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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30일 12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윌튼 워커 美제8군사령관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월튼 워커 중장은 1912년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워커 중장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 참전해 뛰어난 지휘역량과 근성을 발휘해 유명해졌다. 장병들은 그에게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불독'이란 별명을 붙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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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 중장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7월 7일 일본 동경을 거쳐 대전에 도착했다. 13일에는 정식으로 美제8군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워커 중장은 낙동강 전투에서 공산군을 막으며 고군분투하는 휘하 지휘관과 한미 연합군 장병들에게 이런 명언을 남겼다.
“더 이상 증원군도 없고 더 이상 후퇴할 곳도 없다고 생각하라.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
우리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설 곳도 없고 물러서서도 안 된다.
낙동강 방어선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퇴는 있을 수 없다.”워커 장군의 이 말은 “지키느냐 아니면 죽느냐(stand or die)”로 널리 알려졌다. 워커 장군이 굳은 전의를 밝히자 한미 연합군은 낙동강 전선을 사수했다. 낙동강 전선은 이후 ‘워커 라인’으로도 알려지게 된다.
1950년 12월 23일 워커 중장은 중공군을 막고 있는 서부전선의 영국군 부대 전선을 시찰하고 자신의 외아들인 셈 워커(Sam S. Walker, 1925년생) 대위에게 표창하기 위해 가던 중 차량 전복사고로 서거했다.
미국 정부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1951년 1월 2일 육군대장으로 추서했다.
한국 정부는 그의 용기와 헌신에 감사하며 정부 투자로 지은 광진구의 호텔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서울 워커힐 호텔은 워커 중장이 숨진 사고 지점이기도 하다.
워커힐 호텔 본관 정문에 세워진 비문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오늘 우리가 장군을 특별히 추모하는 것은 한국전쟁 초기 유엔군의 전면 철수를 주장했던 미국 조야(朝野)의 지배적인 분위기 속에서 유독 장군만이 홀로 한반도 사수를 주장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공산화를 방지하여 우리의 오늘을 가능케 한 그 공덕을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