손들이 계승 ․ 발전시킬 수 있도록 이번 행사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