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신·농락! 아무리 명예가 중요해도 공직자가 어찌 당과 협의 없이 시장직을 일방적으로 던지는가.”
오세훈 서울시장의 독단 사퇴 발표를 계기로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와 오 시장의 좋지 않은 인연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홍 대표는 만약 10월에 보궐선거가 치러질 경우 당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에서 사퇴를 늦출 것을 강하게 요청했지만 오 시장이 ‘즉각 사퇴’를 결정하자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
- ▲ 오세훈서울시장과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 ⓒ연합뉴스
■ 홍준표, 오세훈 비난에 또 비난
홍 대표는 26일 서울지역 당협위원장 조찬간담회에 참석에서 “국익이나 당보다도 개인의 명예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당인의 자세가 아니고 조직인의 자세가 아니다”라며 오 시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비공개 간담회에서는 “어떻게 개인의 명예만 중요하냐. 어젯밤 10시쯤 오 시장이 집으로 찾아왔기에 쫓아 내면서 앞으로 다시는 볼 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면서 홍 대표가 목청을 높였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전날에도 홍 대표는 오 시장이 ‘즉각 사퇴’를 철회할 뜻이 없음을 확인한 뒤 측근들에게 “오 시장한테 세 번 농락당했다”며 격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 대표가 언급한 ‘세 번 농락’은 오 시장이 당과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주민투표를 강행한 것과 주민투표율과 시장직을 연계한 것, 10월 초 사퇴 약속을 번복하고 즉각 사퇴를 결행한 것을 말한다. 당 지도부는 이들 사안에 대해 모두 강력히 반대했었다.
홍 대표는 오 시장이 사퇴를 발표한 당일 오후에도 “오세훈은 이벤트로 출발해 이벤트로 끝났다. 오세훈은 오늘로써 끝”이라며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한 측근에 따르면 홍 대표는 “주민투표 당일 사퇴하되 잔무와 국정감사를 마친 뒤 하겠다고 밝혔으면 애초에 논란이 되지도 않았을 텐데 미적거리다가 당이 자기 바짓가랑이를 잡는 모습을 만들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번 주민투표 결과가 ‘사실상 승리’라는 평가를 내린 것에 대해서도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내가 왜 오 시장을 치켜세워 줬겠느냐. 패자가 아닌 아름다운 퇴장으로 정계복귀 기회를 주려했던 것이다. 내년 4월 복귀를 생각하고 배려했는데 그것조차 무시하고 자기 스타일만 고집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민투표 당일인 24일 저녁 여권 수뇌부와 가진 긴급회동에서 “오 시장이 약속과 달리 개인이 망가지니 뭐니 하기에 약속을 지키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확답을 하지 않았을 때부터 의심스럽게 여겼다”고도 말했다고 이 측근은 전했다.
■ 이들의 마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홍준표 대표(행정학과 72학번)와 오세훈 시장(법학과 79학번)은 고려대 선후배 사이다.
두 사람은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 과정에서 주민투표-시장직 연계, 사퇴시점 등 주요 결정사항을 놓고 첨예한 대립각을 세워왔다. 급기야 오 시장이 당의 만류에도 26일 즉각 사퇴를 선언하면서 집권 여당의 수장인 홍 대표는 취임 2개월여 만에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다.
두 사람의 악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 당시 홍준표·맹형규 의원이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이던 상황에서 경선을 불과 보름 앞두고 오 시장이 뒤늦게 뛰어들어 승리를 거머쥐었다.
비록 3위에 머물긴 했지만 서울시장 경선을 오랫동안 준비했던 홍 대표 입장에선 유쾌할 리 없는 상황이었다. 경선 과정에서 홍 대표는 오 시장이 이미지 정치만 한다는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 2008년 4월 총선 당시에는 홍 대표와 오 시장이 서울시 뉴타운 정책을 놓고 충돌했다.
당시 서울지역 국회의원 후보들의 뉴타운 공약에 대해 오 시장이 부동산 시장 불안정을 이유로 반대의사를 밝히자 홍 대표가 “접근법이 잘못됐다. 서울시 정책이 오락가락한다. 일정 규모 이상 뉴타운 지정 권한을 국토해양부로 넘기는 쪽으로 법 개정을 하겠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앞서 16대 국회 때도 한나라당이 대선 불법자금 수사 등으로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대여 저격수로 나선 홍 대표가 오 시장 등 소장파를 향해 ‘스타일리스트’ 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는 등 양측의 관계는 순탄치 않았었다.
오 시장이 주민투표 무산 이후 당의 동의 없이 ‘즉각 사퇴’를 발표하자 홍 대표가 발끈해 비난을 쏟아낸 것도 이러한 배경이 적지 않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