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 추모식, 19일 오전 11시 효창공원 의사 묘전에서 열려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매헌 윤봉길의사의 순국 제80주기 추모식을 오는 19일 오전 11시 효창공원 윤 의사 묘전에서 (사)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회장 황의만) 주관으로 연다고 밝혔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상하이(上海) 홍커우공원(虹口公園)에서 열린 ‘일본군 상해 점령 전승경축식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 수뇌부를 폭사시켰다.

    추모식은 박승춘 보훈처장, 독립운동단체장과 광복회원, 기념사업회원, 학생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학생대표 어록봉독, 기념사업회장 식사(式辭), 보훈처장과 광복회장의 추모사, 헌화․분향, 추모가 순으로 진행된다.

    윤봉길 의사는 1908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받지 않겠다며 학교를 자퇴하고 오치서숙(烏致書塾)에서 한학을 배웠다. 1927년 구매조합을 조직해 농민의 경제자립을 추구했고, 독서회(讀書會)를 통해 문맹퇴치에 힘썼다. 

  • 1928년 부흥야학원(富興夜學院) 설립, 1929년 월진회(月進會)를 조직해 농민의 단결과 민족정신 배양 등 농촌운동에 헌신하였으나, 일제의 압박이 있는 한 농촌운동으로는 성공할 수 없음을 깨닫고 1930년 3월 6일 중국으로 망명했다.

    1932년 봄 상하이 홍구(虹口)에서 임시정부 국무위원인 김 구를 만나 독립운동 전략을 토론하며 투쟁 기회를 엿보던 중 4월 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맞아 일본군 상해 점령 전승경축식이 상하이 홍커우 공원(虹口公園)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의거를 일으키기로 했다.

    1932년 4월 29일 윤 의사는 김 구로부터 받은 수통 폭탄 1개와 도시락 폭탄 1개를 단상에 던져 일본군 수뇌부를 폭사시켰다.

    의거 직후 현장에서 붙잡힌 윤 의사는 5월 25일 상하이 파견군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1월 18일 오오사카(大阪) 육군 위수(衛戍) 형무소에 수감, 12월 19일 오전 7시 40분 교외에 있던 작업장에서 26발의 탄환을 맞고 순국했다.

    윤 의사의 유해는 1946년 일본에서 박열(朴烈), 이강훈(李康勳) 선생 등의 주선으로 본국으로 봉환되어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적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